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아 보이는 사람 말고
연말이 다가오면 늘 고민하게 된다.
'다이어리를 살까? 말까?'
대형 서점의 문구 코너에서 꼭 몇 번은 만지작 거리며 만져보고 펼쳐본다. 당장 사면 빼곡하게 쓸 것만 같다. 지르는 김에 멋진 펜과 소녀 감성 스티커 세트도 살 판이다.
가방을 열어보면 온갖 잡동사니가 수두룩한데 종이 다이어리에 직접 쓰는 손글씨를 하겠다니, 거기다 악필이라 쓰고 보면 마음에 안 들어서 찢고 싶을 게 분명했다. 마치 공부가 급한데 주변 정리부터 시작하다가, 시간을 다 보내고 나서야 후회하는 꼴이라고나 할까.
몇 번 쓰다가 안 쓸 걸 잘 알면서도 새해가 다가오면 왜 고급 다이어리부터 사고 싶어 질까? 평소 무조건 핸드폰 다이어리에 일정을 저장해 놓고, 필요한 내용들은 메모 기능에 적어두고 있는데-
고급 가죽으로 감싼 보드라운 속지 더미.
나는 여전히 '좋아 보이는', '그럴싸한' 모습에 더 신경을 쓰는 사람인지 모른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카페에 앉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다이어리를 쓰는 데 몰입하는 누군가의 모습을 흉내 내고 싶었던 속내도 있다. 그는 그게 좋아서 하지만 나는 그것을 쓰는 모습이 좋아서라는 차이가 있다. 겉모습이 있어 보여서 따라 하다가는 몰입은커녕 내가 그렇지 뭐, 자기 비하까지 가고야 만다.
그런 사실을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알아서 올해도 역시 다이어리를 사지 않았다.
'새해'라는 단어는 희망을 모은다. 그래서인지 '새해'라는 말에서 해가 비치는 것만 같다. 나이를 먹어간다 해도 새로움에 대한 여전한 기대는 변화된 나를 보고 싶어서다. 그런데 소가죽이든 합성피혁이든 새 다이어리 하나를 구입한다고 해서 내가 하루아침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그러면 어떠한가.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는 나이지만 기대를 모아 새해를 맞이한다. 또 한 해를 잘 살아가보자는 마음을 먹게 한다. 고급 다이어리를 향한 욕망이 새해에 더 나은 나로 살아보자는 기대로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