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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Feb 22. 2023

필라테스에서 가장 어려운 것

필라테스를 배우러 갔는데 인생을 배운다 #3

  나는 햇수로 6년째 필라테스를 하고 있다. 같은 운동을 6년 정도 하면 어떤 일이 생기느냐면, 센터에 새로 오신 선생님이 수업이 끝날 때 말을 걸어주신다. "필라테스 오래 하셨어요? 자세가 참 좋으세요."라고. 또 가끔 선생님이 동작 설명을 하실 때 본보기로 나를 활용(?)하시기도 하고, 자세 교정에서 내 차례를 슬쩍 스킵하기도 한다. 내가 반 1등 학생 학습지를 대충 검사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싶다.


  이쯤이면 나 스스로를 '프로 필라테스인'이라고 자부할 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려운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균형을 잡는 일이다. 힘을 빡 써서 하는 동작은 차라리 쉽다. 그냥 무작정 열심히 하면 되니까. 그런데 티저(teaser, 몸을 V자로 만드는 동작) 같은 자세나 한 발로 서서 균형을 맞추는 동작은 온전히 내 몸 무게만으로 버티는데도 땀이 삐질삐질 난다.


  균형감각을 요구하는 동작을 하면서 나는 내 몸의 불균형에 대해 알게 되었다. 같은 동작이라도 오른쪽으로 할 때와 왼쪽으로 할 때가 천지 차이였다. 오른손잡이인 나는 오른쪽 다리로 서서 하는 동작에 비해 왼발로 서는 동작이 잘 되지 않았다. 평소 나는 가방도 주로 오른쪽으로 메고, 청소기도 오른손으로 돌리며, 리거나 걸을 때도 첫 발은 늘 오른발을 뗀다.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습관들이 쌓이고 쌓여 내 몸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걸 알게 되고 나서부터는 운동을 할 때만큼만 이라도 습관과 반대로 하려고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을 때도, 손깍지를 낄 때도 습관과 반대로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 일상생활 중에도 틈틈이 왼쪽 다리로 버티며 몸을 T자로 만드는 자세를 연습하고 있다.


출처 : 한 발로 서서 몸을 T자로 만들면 생기는 효과 (tenbody.kr)


  그러고 보면 삶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겐 매사에 힘을 줘 열심히 사는 것이 삶을 균형 있게 사는 것보다 쉬웠다. 그런데 약도 많이 쓰면 독이 되고, 독도 적게 쓰면 약이 된다고 했다. 내가 해야 할 일과 내가 하고 싶은 일에서 적당한 균형을 잡는 것이 무작정 열심히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나중을 위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을 도 알아야겠지만, 나에겐 '지금, 여기'의 순간도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투자 관련 고민상담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부자가 되고 싶은 외벌이 공무원 가장의 이야기였다. 투자 전문가는 업무 시간 외 모든 시간을 투자 공부에 올인하고 이 생활을 3년 정도 지속하라고 조언했다. 그런데 이 영상의 댓글 중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다. "공무원 양반, 하루 8시간 일했으면 충분해요. 남은 시간은 운동도 하고 취미생활도 하면서 보내세요." 이 댓글의 작성자는 자신을 70대라고 소개하셨는데 나는 인생 선배가 전하는 삶의 지혜를 엿본 것 같았다.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게 뭘까' 스스로 생각 보기도 했다.


  내 중심이 어느 한쪽으로 너무 쏠려있진 않은지 점검하고 가끔은 '습관과 반대로' 해볼 것이다. 아무리 좋은 습관이라고 하더라도 습관은 삶의 수단일 뿐이다. 습관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건강을 위해서 운동하고, 성장하기 위해 독서하며, 경제적 자유를 위해 투자 공부를 하는 내가 좋다. 그러나 오랜만에 먹는 맥주와 야식, 혼자 낄낄거리며 보는 넷플릭스, 친구와 나누는 시답지 않은 일상 얘기, 웃기기만 하고 남는 것은 없는 아무 말 대잔치 식의 농담도 소중하다. 이것들은 다른 무엇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충분히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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