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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Lee Nov 20. 2024

참 예쁜 여중생 둘

거리를 지나 보면 교복 입은 중, 고등학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의 중간중간 욕을 , 대화를 하는 건지 화를 내는 건지 모르겠는 소리를 종종 게 된다. 심지어 깔깔대고 환하게 웃으며 서로를 밀고 밀치는데 말투는 매우 거친 경우도 있었다.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욕을 섞어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대화가 안 되는 건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친구가 자주 쓰니까 일종의 추임새처럼 가볍게 여기고 사용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 하굣길에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사실 어린 친구들의 욕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고 마음이 편치 않다. 그들만의 세상을 내가 너무 꼿꼿한 태도로 참견하는 걸까. 어차피 지나가면 다시 제자리를 찾을, 나도 뻔히 겪었던 청소년시기인데 이젠 까맣게 다 잊은 듯 꼰대 행세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약속이 있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두 여중생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았다. 가까이 다가가기 전까지는 그저 일상에 대해 툴툴대는 거겠지, 추측만 했다. 근데 가만히 얘길 들어보니 학원에서 받은 숙제를 조금만 하면 다 끝난다는 참 별거 아닌 내용이었다. 둘은 서로 기쁨의 하이파이브를 하더니 곧 다른 주제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심심하고 어른들의 눈에는 그저 그렇고 그런, 맹숭맹숭한 대화였다. 요즘 아이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들. 한 번도 미간을 찡그리거나 세상에 대한 불만 없이 그저 해맑은 모습을 보며 저 아이들은 둘이 함께 있는 그 자체가 매우 즐거운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달눈을 하고 서로를 향해 환하게 이를 드러내 모습이 참 예쁜 청춘이었다. 나에겐 이렇게 순수한 학생들을 볼 수 있어 감사한 순간이었고 말이다.


문득 나의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베프와 나는 그 시절, 참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을 깔깔거리며 나누었고,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무슨 이야기를 하든 좋았다. 브래드 피트를 좋아하는 친구와 서태지와 아이들을 좋아하는 나는 서로 다른 연예인의 팬이었지만, 그 점을 인정하며 친구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으로 신기한 세상을 탐험하듯 서로에게 눈을 반짝였다. 우리는 편견 없이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기에 솔직하게 감정도 표현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굳건히 오래갈 수 있었고, 가끔 의견이 어긋나더라도 상대가 마음 아파하는 것이 싫어 금세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사과하고 화해했다. 불편함이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세상 무엇보다도 싫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보니 그때의 우리가 어렸음에도 서로의 생각과 세상을 언제나 존중해 주었다는 점이  기특하다.


사춘기가 되면 친구의 존재는 부모님을 넘어서는 거대하고도 깊은, 대체할 수 없는 중요한 의미가 된다고 들었다. 나도 그랬으니까, 지금의 어린 친구들도 당연히 그런 과정을 거치며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겠지. 특히 여자친구들은 자신의 무리에서 이탈되는 것이 세상 전부를 잃은 것처럼 절망적인 일이기에, 매일 관계유지를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 공부하기도 빠듯해 분단위로 쪼개 사는 아이들이 감정소모까지 극심하게 겪으며 사회생활도 잘해나가려 애쓰는 모습에 안쓰러운 마음도 든다. 하지만 세상 밖은 비교도 안 될 만큼 혹독한 일들이 많을 것이기에, 아이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을 때 미리 시련을 딛고 다시 일어나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부모가 곁에서 응원하고 잘 보살펴주어야 할 것 같다. 친구들 속에서의 나와 온전한  그 자체로서의 모습 사이에서 균형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말이다.


내년에 중학생이 되는 딸에게 나는 엄마로서 어떻게 아이의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며 올바른 길을 안내할 현명한 나침판이 되어줄지 아이의 겨울방학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려 한다. 아이를 성장시키는 일은 아이 혼자보다 부모와 함께할 때 더욱 가치가 있을 테니, 2달 반이라는 적지 않은 날들 동안 서로에 대해 많이 대화하고 속마음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 탄탄한 관계를 만드는데 우선순위를 둘 것이다. 공부는 입시가 끝나면 끝이지만 자식과의 관계는 평생 간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공부도 좋지만 그에 앞서 딸과 평생 다정한 관계로 남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소원에만 그치지 않도록 나도 계속 독서하고 글을 쓰면서 내면을 튼튼하게 다져나갈 것이다. 앞서 말했던 예쁜 여중생들처럼, 다른 어른들의 눈에도 우리 아이가 어여삐 보였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마음이 비단 욕심에 지나지 않기를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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