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런 고민을 하게 된 건 다 원영이 엄마 때문이다. 그 여자만 없었으면 시아 7살까지 하하 호호 웃으며 "오늘도 재밌었니?", "점심식사는 맛있었어?" 같은 소소한 질문들을 나누며 지냈을 텐데 그놈의 발레학원은 다녀가지고 그것에 대해 쓸데없는 이제는 완전 쓸데 있는, 아니 오히려 간절하다 못해 다급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아이를 발레 레슨에 넣어 놓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원영이 엄마는 시아가 어디 유치원에 다니냐고 물었다. △△유치원에 보낸다고 대답하고 원영이는 어느 유치원이냐고 하니 □□유치원에 다닌다는 거다. 주변에 5살 때부터 '영어'유치원을 보낸 엄마들이 많아 유명한 곳들의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 원영이도 거기에 다닌다는 것이다. 다음에 수업 교재 좀 부탁드린다고 했고 그다음 주에 교재를 직접 보여주고 빌려주기까지 한 원영이 엄마가 그땐 참 고마웠고 훨씬 '난' 사람 같아 보였다. 우리 애와 같은 나이에 저 순진무구하게 생긴 원영이는 이런 책을 수업에서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니 ABCD도 헷갈리고 있는 우리 아이의 미래가 갑자기 암담하게 느껴졌다.
(출처: pixabay)
6살 5월 셋째 주,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영어’ 유치원에 전화를 했고 입학상담을 하며 들은 희소식은 6월까지 입학할 경우 입학 테스트를 안 보고 그냥 들여보내 주겠다는 것이었다. 알파벳의 반절도 모르는 우리 아이에게 이건 어쩌면 넘치는 행운의 기회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덜컥 입학의사를 말씀드렸고, 다니던 유치원에는 6월부터 못 나온다고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중요한 건 이제부터다. 시아를 설득해야 했다. 일은 혼자 다 꾸미고 저질렀는데 정작 시아에게는 아무런 상의조차 하지 않았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단지 입학 상담 때 슬쩍 보았던 로비와 급식실을 이어주는 대형 미끄럼틀을 타고 싶다는 기억만 가지고 있을 뿐. 그렇다면 아이의 그런 바람과 나의 욕망 한 스푼을 교묘하게 버무려 협상에 써먹어 보기로 했다.
“시아야~ 너 그때 엄마랑 가봤던 멋진 유치원 어땠어?”
“어 좋았어.”
”거기 커다란 미끄럼틀 어때?”
”타고 싶어.”
"그 유치원 다니면 매일 탈 수 있대. 엄청 신나겠지? 밥 먹으러 갈 때마다 그거 타고 내려가서 먹는대.
진짜 재밌겠다. 슈웅~"
"우와. 근데 나 지금 다니는 유치원이 더 좋아, 안 갈래”
"어? 아냐 왜 멋진 유치원이 더 좋지.
새 유치원에는 급식 먹는데도 저렇게 따로 있고 커다란 미끄럼틀도 있잖아. 얼마나 좋아.
우리 6월부터 저기 가자?”
”아니 안 갈래. 그냥 △△유치원이 좋아.”
안 먹힌다. 그럼 어쩔 수 없지. 마음먹으면 앞뒤 안 가리는 불도저 같은 성격은 이럴 때 십분 발휘되었고 시아는 그렇게 6월부터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영어’유치원에 다니게 되었다. 어제까지 다니던 유치원을 떠나 아는 친구도 한국어도 없고 한국인 선생님도 별로 안 보이는 외계 소굴에 우리 아이는 그렇게 남겨졌다. 시아를 꼬실 수 있었던 미끄럼틀은 열쇠로 입구를 잠가서 한 달에 한 번도 타기 힘들었다. 지금 생각하니 참 마음이 쓰리다. 작고 여린 6살 아이가 혼자 온전히 감내해야 했을 말 못 할 어려움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러나 또래보다 침착하고 어른스러웠던 시아는 다행히 한 달 만에 적응해서 기존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선생님께도 칭찬받는 모범적이고 똘똘한 아이로 인정을 받았다.
(출처: pixabay)
돌이켜보면 모두 내 불안함과 조급함 때문이었다. 유치원을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옮겨버리는 무리한 모험을 감행했던 건 나답지 못한 선택이었다. 나는 아이와 관련된 그 어떤 선택에도 아이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존중하겠다는 원칙을 가진 엄마였다. 그 잘난 가치관도 ‘영어’ 유치원이란 타이틀 앞에서는 아무 힘이 없었다. 물론, 그 선택을 후회하는 건 아니다. 다만 당시 아이가 겪었을 마음의 상처는 지금도 여전히 나를 힘들게 한다. 모든 게 결국 너를 위한 선택이었다고 얼버무린다면 나는 나쁜 엄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