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년이라 쓰고 딜레마라 읽는다

제7화

by 벨라Lee

어느덧 초등5학년. 친구들은 이미 중등 수학을 넘어 고등수학 선행에 여념이 없다. 며칠 전 담임 선생님께서 초등6학년 수학을 미리 공부하는 것은 예습의 개념이고 중등 1, 2학년 정도는 선행이라고 하셨단다. 덧붙여 지나친 선행을 할 경우에는 현재 배우는 수업이 재미가 없어져 집중도가 떨어진다고 우려도 표하셨다고 한다. 맞는 말씀이고 정말 사실이다.


오늘도 아이들은 쉬는 시간의 연장으로, 수업시간을 각종 종이들을 오리고 붙이는 공작시간으로 만드는 중이다. 교과서를 세워놓고 몰래 학원 숙제를 하거나 이도 저도 아닐 경우에는 누가 누가 멍 때리기를 잘하는지 가리는 경연장을 연출한다. 수행이나 단원평가를 위해 선생님께서 '중요하니 이 내용은 밑줄 치세요.' 라며 대놓고 출제문제를 떠먹여 주셔도 아랑곳 않는다. '수업만 열심히 들어도 좋은 점수를 받을 텐데.'라며 딸아이는 아쉬움을 종종 토로하곤 한다. 분명 시아도 매시간 집중력 100%로 수업에 임한다는 보장은 없겠지. 딴청 피우고 공상도 했다가 교과서에 낙서하면서 보낼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 특유의 이런 산만함을 감안한다 해도 오늘날 교실의 모습은 상당히 답답해 보인다. 이는 어찌 보면 대한민국 사교육 시장과 선행에 내몰린 아이들의 억눌린 자유를 학교라는 쉼터(?)에서 풀어 보려는, 그들의 나지막한 호소인지도 모르겠다. 과연 누구를, 무엇을 탓하고 어디부터 풀어가야 하는 것일까.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AI, Chat GPT, 빅데이터 등의 용어들은 이제 우리에겐 익숙하다. 하루만 자고 일어나도 많은 것들이 변화되어 있는 시대이지만 교육계를 비롯한 학부모들의 교육관은 여전히 30년도 더 된 케케묵음에 머물러있는 것 같다. 지속적인 인구감소로 대학마다 입학정원은 미달사태가 난 지 오래인데, 대학의 서열화는 꼿꼿하게 버티고 있기에 최상위권 대학에 들어가는 길은 여전히 바늘구멍만큼 좁디좁고 가시밭처럼 험난하기만 하다. 초등학생 때부터 열심히 공부해 어렵사리 들어간 S.K.Y.인데 합격의 기쁨도 잠시, 이곳이 그들의 종착지는 아니란다. 또다시 의대를 들어가기 위해 피땀눈물 흘리며 재수, 편입, 전과에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는 게 오늘날 대학생들의 딱하고 안쓰러운 현실이다.


어찌 보면 이런 의대 쏠림 현상은 다른 직종에서는 딱히 뚜렷하고 장기적인 비전을 찾기 어렵다는 반증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의사가 아니어도 유튜브크리에이터, 사업가, 연예인, 운동선수, 웹툰작가 등 명예와 부를 거머쥘 수 있는 길은 많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던 대학의 서열화는 설사 이들이 부자로 성공했다 하여도 대학의 간판을 운운하며 그들이 머리에 든 게 있느니 없느니 사람들 떠들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준다. 그래서 최상위권 성적으로 입학한 '지적임'과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는' 선함''기술력'을 모두 갖추고 '부'와 '명예'는 자연스레 따라오는, 소위 '완벽한 능력자'가 된다면 그 누구도 흠잡을 수 없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 너도나도 이렇게 의대 열풍에 한몫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학원들 여기저기서 하루가 멀다 하고 방학특강 문자를 보내온다. '수학 1%를 향한 초/중/고등 약점 진도 완전정복', '통합과학 대비 초5 중등과학 시작', '영재학교/과학고 또는 의대를 목표로 하는 이과 최상위권을 위한 설명회' 등의 이름으로 말이다. 겨울방학엔 아이들 수업이 곱절로 늘어난다. 오전의 학교수업을 대신해 방학특강들로 빼곡히 채워지기 때문이다. 학원에서 배운 지식의 양만큼 실제 학교 시험에서도 전 과목이 우수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학교에 다니지 않고 유명 학원 종일반만 등록해 놓으면 만사 오케이일 텐데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단비 같은 사실은 학교생활과 수업을 간과하고는 결코 최상위 대학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설령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입학했다 한들, 기본부터 충실히 쌓아 올려 탄탄한 내공을 지닌 아이들과는 인생의 어느 순간 큰 격차가 날 것임은 자명하다. 요즘에는 공부시간을 벌기 위해 자퇴를 감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로 인해 잃게 되는 소중한 학창 시절은 훗날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양성이 실종된 개인과 사회의 미래는 불행하고 암울할 것이 확실한데 오늘도 아이들은 학원 순례를 하느라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채, 영혼 없는 표정으로 숨 가쁘게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며 묵묵히 견뎌내는 대견하고 착한 아이들에게 오늘은 꼭 '수고했다.'말과 함께 따뜻하게 안아주면 좋겠다. 그리고 다정한 목소리로 이렇게 물어봐 주길.


"우리 00 이는 나중에 커서 진짜, 진심,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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