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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Jun 26. 2022

우리 엄마는 청소부

EX-야쿠르트 아줌마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일상의 모든 순간이 새롭 느껴진다는 것이다. 화분에 핀 꽃, 텁텁한 여름 바람, 내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서 글감을 찾게 된다. 특히,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게 된다. 직업 적는 칸에 '이야기 수집가'를 추가해야 하나... ㅎㅎ


  딸이 미술 학원을 마칠 시간에 맞춰 엘리베이터를 탔다. 초등학교 5학년 정도로 보이는 여자 아이 두 명이 타고 있었다. 아이들 특유의 맑고 높은 목소리가 내 귀에 들어왔다.


"너희 엄마는 일 하셔?"

"우리 엄마는 낮에는 집에 있고, 저녁 7시부터 9시까지는 청소를 해. 그때 내가 학원가는 시간이니까 그 시간에 맞춰서 일하셔."

"아 진짜? 우리 엄마는 집에만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기까지 딱 15초였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나눈 대화가 한 동안 내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다. 조금 울컥하기도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 엄마가 청소일을 한다"는 것을 얘기하는 그 아이가 너무나 부러워서. 저녁에 청소를 하시는 걸로 보아, 목욕탕 청소가 아닐까 내 마음대로 추측해보았다. 도대체 목욕탕 청소를 하시는 그 아이의 어머님께서는 어떻게 자녀를 교육하셨길래, 아이가 엄마의 직업에 대해 저렇게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걸까?


  우리 엄마는 야쿠르트 배달을 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시작해서, 엄마에게 우리 딸을 봐달라고 부탁한 날까지. 무려 22년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엄마는 일을 . 운동회나 급식 당번 같은 학교 행사는 늘 할머니가 엄마 대신 와주셨다. 그런 날은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서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 반찬이 맛이 없다고, 왜 내 물건을 마음대로 정리하냐고 따졌지만, 사실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왜 엄마는 다른 친구들 엄마처럼 학교에 오지 않았냐"였다.


영화에서도 야쿠르트 아줌마만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를 넘치게 사랑하면서도 엄마의 직업은 숨기고 싶었다. 엄마가 '야쿠르트 아줌마'인 걸 친구들에게 들킬까 봐 노심초사했다. 그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 "야~쿠르트 아줌마, 야~쿠르트 주세요. 야~쿠르트 없으면, 요~쿠르트 주세요."라는 노래(?)가 유행이었다. 친구 어깨를 툭 치면서 "야!"하고 부른 다음,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친구가 어쩌다 이 장난을 나에게 치면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혹시 내가 야쿠르트 아줌마 딸인 걸 들킨 걸까 봐. 친구와 걷다가 우연히 유니폼을 입은 엄마를 보면 모른 척했다. 한 번은 노골적으로 엄마에게 왜 이런 일을 하냐고 부끄럽다고 따진 적도 있었다. 엄마는 노발대발하셨다.


"엄마가 무슨 도둑질을 하니? 엄마는 떳떳해. 열심히 노력해서 먹고살고 있어. 엄마, 아빠한테 쓸 돈 아껴서, 자식들 하나라도 더 좋은 거 먹이려고 하는데. 그게 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 말이 맞아서. 중학교를 끝내 마치지 못한 16살의 혜숙이는 낮엔 소녀공이 되어 미싱을 돌렸고 저녁엔 막내 동생 기저귀를 빨았다. 결혼해서 애 둘을 낳고서는 신발 공장 일을 떼와 집에서 부업을 했다. 애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어서는, 엄마 품보다는 돈이 더 필요하다 판단해 야쿠르트 배달 일을 시작했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초졸인 엄마가 가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 중 하나였다.


  학창 시절을 통틀어서 딱 한 번, 엄마가 일을 빠지고 우리 학교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내가 고3 때, 진학 설명회 겸 학부모 회의를 하는 날이었다. 나는 엄마한테 최대한 예쁘게 꾸미고 오라고 했고, 엄마는 정말 오랜만에 새 옷을 사셨다. 엄마는 이 날이 자기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날 중 하나였다고 말씀하신다.


"담임 선생님이 엄마한테 '수연이 어머니시죠?' 하는 순간, 모든 엄마들이 다 부러운 눈빛으로 를 쳐다보더라. 외제자 몰고 명품 가방 들고 온 여자들이 말이야. 어떻게 하면 딸이 전교 1등을 할 수 있냐고 좋겠다고 하더라고. 머리털 나고 이런 기분은 처음 느껴봐. 우리 딸 덕분에."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내가 엄마의 직업을 부끄러워했던 것은 교양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땐 학교 공부 따라가기도 벅차서 책도 거의 읽지 않았다. 그래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부끄럽고 무엇이 자랑스러운 일인지 알지 못했다. (이래서 사람은 제대로 된 공부를 해야 하나 보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두 사람


  대학에 들어와 교육학을 배우면서, 우리 엄마가 얼마나 훌륭한 교육자였는지 알게 되었다. 육아서를 읽으면서, 엄마 덕분에 내가 정서적 금수저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감히 엄마에게 짜증 한 번 낼 수 없었다. 아이를 낳고 기른다는 것은 엄마가 자신의 본능(먹고 자고 싸는 일)을 억누르는 일임을 깨달아서.


  우리 엄마는 60살이 넘은 현재, 아파트 청소일을 하신다. 내가 올해 육아휴직을 해서 1년만 편히 쉬시라니까, "쉬면 오히려 병난다"라고 굳이 일을 하신다. 그런 엄마가 자랑스럽다. 청소부 김혜숙, 야쿠르트 아줌마 김혜숙, 장수연의 엄마 김혜숙. 모두 자랑스러운 나의 엄마다. 그리고 오랫동안 야쿠르트 배달 일을 해서 생긴 엄마 얼굴의 기미가 지독하게 사랑스럽다.




사랑하는 나의 엄마.

다음 생에는 꼭 엄마가 내 딸로 태어나줘.

"엄마 딸로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을 엄마에게 돌려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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