도시 모드 OFF, 산골 모드 ON

태양의 후예, 산골에 전입신고

by 산골노마드


산골에 내려와 살다보니 내가 언제 도시에 살았었나 싶을때가 있다.

그 화려하고 편하고 빠른 도시의 문화를 어느새 잊고 지냈다. 그러다 가끔 아주 가끔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때가 온다. 그때는 어디 말도 못하고 끙끙거리기만 하다 또 다시 잊고 지낸다. 그런지가 벌써 4년이다.


‘앓이’라는 표현이 있다.

앓이는 몸이 아픈 것뿐만 아니라,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거나 걱정하는 상태, 또는 어떤 것에 깊이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기도 하는데 내가 딱 한번씩 도시앓이를 한다. 그때는 방법이 없다. 도시로 도망치듯 다녀와야 한다.



또다시 작전을 세운다.

산골에는 없는 도시에만 있는 그 무언가가 그냥 필요해야 한다. 그래서 언제 도시로 나갈지 작전을 세우고 남편에게 간다.

아내 : “나 필요한 게 있어 그래서 도시로 가야 해” 단호하다.

남편 : “쿠O 해” 더 단호하다.

아내 : “아니야, 직접 보고 사야 해”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이다.

아내 : “혼자 다녀와도 돼”

남편 : “언제 갈 건데?”

아내 : “이번 주 주말에 꼭 다녀와야 해”

'휴~우' 이렇게 어려운 협상이 끝나고 도시에서 화려한 문화를 즐기는 꿈을 꾸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든다.


그렇게 기다리던 도시로 나가는 주말아침,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밥을 하고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을 한 가지 만들어 아침을 차린다. 밥상 앞에서 더없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 나 설거지하는 동안 얼른 씻고 준비해” 어이없는 웃음을 보이는 남편이지만 그래도 좋다. 곧 도시를 만나러 가니까.


내가 도시를 나가는 기준은 사는 곳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곳으로 선택한다. 초반에는 전주로 많이 나갔지만 결국 전주도 촌이어서인지 없는 게 많다. 그래서 다음으로 가는 곳이 대전이다. 전주보다는 대전이 훨씬 세련된 도시이다. 전 국민이 좋아하는 빵지순례가 가능한 곳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가끔 대전에 가면 줄 좀 서더라도 성O당에서 빵을 한가득 사가지고 집으로 간다. 산골에서 나를 기다리는 아니 정확히는 도시맛을 기다리는 식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도시로 나가면 가장 실패 없는 선택은 대형 쇼핑몰이다. 그 안에 우리가 좋아하는 서점까지 있다면 금상첨화. 우리는 먼저 매장을 한 바퀴 천천히 돈다. 아이쇼핑이라 부르기엔 제법 진지한 탐색이다. 필요한 게 있는지, 마음을 사로잡는 예쁜 아이들 (좋아하는 문구류나 작은 소품들)이 숨어 있는지 집중해서 살핀다. 그렇게 한 바퀴를 채우고 나면, 도시의 맛을 즐기러 식당으로 향한다. 사소한 것들에 마음이 반응하고, 삶의 감각이 선명해짐을 온 감각으로 느낀다.


또 한 바퀴 구석구석 내가 가고 싶은 매장만 찾아다닌다. 그렇게 도시바람을 몸에 새기고 나면 마지막 가장 중요한 서점으로 간다. 신간도 찾아보고 핸드폰에 캡처해 둔 책들도 찾아보고 바인더에 꾸며질 아기자기한 스티커도 고르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다른 곳도 아니고 서점에서 보내는 시간은 전혀 아깝지가 않다.


누가 알까.

별거 아닌 이 행동은 오롯이 나를 위해 집중하고 즐기는 시간인 것을 가끔은 행복하라고 신께서 주신 선물 같다.


기분 좋게 결재를 마치고 신나고 최종 목적지인 마트에 간다.

어쩜 이렇게 몸이 가볍고 발걸음이 신나는지 모른다. 기분이가 좋으니까 카트에 맛있는 것들을 집어넣는다. 아마 콧노래도 흥얼거렸던 것 같다.


이쯤 되면 찬 바람이 불어온다. 알람이 울리듯이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남편 : 이제 그만하지!!

아내 : 뭘?

남편 : 이거 냉장고에 들어가면 언제 나오는데? 우리 식구 먹기에 너무 많은데? 냉동실 자리는 있어? 우리 필요한 거, 꼭 먹고 싶은 것만 사서 이제 가자!!!

아내 : 그래, 그러자.

차갑게 식어버린다. 그리고 정신이 번쩍 든다. 카트를 한번 바라보고 멋쩍은 웃음을 남편에게 날린다.


한나절 가득 도시의 냄새와 문화, 그리고 도시느낌 가득 담긴 식재료들을 담아 다시 산골로 돌아간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는 집에 가서 맛있게 조리해서 먹을 생각을 수다로 한가득 풀어낸다.

집으로 가는 도로를 달리다 보면 높은 건물은 보이지 않고 높은 산과 나무들만 보이기 시작한다. 그럼 꿈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현실에 집중하리라 다짐한다.


다시 또 도시 모드 OFF, 산골 모드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