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치 독서 – 『천로역정』9

chapter 9 맹공을 퍼붓는 믿음 강도들

by 소설 쓰는 라떼
SE-4170b228-b00d-47ec-a07d-d35ce49fc1ad.png 존 번연, 『천로역정』, (두란노, 정성묵 번역)


# 날짜: 2026년 2월 28일

# 독서 시간 : 50분

# 분량: ~261쪽/ chapter 9 - 맹공을 퍼붓는 믿음 강도들: 소심과 불신, 죄책감의 실체

# 이 글은 한 평범한 생활독자가 읽고 이해한 범위 안에서 찾아 정리한 개인적인 기록이다. 물론, 신앙인으로서 읽은 감상도 일부 담겨 있다.




- 크리스천과 소망은 다시 천국을 향해 길을 따라갔다. 그러다 '자만'이라는 마을에서 나오는 '무지'라는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크리스천이 그에게 왜 '좁은 문'으로 들어오지 않았냐고 묻자 '무지'는 대답한다.

......그 좁은 문 말입니다.
우리 마을에서 얼마나 먼 지 온 세상 사람이 다 알고 있어요.
......쾌적하고 푸르른 길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그 좁은 문까지 간단 말인가요?
<230쪽>


앞서 무지는 기도와 금식, 십일조 등 종교적 의무를 게을리하지 않았음을 내세웠다. '나 정도면' 충분하다는 자기 확신에 찬 그는 천성 문 앞에서 출입증이 왜 필요한지 반문했다.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잠언 26장 12절


크리스천과 '무지'는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크리스천이 자신의 죄로 괴로워하며 길을 떠났던 것과 달리 '무지'는 자신의 그럴듯한 행동들을 자랑삼아 좁은 문이 아닌 쉬운 길로 끼어들어 금세 천성에 도달하고자 했다. 무지가 자만이라는 마을 출신이라는 것을 좀 더 들여다보았다. 자만은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것이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있는 것을 뜻한다. 즉 '무지'는 지식이 모자란 사람이라기보다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을 의미함으로 '자만'과 연결되는 상징이 있다. '무지'는 '나는 의롭다'는 잘못된 자기 인식을 갖고 천성 문을 향해 당당히 나아가고 있었다.




크리스천과 소망은 무지를 뒤로하고 계속 이야기를 나눈다. '작은 믿음'이라는 선량한 사람의 이야기다. 선량한 사람으로 소개된 '작은 믿음'은 왜 '작은'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을까, 궁금해졌다.


'작은 믿음'은 순례의 길을 가다가 '소심', '불신', '죄책감'이라는 삼 형제 강도를 만나 은 주머니를 빼앗기고,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피를 흘렸다. 다행히 '작은 믿음'은 천국 문의 출입증은 뺏기지 않았다. 크리스천은 작은 믿음이 기지를 발휘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짚어냈다. 그러나 '작은 믿음'은 남아있는 보물에 안도하다가도 금세 빼앗긴 돈 생각에 낙심에 빠지기를 반복하였고,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자신의 처지를 하염없이 늘어놓았다.


소망은 장자의 권리를 판 에서처럼, 그토록 힘들게 여행하면서 보물을 저당 잡히거나 팔지 않은 작은 믿음에게 의문을 품었다. 그에 대해 크리스천은 이렇게 대답한다.


......에서에게 장자권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그저 상징적인 것이었지만,
작은 믿음의 보물은 그렇지 않았지요.
에서에게는 자신의 굶주린 배가 곧 신이었지만 작은 믿음은 달랐습니다.
작은 믿음은 비록 믿음이 작은 사람이긴 했지만 작은 믿음이나마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마음은 하늘을 향해 있었지요.
<236~237쪽, 크리스천의 대사를 간추림>


소망은 크리스천에게 세 강도가 단순한 인기척에도 혼비백산해서 도망치는 겁쟁이 무리였는데도 왜 작은 믿음이 좀 더 용기를 내지 않았을까, 물음표를 던졌다. 크리스천은 작은 믿음이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KakaoTalk_20260302_132141496.jpg?type=w773 <239쪽>


