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찬란한 종녀 1
종녀가 나타났다.
작은 어촌에 대식구가 우르르 몰려왔을 때, 줄줄이 달린 아이들보다 신기했던 것은 종녀였다. 걸걸한 목소리로 동생들의 등짝을 때리면서 내뱉는 거친 말투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어른인가 싶을 만큼 여러 번 해 본 솜씨인 데다 느릿느릿한 팔자걸음 또한 아저씨 같아 의아했다. 종녀는 말할 때마다 비뚤비뚤 치아들을 힘껏 드러내는 버릇이 있었다. 골이 오르면 물어버릴 듯 뾰족한 송곳니는 법랑이 벗겨져 긁힌 자국이 선명했고, 선머슴처럼 아무렇게나 잘라낸 머리칼이 비죽비죽 튀어나와서 그 나이대 여학생들이 흉내 내는 깔끔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종녀가 싫었다. 전혀 호감이 가지 않을뿐더러 이름도 거슬렸다.
- 뭐? 종녀나 금진이나 도긴개긴이고만 어디서 비교질이야?
언젠가 종녀의 첫인상에 대해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러자 종녀는 화통하게 웃으며 내 어깨에 매운 손바닥을 날렸다.
- 그래서 내가 왜 호감이 된 거야?
- 네 이름 뜻 알고 나서
- 불쌍했어?
- 그럴지도
- 너보다 불쌍한 사람 생겨서 좋았냐?
- 누가 더 불쌍한지 재볼 수도 없어
- 아니, 넌 재봤을 걸. 엄마가 있는 내 인생이 너무 후져 보이니까. 엄마가 있어도 저런 삶이라면 굳이? 뭐 그랬을 거 아냐.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종녀가 해탈한 웃음으로 돌아섰다.
마칠 종에 여자 녀. 종녀. 종녀는 한사코 "계집녀"자를 쓴다고 우겨댔다. 그게 그거라고 하자 종녀는 아니라고 했다. 집에서 종녀의 성별은 여자가 아니고 계집이었다.
- 니가 한 번 생각해 봐라, 계집은 이제 그만! 하고 이름을 지어놨는데 내 뒤로 동생들이 몇 이디?
- 니가 내 엄마라고 생각해 봐. 어디 이쁜 구석이 있겠어?
- 너네 엄마 일곱 살이야? 그런 생떼가 어딨는데?
- 대신 억울해하지 마. 공감도 안 되는 주제에 질질 짜지 말고.
종녀의 입을 통해 나오는 문장들은 꽤나 거칠고 생생했다. 그래서 꾸밈이 없이 귀에 쏙쏙 박혔다. 어쩔 때는 나도 모르는 나의 마음을 집어내는 듯해서 가끔 무서울 때도 있었다. 종녀가 눈알을 한 바퀴 싸악 돌리면 나는 말하지 않아도 될 얘기까지 전부 털어놓기도 했다. 고모가 식당을 할 때는 간혹 잔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훔쳐 슈퍼에 가곤 했는데 창수아빠의 분식점에서는 십원도 떼먹을 수가 없었다. 창수아빠는 예상외로 꼼꼼한 구석이 있어서 돈 관리에 소홀하지 않았다. 관리할 만큼의 장사가 되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부산스러울까. 그 부산스러움에 걸맞지 않은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으려는 완벽함 또한 우습게 보였다. 아마 동전 하나도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가는 건 끔찍하게 싫어했기 때문이다. 내가 가끔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열 가지 정도의 이유를 대야 받을 수 있었으니 종녀가 쓰는 거친 말들을 따라 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창수아빠의 금붙이를 몰래 숨긴 건 내가 팔아먹기 위함은 아니었다. 그저 나름의 복수였다. 종녀는 갸우뚱했다. 그래서 금붙이를 훔친 이야기는 갑자기 왜 털어놓느냐고, 묻지는 않았다.
종녀는 첫째도 아니고 둘째도 아니고 셋째도 아니다. 종녀는 넷째다. 종녀의 뒤로 4명의 여동생과 기적 같은 아홉째가 존재했다. 그 집안의 금지옥엽 막내아들이자 장손이었다. 그 장손 놈이 종이 인형처럼 비실하고 말수도 적어서 쭈뼛쭈뼛한 캐릭터인가 싶었지만 더 들여다보니 반대였다. 누나들에게 왕 대접을 받으면서 책만 읽어대는 벌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