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기 싫어 책 육아 시작한 극단적 내향 엄마

제2화

by 벨라Lee

원할 때는 관심받고 싶지만 평소에는 관심 어린 시선이 너무나도 부담스러운, 나는야 INFJ. 중고등학생 시절 선생님께서 질문을 하시면 답을 알아도 절대 손을 들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발표가 있는 수업은 무조건 수강하지 않았다. 내 말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눈빛은 극도의 긴장감부끄러운 감정을 만들어냈다. 전화통화도 싫었다. 전화를 받는 건 괜찮지만 거는 건 할 수가 없었다. 혹시나 바쁜 상대에게 내 전화로 인해 곤란함을 주는 게 참 싫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받는 건 마냥 괜찮았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통화 중 할 말이 끊겨 수초 간 정적으로 흐르는 그 시간이 어색해서 견딜 수 없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도통 생각은 나지 않고 상대도 조용히 있으면 뭐 '어쩌라는 건가?' 싶었다. 식은땀이 날 정도로 난감했다. 사람들을 만나도 비슷했다. 가족과 베프 빼고는 모두 어색한 사람들뿐이었다.

그러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저절로 키워진 스마일 기법은 꽤나 잘 통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주로 실없는 농담이나 상대방을 칭찬해 주면 어색하게 흐르는 공기가 신속히 바뀌며 상대방의 눈빛도 점점 부드러워졌다. 그렇게 나는 잘 웃는 밝은 사람으로 주변에 인식이 되어 주로 E(외향성)가 아니냐고 많이들 물어봤다. 아니라고 하면 의외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세상에 익숙해지니 성향도 바꾸어 보이나 보다.


이런 사람이 자식을 낳았다고 근본 성향이 크게 달라지겠는가. 당연히 아니오. 아이 옷이 더럽혀지고, 주변의 모래, 흙, 풀 등을 만지며 손이라도 빨면 혹여 큰 병이라도 날까 싶어 집 앞 놀이터에 유치원 입학 전까지 한 번도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아이 이야기로 동네 엄마들과 두런두런 수다 떨 에너지도 없었고, 더 큰 이유는 그들과 친해져서 이 집, 저 집 왕래하기 시작하면 평온하던 나만의 육아 패턴이 부산해질 것 같아 썩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남들에게는 좀 외롭게 보였겠지만 나에게는 아이에게만 몰입할 수 있는 조용한 육아가 좋았다. 체력이 그다지 좋은 편도 아니라 풀파워를 지닌 아기를 감당하기엔 늘 역부족이었다. 놀아도 놀아도 끝이 없는 나날의 연속은 다음날을 두려워하며 잠드는 어미의 모습으로 점점 바뀌어갔다. 새로 산 장난감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져 안 놀겠다 하고 하루에 1시간 보여주는 TV시청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또다시 원점이었다. 문화센터를 가고 일일 체험을 다녀도 일회성일 뿐 그것이 하루를 꼬박 채워주는 행복한 마법이 될 수는 없었다. 이 지루한 굴레를 벗어나려면 조금 더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대책이 필요했다.



어느 날 친한 친구의 언니가 아이 책을 정리한다며 필요하면 모두 가져가라고 연락이 왔다. 갓 돌을 지난 시아에게 읽힐 책들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고마운 기회라 신랑과 함께 낑낑 거리며 집으로 실어 날랐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읽던 책이니 아기가 망가뜨려도 부담되지 않고 읽다 버려도 그뿐이라 장난감처럼 놀게 하고 읽어주기 시작했다. 대략 100권은 족히 넘었는데 시아가 읽기에는 글밥이 좀 많은 책들도 섞여 있었다. 그러나 크게 아랑곳하지 않고 시아가 심심해 보일 때마다 옆에 앉혀놓고 그림을 가리키며 천천히 읽어 주었다. 당연히 성대모사는 기본이었다. 사람, 동물, 식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캐릭터들의 목소리를 소화해 내는 엄마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시아는 책에서 나는 소리인지 엄마가 내는 소리인지 헷갈려하면서도 다시 책으로 집중을 했다. 나중에는 책을 펼쳐놓은 채로 잠시 집안일을 하러 방을 나가면 시아 혼자 책을 만지작 거리고 책장도 휘휘 넘기며 그림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 중얼거리기도 했다. 아마도 엄마가 성대모사하던 부분을 흉내 내는 것이리라. 그렇게 책은 아이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한 존재였다.




