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90년대 감성

- 취미는 90년대

by 소설 쓰는 라떼


넷플릭스 시리즈나 유행하는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편이다. 나름 미디어를 절제하는 방법 중 하나가 아예 시작도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손 안에 폰도 까딱하면 정신을 빼놓는데 큰 화면 앞에 편안하게 누워 시청하는 TV는 오죽하랴. 청소하다가 틀어놓은 아침 건강 정보는 메모까지 하게 되고, 바로 쇼핑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다. 저녁에 아이들과 치킨을 뜯으며 오랜만에~ 하고 한 번 보기 시작하면 12시가 된 적도 있다. '폭싹 속았수다'를 볼 때도 그랬다. 어렸을 때 봤던 대장금이 생각 나서 대장금 다시 몰아보기를 했다가 하루가 다 지나간 적도 있었으니 나름 3단계 절제법이 생겨난 것이다.

아예 켜지 말자 - 드라마는 보지 말자 - 보려면 아이들은 끌어들이지 말자


아이들이 많이 커서 이제 '육퇴'라는 말을 쓰기는 조금 그렇지만, 어쨌든 나만의 시간이 확보되고 나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조금씩 하다가 90년대 음악들을 찾아 듣는다. 시리즈물로 보지 않아도 돼서 조금씩 찾아보기 시작한 게 취미가 되었다. 얼마 전에 읽은 소설, <오늘이 내일을 데려올 거야> 중, 200년 미래에서 온 리지라는 인물이 200년 전의 세기말 문화를 좋아했는데, 90년대 문화가 줬던 지금과 다른 느낌은 누구나 그리워 하는 시대가 되었나 보다.


나는 쿨의 이재훈을 좋아했다. 1집 무대로 이재훈을 처음 봤을 때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렇게 잘생긴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화장 하나 하지 않아도 환한 얼굴로 무대를 날렵하게 날아다녔다. 미성의 목소리는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요즘에도 간간이 활동하는 이재훈을 찾아보며 내가 좋아하던 연예인이랑 같이 늙어가는구나 하는 동질감과 애닳음도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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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리즈 시절 정도 되는군.)


응답하라,에서 나왔던 것처럼 나도 반짝 농구 팬이기도 했다. 강원도 시골 마을 어디쯤에서 낡은 텔레비전을 통해 나오는 연고전을 응원하는 아이였다. 나는 과묵해 보이는 이상민이 좋았고, 친구들과 브로마이드를 장만하기 위해 유행하는 잡지를 사곤 했다.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세상에 나왔을 때, 내 기억으론 서태지보다 열렬했다. 서태지 때는 저학년이기도 했고 호불호가 있었던 느낌이지만 김건모의 음악은 중고등에 다니는 친척 오빠들이 수련회 등에서 신나게 부르고 돌아와 동생들에게 전파했던 때가 또렷이 기억이 난다. 친구와 떠나간 연인에 관한 노랫말은 꽤나 파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런 걸 대놓고 말하기 시작한 때가 아닐까 싶고, 거기에 박진영이라는 가수가 문화적 반란?을 일으킨 중심에 있었다.

길거리를 다니면 리어카에서 판매되는 '짜가' 테이프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곤 했다. 요즘이야 큐알코드 하나면 다 되는 세상이지만 용돈을 모아 정품을 사러 가던 설레임이 있었다. 또한 정품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던 시대였다.

PC방 이전에 삐삐가 유행했는데 2~3년이 지나면서 삐삐는 무섭게, 한 순간에 사라져갔다. 그러니까 내가 느끼는 진짜 시대의 전환은 핸드폰이었다. 전화만 되던 물건이 사진을 찍고, 음악을 담고, 인터넷을 품기 시작했을 때부터 세상은 눈에 띄게 빨라졌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한국의 모든 것들은 더 강하게 빨라졌다. 그러나 이제 와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이상하게도 아쉽고 서운한 감정이 남는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시간을 들이던 마음, 선물을 사러 직접 매장에 나가던 여유 같은 것들 말이다. 잃어버렸다기보다는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감정이 되어버린 느낌이랄까.

그 마음을 계속 간적하고 싶어서인지 90년대 음악과 영상들을 일부러 찾아본다. 그때는 신비스러웠던 뮤직비디오를 지금 내 자녀들에게 보여주면 의아해 하지만, 뮤비 속 현란한 카메라 무빙을 서로 흉내내면서 엄마가 어렸을 때는 이런 노래를 들으면서 이런 제스처가 유행을 했었대, 하며 함께 웃곤 한다.


핸드폰으로 메모를 하고, 검색을 하고, 기록을 남기고...... 이런 편리함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모든 것이 너무 쉬워질수록, 생각은 여전히 시간을 들여야 하고, 사람을 향한 감정은 자동으로 생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