강한 자가 있는가 하면 약한 자도 있는 법이니까요.
믿음이 큰 사람이 있는 반면, 작은 사람도 있으니까요.
작은 믿음은 믿음이 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239쪽>



챕터 9에서 '작은 믿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떠오른 인물이 하나 있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에 등장하는 '기치치로'이다! 작년 여름, 『침묵』을 다시 읽으면서 '기치치로'에 가장 많이 감정 이입이 되었다. 기치치로는 분명 믿음이 있는 자였다. 동시에 배신도 쉽게 잘하는 비겁한 자였다. 속일 듯 말 듯 , 결국 배신을 하면서도 로드리고 신부를 쫓아가 고해성사를 하며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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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 『침묵』, (홍성사, 공문혜 번역)



순교의 대열에 끼지 못했던 기치지로는 끝까지 자신의 억울함을 토해냈다. 그의 절규에서 나는 거부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와 연민을 동시에 마주했다. 크리스천이 말한 '작은 믿음'의 논리를 빌려온다면, 기치지로는 아마 이렇게 항변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굴뚝새와 황소로 각기 다르게 지어놓으셨으면서 왜 환란의 폭풍 앞에서는 모두에게 황소와 같은 강인함만을 요구하느냐고 말이다.


나는 크리스천보다 기치지로에 가깝기에, 그의 비겁함 속에 숨겨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을 붙들고 싶어서, 그에게 그토록 애달픈 연민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작은 믿음'의 분량을 가진 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인가?


만나는 사람마다 신세 한탄을 늘어놓으며 힘들게 산 '작은 믿음'의 믿음은 헛되지 않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작은 믿음은 가진 것은 다 빼앗기고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가장 소중한 '천국 출입증'만은 지켰다. 기치치로는 넌덜머리가 날 정로도 비굴한 언행을 반복하지만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못해서 미치겠어요, 라며 터질 것 같은 자신의 한계를 신께 고백한다.


한차례 광명의 천사로 둔갑한 아첨꾼에게 걸려들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길을 가게 된 크리스천과 소망은 다시금 깨어서 정신을 차려야 함을 깨닫고, 깨닫는다. 그리고 챕터 9의 마지막쯤에서 소망이 순례의 길을 걷게 된 까닭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소망은 세상의 온갖 부와 방탕함 등을 일삼고 살며 자신을 망가뜨렸다. 그러다 헛됨의 시장에서 '신실'을 만나 하늘의 것에 대해 듣게 되고, 진리를 깨닫는다. 누구나 그렇듯 삶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옛 친구들을 끊을 방법도 모르고 죄를 자각하는 순간도 너무 괴로웠다. 소망은 마침내 발버둥이라도 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죄를 일삼는 친구를 끊어냈다. 이웃에게 진리를 전했다. 통한의 눈물로 회개했다. 삶이 조금씩 변해갔지만 괴로움은 끊이지 않았다. 죄가 하나님의 책에 빽빽이 적혀있는데, 아무리 뜯어고쳐 본들 소용없는 일이 아니겠냐고 절망했다.


소망은 자신의 가장 선한 행동 속에서도 죄가 숨어 있어서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신실은 소망에게 예수님이 행하신 일과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받으신 일을 믿으면 의로워진다고 했다. 무릎을 꿇고 나를 만나 달라고 전심으로 간청하라고 알려주었다.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야 29장 12절~13절


그분은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을 용서해 주시기 위해 오래전부터 속죄소에 앉아 계신다고 말이다.


소망은 그분을 만난다고 해도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고 물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도 기도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리스도의 의가 아니면 세상 무엇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이 진리를 알았기 때문이다. 소망이 그렇게 믿고 기도한 끝에 드디어 마음의 눈으로 그분을 보았다.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에베소서 1장 18절~19절


소망이 주님께 물었다.


"주님, 과연 저 같은 죄인도 받아 주시고 구원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셨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장 37절


행위로 자신을 의롭다 믿는 '무지'의 당당함이 아닌, '나 같은 죄인도 받아주실 수 있느냐'는 소망의 절박함을 내치지 않으시는 그분께 드리는 이 기도문이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었으면 한다.


SE-89ce1549-5757-48f2-9567-b9c7f819f065.jpg?type=w773 <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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