시아가 3살이 되던 해 전집을 들였다. 동물이야기, 전래동화, 다문화, 과학, 위인전 등 이번에도 시아에게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주제도 있었지만 앞으로 쭉 읽힐 목적으로 차근차근 모으기 시작했다. 아이는 물 만난 고기처럼 이 책 저 책 할 것 없이 마구 펴고 덮고 구경하고를 반복했다.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시아가 가져오는 책은 목이 쉴 때까지 열심히 읽어주었다. 시아는 너무 재미있는 책은 "또, 또!"를 반복하는데 그런 책들을 정말 10번도 넘게 반복해 읽느라 그냥 문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매일 이렇게 두세 시간씩 온 정성을 다해 읽어주다 보니 목이 너무 아프고 체력도 금세 바닥나게 되었다. 집안 살림도 해야 하기에 이렇게 책 읽기로 힘을 다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와 시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보내려고 시작한 독서육아인데 내가 먼저 지쳐 떨어지면 안 되지 않나.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세이펜이었다. 세이펜으로 편하게 듣는 습관이 들면 글을 직접 안 읽으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해 계속 거부하고 있었는데, 책육아를 포기하느니 세이펜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세이펜을 쥐어주고 방법을 알려주니 아이는 빠른 적응력으로 이것저것 꾹꾹 눌러대기 시작했다. 음악이 나오고 예쁜 목소리가 흘러나오니 시아는 해맑게 웃으며 이전보다 더 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살짝 두고 주방에서 저녁 반찬을 만들고 청소기도 민 다음 방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세이펜과 합체가 되어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과연 언제까지 날 찾지 않을까 테스트해보고 싶은 마음에 거실에서 기다려 보았다. 두세 시간이 지났을까, 시아는 그제야 방을 빠져나와 "엄마"를 불렀다. 이후에도 조용해서 방에 가보면 세이펜을 안고 책 옆에서 잠드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그렇게 세이펜은 시아에게 매직, 나에게는 구원이었다. 세이펜 개발한 분들께 감사떡이라도 돌리고 싶은 심정이랄까.


글을 알기 시작한 이후로는 세이펜과 다소 소원한 관계가 되었지만 펜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좋아 일부러 켜놓고 책을 읽는 날도 많았다. 그림을 그리다가도 심심하면 책 읽기, 장난감과 놀다가도 지루해지면 책 읽기. 시아에게 책이란 그림보다 장난감보다도 더 본인의 마음을 알아주는, 언제 찾아가도 두 손 벌려 맞이해 주는 베스트프렌드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나는 시아가 초등학생이 되어도 꾸준히 책을 읽어 주었다. 이제는 영유아기 때처럼 몇 시간씩 읽어주지는 못하지만 아이가 조금 어려워해 선뜻 읽을 용기를 내지 못할 때에는 어린 날의 그때처럼 엄마의 육성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그러면 아이는 흥미로워하며 금세 그다음 장을 궁금해했다. 초등 고학년이 되고도 여전히 책으로 힐링을 하는 시아는 지금도 청소년 도서를 1주일에 최소 2~3권 정도는 읽고 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책 읽을 시간이 자꾸 부족해진다며 투덜거리는 그 모습이 마냥 귀엽다.


시아야, 엄마는 널 낳은 것이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이고 두 번째는 책을 사랑하는 아이로 만든 일이라고 생각해. 네가 내향적인 엄마를 만나 본의 아니게 집에서 책을 읽는 아이로 자라야 했을지도 모르지만 이후에도 꾸준히 독서를 하는 건 네 선택이었을 거야. 책이 없으면 슬프다는 너의 그 마음 변치 말고, 양서를 많이 읽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