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란,
높은 지능을 가진,
또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어린이.
책 육아의 싱그러운 결과였을까? 시아의 어휘 습득력과 선택이 또래보다 빠르고 남다르다 느꼈던 시기는 만 2세 정도였던 것 같다. 책을 읽어주거나 같이 놀 때 하루종일 많은 대화를 나눠서인지 수다스럽지는 않지만 자기 생각은 다양한 형용사를 넣어 디테일하게 이야기했다. 가령 감기가 걸려 열이 나면 '머리가 용암처럼 뜨끈뜨끈한데 소파에 누워서 푹 좀 쉬어야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기억력도 좋아 전집에서 본 그림이나 사진이 이전에 본 다른 책에 나와 있으면 매번 찾아서 이렇게 똑같다며 가져와 보여주곤 했다. 특히나 영어유치원을 같은 반 친구들보다 3개월이나 늦게 들어가 알파벳도 뒤늦게 외운 상황인데 매주 보는 단어 시험에서는 꾸준히 100점을 맞았다. 6세 마지막 수료할 때까지 딱 한번 1개를 틀린 게 전부라 선생님께서도 기특하다며 친구들 앞에서 칭찬을 해주셨다고 한다. 특별히 달달 외워간 것도 아니었는데 유독 암기력이 좋았지 않나 싶다. 7세가 되어서도 단어 시험은 100점 아니면 어쩌다 1개를 틀릴 뿐이었다. 어느 날은 반 대표로 스피킹 대회에 참가해 전체 2등을 한 적도 있었다. 수상은 기대도 안 했는데 인형과 상장을 받아 들고 좋아하던 시아의 환한 미소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시아는 7세 즈음 마리퀴리 위인전을 읽고는 그녀가 노벨상을 수상한 첫 번째 '여성'이며 심지어 두 번이나 수상한 최초의 과학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아이에게 그 사실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나 보다. 앞으로 본인의 꿈은 노벨상을 수상하는 두 번째 여성 과학자가 되겠다는 것이다. 아직 두 번째 수상자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나타나지 않아 자기에게도 기회가 있다며 설렘에 찬 눈빛으로 말하는 모습이 참 대견했다. '앞으로 큰 그릇이 되겠구나.' 엄마 혼자 야심 찬 희망을 품게 된 날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 인기는 여전하지만 시아 유치원 시절에도 영재판별테스트를 하는 게 유행이었다. 당시 ◇◇◇◇ 교육학술원에 입학시키는 일이 똘똘한 아이 좀 키운다는 엄마들에게는 단골 코스였다. 이에 뒤질세라 시아 또한 웩슬러유아지능검사를 받았고 테스트 결과 언어능력이 상위 1%로 아주 뛰어났다. 학술원 수업이 가능하여 시아가 좋아하는 과학 수업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역시나 아이는 개념에 곁들인 실험, 보고서 쓰기를 아주 흥미로워했고 같은 반 친구들도 모두 집중해 열심히 수업을 들으니 좋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꼬마 과학자'는 그렇게 한걸음 한 걸음씩 글로만 익혔던 과학을 몸소 체험하며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어렴풋한 추측은 종이에 수치화되어 아이가 '영재'라는 것을 선명하게 증명해 보였고 묘한 안도감마저 들었다. 솔직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책육아 말고는 별로 해준 게 없는데 그 영향이 컸던 걸까? 아니면 원래 타고난 건가?' 별의별 생각을 다 해보아도 뾰족한 답은 찾지 못했지만 말이다. 영재가 서울대 입학을 보장해 주는 필요충분조건도 아닌데 왜 그렇게 기뻤을까? 각종 미디어에서는 영재들의 특목고나 대학 조기입학 이후의 어두운 현실을 조명하며 그들의 삶이 보통 아이들보다 더 행복한 것만은 아니라는 의도를 내심 비춘다. 하지만 시험에서 한 문제라도 더 맞혀야 더 좋은 고등학교,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기에 내 옆의 친구들은 모두 경쟁자다. 이런 빡빡하고 야속한 입시 상황 속에서 내 아이가 남들보다 뭐라도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조금은 앞선 출발선에 서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소신 어쩌고 멋진 척 떠들어댔지만 결국 나도 그냥 욕심 많은 엄마였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이런 욕심이 꼭 입시에 국한된 점이 아니라는 것. 물론 입시를 잘해야겠지만 그에 앞서 시아의 꿈을 존중하는 게 우선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일에는 엄마의 최대치 욕심을 발휘해 줄 것이지만 아이를 아프게 하는 일은 욕심내지 않을 생각이다. 입시 위에 아이의 꿈이 있고 그 꿈 위에 반드시 시아의 행복이 있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