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치 독서 – 『천로역정』7

chapter 7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나아가며

by 소설 쓰는 라떼
SE-4170b228-b00d-47ec-a07d-d35ce49fc1ad.png 존 번연, 『천로역정』, (두란노, 정성묵 번역)

# 날짜: 2026년 2월 14일

# 독서 시간 : 40분

# 분량: ~215쪽/ chapter 7 -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나아가며: 쉽고 안락한 믿음의 쓴 열매

# 이 글은 한 평범한 생활독자가 읽고 이해한 범위 안에서 찾아 정리한 개인적인 기록이다. 물론, 신앙인으로서 읽은 감상도 일부 담겨 있다.




- 헛됨 시장에서 크리스천과 신실을 따르던 '소망'은 신실의 순교 이후 크리스천의 순례길에 동행하게 된다. 그리고 헛됨의 시장에서 나오자마자 '사심'을 만난다.


그 말이 좋을지라도 믿지 말 것은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니라
잠언 26장 25절


'사심'은 '우리의 신앙이 엄격한 신앙과는 좀 다른 면이 있지만 기껏해야 사소한 한두 가지 차이일 뿐이며 세상의 흐름과 역행하지 않는다'는 말을 함으로써, 그들의 신앙이 자기 기만적이고, 하나님을 세상을 편히 살아가는 수단으로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크리스천은 사심에게 '우리와 함께 가려면 시류에 역행해야 하고, 손가락질 받아도 믿음을 지켜야 하는데 괜찮겠냐'라고 반문하며 길동무를 거절한다. 사심은 '세상 집착'과 '돈 사랑', '구두쇠'를 만나 소망과 크리스천을 향해 이렇게 한탄한다.



정말 답답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더군.
날씨가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길을 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지 뭐야.
나는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네.
<186쪽>


크리스천은, 이교도들인 하몰과 세겜이 야곱의 딸과 가축이 탐이 나서 할례를 받은 사건과 돈을 벌 생각에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가룟 유다와 돈벌이에 이용할 생각으로 성령을 얻고자 했던 마술사 시몬을 예로 들며 '세상을 위해 믿음을 추구하는 자는 반드시 세상을 위해 믿음을 저버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SE-9b7408e1-0fa4-45a9-a841-dd640638d8e0.jpg?type=w773 <193쪽>


크리스천과 소망은 '사심'을 분별하고서 가야 할 길을 다시 걸어갔다. 두 사람 앞에는 뻥 뚫려서 가볍게 걸어도 금방 지나올 수 있는 '안락'이라는 작은 평야가 있었다. 나는 이 단락에 가장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두 사람에게 편하게 주어진 길이 감사했지만 왜 그리도 짧아야 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짧은 순간의 짧은 생각은, 곧 그 평야 끝에 왜 '금전'이라는 산이 있어야 했는지 조금은 알 듯했다. 평평하고 편한 길을 걷는 두 사람을 보자 내 마음도 편했던 것이다. 그만하면 됐지,라는 나태함을 품었다. 금전 산에 있다는 희귀한 '은광'을 보러 나도 잠시 들르고 싶었을 것이다.


평안함이 지루함이 되지 않도록 날마다 승리해야 한다. 하루하루 은혜를 소망해야 한다.



은광 주변의 땅은 물러서 가까이 갔다가는 죽거나 크게 다치는 곳이었다. 크리스천과 소망은 한 번 구경해 보고 가라는 '데마'의 유혹을 뿌리친다. '소망'이 잠깐만 보고 오는 것은 어떠냐고 묻지만 '크리스천'이 잡도리한다. 데마를 뒤로하고, 평야의 끝자락에 선 두 사람은 '롯의 아내를 기억하라'는 말씀이 적인 동상을 발견한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창세기 19장 26절


멸망하던 소돔에서 탈출하던 롯의 아내는 탐욕스러운 마음으로 뒤를 돌아봤다가 소금 기둥으로 변해버렸다. 두 사람은 말씀을 상기하면서 다음을 향해 나아갔다. 그런데 그 동상은, 두 사람이 은광 구경을 뿌리쳤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장치라기보다 앞으로 다가올 샛길의 유혹을 예고하는 복선이었다는 것을 챕터 6을 다 읽고서 알게 되었다.


