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기시험은 내 손목과의 싸움
경단녀... 당시 나의 상황은 딱 저 세 글자로 표현할 수 있었다.
이래저래 검색해서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하자!! 하고 무료 강의도 찾고
덜컥 교재도 샀는데 이거 몇 번째에 붙으려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왜 직업상담사를 선택했냐면 이 자격증을 따서 나처럼 어떻게 해야 하지 하고
막막해하는 경력단절여성을 돕고 싶었다.
(자격증은 취득했으나 지금은 그냥 흔한 회사원 1이다)
공부에서 공식적으로 손을 뗀 건 20년 전이고 이제 편입해서 학교공부도 하는 중에
자격증 공부까지 병행해야 하는데 한 번에 붙는다는 보장도 없고...
막막해서 책을 들고 서 있다가 든 생각은
그냥 하자 하다 보면 되겠지였다.
공부는 필기와 실기를 병행해서 공부했다.
동차수에 붙으면 제일 좋겠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필기시험공부는 5개년 기출문제를 합친 두꺼운 책을 사서 냅다 풀었다.
그냥 열심히 문제와 답만 외웠다. 객관식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실기시험은 서술형 지필고사였는데 시험장 가서 문제를 보자마자 바로 답을 쓸 수 있어야 해서
두꺼운 연습장에 얼마나 많이 써내려 갔는지 모르겠다. 비워낸 샤프심 통을 볼 때마다 나 열심히 하네 하고
스스로 뿌듯했다. 그 많은 빈 샤프심 통은 내가 손가락과 손목이 부지런히 움직인 증거였다.
샤프심 통이 비워지고 두꺼운 노트를 맨 끝장까지 써서 버리고 또 사고를 반복했다.
그만큼 손가락과 손목에도 무리가 가서 파스를 붙여가며 답을 쓰고 또 썼다.
필기는 1차에 바로 합격했었다. 커트라인에 가까웠지만... 합격은 합격이지 뭐
실기는 떨어졌다. 2점 차로 떨어진 결과를 보고 그 답을 고치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했지만 이미 결과는 나왔고 다시 시험공부를 할 수밖에..
시험은 1년에 3차까지 있다. 필기 합격하고 2년 이내에 실기를 합격하면 되는데 나의 경우는
편입해서 대학교 공부도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냥 여기에 시간을 길게 쏟을 수는 없었다.
2차 실기 시험 일주일 전에 코로나에 걸렸고 시험날 격리가 해제되어 시험을 치러 갔으나....
코로나에 걸린 동안 고작 일주일 공부를 못했다고 타격이 그렇게 클 줄 몰랐다.
하긴 격리가 해제되었어도 컨디션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는데 시험 치는 동안 어지러워서
문제를 읽기도 힘들었다. 시험지에 답을 써내려 가며 이건 망했구나 하는 느낌이 강하게 왔다.
시험 치는 내내 문제가 어려워서가 아닌 내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식은땀이 저절로 났다.
결과는 불합격... 이건 예상했으니까 또다시 마음을 비우고 3차 시험공부에 돌입했다.
3차 때는 건강관리에 각별히 주의했다. 그리고 시험장에 도착해서 시험이 시작되자마자 문제를
쭉 보고 순서대로가 아닌 바로 생각나는 문제들부터 답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중간에 쓰다 막히면 일단 그 문제는 그대로 두고 다른 문제들 답을 썼다.
시간은 넉넉한 편이므로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샤프로 먼저 답안을 작성하고 볼펜으로 다시 답을 작성한다. 샤프로 작성한 답안은 지우면 끝.
부분 점수도 인정되므로 일단 정성껏 서술(이라 쓰고 아무 말 대잔치라고 읽는다)했다.
어느 정도 답안을 거의 작성하고 시험지를 살펴봤다.
시험지에 배점이 적혀 있으므로 이리저리 혼자 계산해 봐도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
부분점수를 못 받는다고 쳐도 가능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 붙을 수 있을 거 같은데?
3차 시험을 다 보고 나올 때는 이제 됐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할 만큼 했다...
그리고 합격을 했다. 합격과 동시에 책은 미련 없이 분리수거했다.
1년 동안 학교 공부, 자격증 공부, 여성인력개발센터의 취업 준비 교실 참여까지 나름 바쁘게 살았었다.
공부만 오롯이 했던 것도 아니었고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며 해낸 일이었다.
그 1년 참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그 1년은 나의 자기소개서에 잘 녹여 훗날 지금 다니는 회사의 상무님이 보시고 감탄하셨다는 얘길
직접 들었다. 네... 자소설에 어떻게든 잘 버무려보았습니다.
나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일단 가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