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애응애."
지금 가슴 위에 올려져 있는 이 뜨끈한 것이 내 아기 시아란 말인가. 300일 남짓의 시간 동안 이 순간을 얼마나 학수고대했는가. 척추에 꽂혀 있는 마취제 때문인지 벅찬 기분 때문인 건지 갑자기 숨이 턱 막힌다.
아이들 앞에 서서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을 좋아해 명절에 친척들이 큰집에 모이면 사촌 동생들을 앉혀 놓고 꼭 선생님 놀이를 했다. 당연히 선생님 역은 항상 나. 여러분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이게 뭘까요, 저건 왜 그럴까요. 동생들은 재밌어 죽겠다며 불만 하나 없이 내 말을 잘도 따랐다. 덕분에 어른들은 애들만 모이면 항상 일어나는 울기, 떼쓰기, 싸우기 3종세트를 이 날만은 볼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수년간 애들 찍소리 안 하고 방에서 조용히 놀게 해 준 나에게 누가 감사 선물이라도 좀 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이렇게 아이 사랑이 남달랐기에 결혼해서 아이를 바로 갖고 싶었다. 남의 아이도 이렇게 이쁜데 내 아이는 얼마나 이쁠까, 상상이 안 가면서도 상상이 가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9년의 열애 끝에 결혼을 했고 나는 당장이라도 아기를 갖고 싶어 했지만 신랑은 결사반대였다. 아직 서로 맞벌이고 재정적으로 더 안정을 찾으면, 아기를 맞을 준비가 완벽히 이루어지면 갖자고 했다. 사실 본인은 아기 없이 살아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기 안 가지려면 왜 결혼을 하지, 난 아기가 갖고 싶어서 결혼한 것도 있는데. 이것은 충격 그 잡체. 완고한 그의 의지는 꺾을 수 없었고 왠지 서글픈 날도 있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나는 그토록 바라던 내 아기를 갖게 되었다. 임산부를 많이 질투할수록 아기가 빨리 생긴다더니 나도 지인들의 임신 소식과 아기들을 보면서 어지간히도 부러웠었나 보다. 사실 막상 아기를 가지려니 두세 달 동안 임테기의 두줄이 보이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극심했는지 아는 사람들 만나는 것이 싫고 두려웠다. 결혼 전에도 열심히 챙겨보던 오은영 박사님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가 꼴도 보기 싫었으니 말 다한 거다. 친정 엄마께는 이번달에도 자연임신이 안 되면 다음 달부터는 바로 인공수정을 시작할 거라는 엄포도 놨었다. 그런 인내심의 마지노선인 8월에 기적처럼 시아가 내게 온 것이다. 이렇게 천신만고 끝에, 아니 지금 생각해 보니 그냥 혼자 생쑈했던 그 지옥 같던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일어났어? 엄마 전화야 받아볼래?"
몽롱한 안갯속에서 신랑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어머니의 축하 인사를 시작으로 지인들에게 얼얼한 혀를 움직이며 연신 "감사합니다."를 반복적으로 읊었던 것 같다. 그래도 좋았다. 입가에서 자꾸 피식피식 행복의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도 이제 아기가 있다고.
"아기 이름 몇 개 추려봤는데 뭐가 좋겠어? 골라봐."
졸리고 어지러운데 자꾸 말을 시킨다. 그래도 내 새끼 이름은 결정하고 자야지. 벌써 모성애가 발현된 건지 시아가 좋겠다고 대답했다. 까무룩 다시 잠이 들었나 보다. 눈을 떠보니 신랑은 환하게 웃으며 눈앞에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출산하며 급 늙은 건지 독한 진통제 탓인지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하게 체크한 건 출생신고서라는 다섯 글자와 서울시 강남구라는 우리 아기 주소. 참으로 절묘하게도 시아가 태어나고 약 두 달 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국을 강타했다. 이 곡은 시아를 위한 축하곡이라며 헛소리를 해대던 시절이었달까.
'강남'이란 두 글자가 여전히 기세를 떨칠 수 있는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이곳이 교육과 학원의 메카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치동의 '학원 백화점'은 고객의 니즈에 맞춘 다양한 레벨과 세분화된 커리큘럼으로 언제든 준비된 자세로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시간과 돈이 부족하지 내게 맞는 학원이 없어서 못 다닐 염려는 없다는 얘기다. 시아를 이곳에서 낳은 이상 우리도 피해 가긴 어려울지 모른다.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소신 있게 두 손 맞잡고 뚜벅뚜벅 걸어가리라 굳은 다짐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