크리스천과 소망은 어느 아름다운 강에 도착하여 평화로운 휴식을 취했다. 이전에 만난 '안락'이라는 평야는 비교도 안 되는 평안한 쉼을 취할 수 있는 곳이었다. 순례자들에게 병을 예방해 주는 잎사귀와 열매들이 가득했고, 생명수는 지친 심신을 달래주었다. 두 사람은 강을 떠나는 게 무척 아쉬웠다.


편안한 쉼은 분명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크리스천과 소망은 평안한 쉼에 적응해갔다. 그래서일까. 두 사람 앞에 펼쳐진 길은 '발이 아플' 정도로 험난하여 '샛길 초원'으로 가는 계단을 모른척할 수 없게 만들었다. 크리스천이 보아하니 천성으로 향하는 길과 나란히 뻗어 있어서 넘어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계단으로 넘어간 길은 훨씬 편했다. 그러나 편함도 잠시... '과신'이라는 자가 깊은 구덩이에 빠지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은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크리스천은 소망에게 미안했다.


처녀 이스라엘아 너의 이정표를 세우며 너의 푯말을 만들고 큰 길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을 마음에 두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예레미야 31장 21절


그러나 두 사람은 점점 불어나는 강물 때문에 돌아가는 길에 열댓 번이나 빠져 죽을 뻔했다. 캄캄한 밤에 되돌아가는 것은 무리였다. 두 사람은 작은 쉼터를 발견하고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다 잠이 들었고, 그 땅의 주인인 절망의 거인이 두 사람을 감옥에 가두고 빛도 물도 빵도 없이 며칠을 기다리게 했다.

절망의 거인에게 '자신 없음'이라는 아내가 있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크리스천과 소망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유도하라고 했다. 이에 거인은 두 사람에게 인정사정없이 맞아 끙끙거리느니, 살아서 무엇하겠느냐,라며 조롱했다. 거인이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나간 뒤, 크리스천은 소망에게 죽는 게 낫겠다고 말한다. 그야말로 절망에 빠진 것이다. 그러나 소망은 살인자에게 영생이란 없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해 자신을 죽이는 살인자는 되지 말자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저녁이 돼서 거인이 다시 찾아왔지만 거인의 으르렁거림에 두 사람은 사시나무 떨듯 떨었고, 크리스천은 기절할 정도로 정신을 놓은 상태였다. 크리스천은 정신이 조금 들었을 때, 또다시 거인의 말대로 죽는 게 낫겠다는 말을 내뱉고 만다.


소망은 끈질기게 크리스천을 설득했다. 크리스천이 그동안 겪어온 고난과 승리를 기억하라며, 소망은 소망 없는 가운데 소망했다. 이후로도 거인의 주먹질을 당한 두 사람은 종일 바닥을 기며 신음했다.


크리스천과 소망은 토요일 자정 무렵부터 동이 틀 때까지 기도를 했다. 날이 밝아오려던 차에 크리스천은 '약속'이라는 열쇠가 품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냈고, 무사히 그곳을 나올 수 있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간구한 소망과 크리스천!


절망에 빠지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갖고 있던 약속의 말씀도 잊어버리고, 시도조차 하고 싶지 않다. 이제 그만 삶을 포기하라고, 이 고통을 끊어내라고 유혹하는 절망의 거인에게 크리스천은 따라야겠다는 착각까지 하게 된다. 절망의 거인을 이길 수 있던 한 가지는 오직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소망과 함께 기도로 매달렸을 때, 그 약속의 말씀을 깨닫게 된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하루치 독서 – 『천로역정』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