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드래곤이 7년 만에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참 리스너'로서 자연스레 지디의 뮤비를 감상하고 스트리밍을 해서도 몇 번 들었다. 중독성 강한 비트 위에 역시나 지디다운 힙한 랩이 귀를 즐겁게 해 주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오 괜찮네' 딱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이번엔 크나큰 실수를 저질러버렸다. 바로 유튜브로 지디가 나왔던 보이는 라디오 방송을 보게 된 일이었다. 딱히 큰 이유는 없었지만 재생시간이 1시간인 것을 보니 꽤나 많은 이야기들을 DJ와 나누었나 보다, 오랜만의 컴백인데 어떤 질문들을 받고 지디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하는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것 같다. 사실 컴백 전 지드래곤은 마약 누명 사건으로 인해 무죄를 증명하느라 심신이 무척 지쳐있었을 것이다. 다소 과한 제스처와 불안한 행동, 느리고 어눌한 말투 때문에 종종 마약 투약을 의심받곤 했었다. 일반인이어도 견디기 힘든 시선을 공인, 그것도 세계적인 스타가 겪어내기엔 죽을 만큼 힘들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는 한 방송에서 그동안 지용이로 산 시간이 너무 길었다며 이제 다시 지드래곤으로 돌아가고 싶어 근질근질해 컴백을 결심했다고 했다. 그 마음, 그 선택 정말 잘했다고 용기 내주어서 참 고맙다고 손잡고 그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물론 팬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겠지.
김이나의 별이 빛나는 밤에
아무튼 12년 만에 라디오에 출연한 지디는 이전보다 꽤나 저음의, 질문을 받을 땐 좀 산만한 모습을 보였지만 대답을 할 때에는 굉장히 신중하고 진솔하며 섬세한 면모와 역시나 지디다운 묵직한 카리스마도 느껴졌다. 말을 고르고 골라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고말실수하지 않으려고 매우 조심하는 모습을 보면서 말의 무게가 얼마나 그에게 큰 것인지, 그동안 얼마나 말로 인해 아팠던 적이 많았길래 저리도 고심하는 건지 안쓰럽기도 했다. 이렇게 그를 측은하고 애틋하게 생각하는 자체가 이미 덕후의 조짐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김이나 작사가가 워낙 지디가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더 알콩달콩 수다 떠는 느낌으로 방송을 볼 수 있어 웃다가 진지했다, 웃다가 몰입했다 하면서 재밌게 봤다. 그러면서도 지드래곤의 면면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고 그를 세련된 아이돌, 그 이상으로 느끼는 첫 물꼬를 트게 된 계기가 되었다.
신곡 <POWER> 자켓사진
지디가 워낙 연예인의 연예인이며 반짝이는 패셔니스타이며 작곡, 작사, 춤 천재인 건 이미 많은 방송을 통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게다가 예능도 잘하고 말도 조리 있게 똑 부러지게 하고예의 바르며 당당하지만, 겸손미도 지닌 것도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입고 차고 신고 쓰는 것들은 순식간에 품절돼서 본인이 같은걸 하나 더 구하려고 해도 살 수 없을 정도로 그의 A to Z가 관심사고 이슈라는 것도 결코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딱 셀럽의 느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그의 영상을 검색해 이것저것 찾아보고 사진을 보며 너무 멋지다고 벌어진 입을 틀어막으며 감탄하는 정도의 찐 팬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라디오 방송 이후로 빅뱅 신인시절 영상부터 시작해 솔로영상, 유닛영상을 뒤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무도 없는 주방식탁에 앉아 꺅꺅 소리를 지르며 좋아하는 나라는 사람, 이제 어쩔 것인가. 덕질은 남자 아이돌은 BTS 지민, 여자 아이돌은 뉴진스에서 멈춘 줄 알았는데 신인도 아닌 옛날(?) 가수, 지드래곤을 좋아하게 되다니. 한 번 빠지면 끝없이 파고들어 웬만한 매력들은 흡수해야 안정감이 드는 성격이라, 새벽 3시까지 지민의 영상을 보며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하던 9년 전 그때가 오버랩되었다. 왜 나는 배우에게는 빠지지 못하고 꼭 가수인지, 그것도 아이돌인지. 어릴 때에도 아이돌, 40대 아줌마가 되어도 아이돌. 한 번 아이돌 덕후는 영원한 아이돌 덕후로만 맴도는 것인지 그것이 참 알고 싶다.
<HOME SWEET HOME> 앨범사진
아이돌 덕질할 때 연말이면 시작되는 3대 방송사 연말 가요제, MAMA 등의 시상식도 새벽까지 잠을 몰아내가며 참 열심히 챙겨보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제 시간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다시 보기 할 수 있기에 그럴 일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무대는 후에라도 꼭 챙겨봤는데 이번엔 지드래곤이 출연한다고 하길래 유튜브로 시상식이 있던 다음날 보았다. 시상식 전날에 또 다른 신곡내고 다음날 태양, 대성과 셋이 'HOME SWEET HOME' 합동무대를 하는 자신감이라니. 그걸 가능케 한 지드래곤은 역시 G-DRAGON이었다. 마지막에 '뱅뱅뱅'과 'Fantastic Baby'를 부를 때에는 후배 가수들까지도 흥겹게 소리 지르며 춤을 추는 모습에 빅뱅으로 시상식장이 대동단결된 것 같은 분위기였다. 사람들이 얼마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지드래곤의 컴백을 얼마나 애타게 참고 견디며 바라고 있었는지 그 마음이 내게도 전해져 괜히 눈물도 훔쳤다는 건 안 비밀!
누군가를 아무런 대가 없이 좋아한다는 건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그 시작점에 놓인 것 같다. 그의 쓸쓸함을 털어내주고 싶고 많은 것들을 이해하고 싶다. 엄청난 부와 명성을 가진 그가 무엇이 외롭고 견디기 힘들 정도로 괴로웠을까, 배부른 소리 하는 거 아닐까.어쩌면 우리는 평생 그를 이해 못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의 삶을 직접 살아보기 전에는 함부로 상대를 재단할 수는 없는 일 아닐까. 힘들다면 안아주고 괴롭다면 덮어줄 수 있는 넓은 마음으로 묵묵히 곁에있어준다면,상대는 치유받음으로써 더 멋진 아름다움을 꽃피울 거라 믿는다. 진짜 지드래곤을 이제라도 알게 되고 좋아할 수 있게 되어 고맙고 그의 음악을 즐길 수 있어 고맙고, 그가 앞으로 계속 활동할 거라 해줘서 고맙다. 콘서트표 예매가 가능할지 벌써부터 걱정하는 계획형 J는 어느 빠른 PC방으로 가서 대기를 타는 게 좋은지 슬슬 조사 들어가야겠다. 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