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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Lee Mar 04. 2024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밤의 감정공장은 어디로...

띠리리리리.

알람이 울린다. 잠든 지 몇 시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자꾸  일어나라고 소리를 질러대니 이것 참 야속하구나. 반쯤 감긴 눈으로 시계를 올려다본다. 아직 6시. 창밖을 슬쩍 보니 아직 어둑어둑하다. 내 몸은 돌덩이처럼 굳어 풀리지 않았건만, 노곤노곤한 정신은 자꾸 나를 침대에서 재우려고 하건만 일어나야 하다니 참 죽겠다. 10분만 뒤로 예약해 놓고 그때 일어날까? 그냥 알람  자버릴까? 하지만 그런 강심장은 되지 못해 고뇌 속에 결국 포근했던 이불을 걷어낸다.


사실 아이의 학원 수업 오늘 오전에 있는 어제 오전에 숙제를 하나도 하지 못한 채 외출을 했다. 너무 많이 걸어서 그랬는지 저녁에 눈도 못 뜨고 많이 피곤해하길래 그럼 일찍 자고 내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숙제를 하자고 어제 약속을 하고 재웠었다. 아이에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아침 6시의 기상이 웬 말인가 싶었다. 그 시간에 내가 일어나 아이를 깨울 수 있을지 도통 자신이 없었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는 엄마 신분인지라 어젯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잠든 거였다. 그런데도 이른 아침을 맞이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이렇게 찰나의 고민에 둘러쳐져 있다.


결국 우지끈 뚝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우고 아이를 흔들어 깨웠다. 미동이 없다. 미안하지만 방 불의 스위치를 올린다. 쨍한 조명에 눈이 시리다. 정통으로 빛의 자극이 갔는지 아이는 몸을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리기 시작한다. 등을 살살 토닥이며 시아야 일어나자, 어제 못한 숙제하고 학원 가야지고 말을 하는 순간 꿈틀대던 아이는 벌떡 일어나 눈을 비비며 앉는 자세를 취한다. 내 말을 다 알아들은 거겠지, 대견하군.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어미는 요령 피우며 어떻게든 잠을 더 연장할 궁리만 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사실 난 잠이 많은 잠보다. 대학생 시절, 전날 밤 12시에 잠들어 다음날 오후 1시에 일어난 나를 보고 엄마는 네가 죽은 줄 알았다고 하실 정도로 한 번 잠이 들면 화장실 한 번 가지 않고 스트레이트로 쭉 잠을 잤다. 누가 데려가도 모를 정도로 숙면을 취했다. 그래서인지 평소에 잘 먹지도 않고 빼빼 말랐었지만 충분한 수면 덕에 활기차고 명랑한 기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넌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좋으냐 묻는다면 잠자는 거요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 만큼 오래 자는 거라면  자신 있었고 매일 잠만 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잠을 쪼개며 추위에 밖에 나가야 하는 게 너무 싫어 사람은 왜 동물처럼 겨울잠을 자지 않는 것인지 불만을 가졌던 적도 있었더랬다. 영하에 덜덜 떨면서도 버스 타고 회사만 잘 다녔으면서, 데이트하느라 짧은 치마 입고 길에서 오들오들 떨면서도 연애만 잘해놓고선 말이다.

 

잠도 많지만 밤도 좋아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게 일상이었다. 밤에는 참 이상하게 뭐든 집중이 잘 됐다. 어둑함이 뿌려놓고 간 적막함과 고요함이 날 쉽사리 잠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공부도 잘되었고 충만하게 차오른 감성으로 연애편지도 술술 잘 써지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귀와 마음에 쏙쏙 박혀 울기도 웃기도 많이 했다. 나의 풍부한 감정 공장은 밤에 풀가동되었기에 이곳에서 생산되는 따뜻하고 다양한 기분들을 뒤로한 채 결코 잠자리에 들 수 없었다. 눈꺼풀이 무거워지더라고 애써 부릅뜨며 그 감정을, 감성을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내 영혼이 그득그득 채워지는 이 날 일으켜주는 큰 힘이 되었으니까.


이렇게 긴 밤을 사랑하던 날들은 육아와 함께 전면 중단이 되었다. 아기비슷한 생활 패턴을 유지해야 더 효율적으로 지낼 수 있때문이었다. 아기가 잘 때 자고 아기가 깨어 있을 때 집안 살림을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생활이 자리 잡다 보니 아이가 어릴 때 나는 일찍 자는 엄마였고 초등 입학 후에는 학교를 보내야 하니 일찍 일어나는 엄마가 되어야 했다. 일찍이란 단어를 누구에게 말하긴 부끄러운 내 기준의 이른 시간이지만. 아직도 내가 안 자면 같이 기다리며 밤에 잠을 자지 않는 아이 덕분에 황홀한 혼자만의 밤 공장은 문을 닫은 지 오래다. 그럼 차라리 이 참에 옹달샘 세수하러 가는 토끼가 되어 생수 한 잔 들이켜고 상쾌한 새벽을 맞이해 볼까? 일단 내일 알람부터 새벽 5시로 맞춰놔야겠다. 생각의 전환은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하는 출발점이 되어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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