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에 쓴 글들을 보면 뭔가 꽤나 당차고 겁 없으며 어둡고 딱딱한 글들도 있었다면 꽃연재를 시작하면서 어투를 존대로 쓰다 보니 언어의 결이 한결곱고 부드러워졌다. 신기한 변화였다. 확실히 초반의 나는 마음의 벽이 딱딱했고 응어리져 있었다. 분출하지 못한 덩어리들과 걸러내지 못한 찌꺼기들이 한데 뭉쳐서는나도 모르게 짓누르고 있었나 보다.
꽤 몸과 마음 편하게 잘 살고 있다고생각해 왔는데 부정적인 감정들이 제대로 소화되지 못한 채 엉켜 붙어 찐득찐득하게 내 안 어딘가에 살아있었나 보다. 나르시시스트 지인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그랬다.그 사람과는 이미 거리를 뒀고 마주칠 경우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머릿속으로만 시뮬레이션을 돌린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초반의 일부터 한 개씩 떠올려 써 내려간다면 너무 아프고 힘들거라 생각돼 시작하기 두려웠지만 웬걸, 일단복잡한 생각들을 키보드 위에 살포시 얹으니 그때의 미처 해소되지 않았던 응어리들이하나씩 차근차근 사라지고 있었다. 그저 나 속상하다고, 힘들다고 주변에 구시렁거리기만 바빴지 근본적으로 어떻게 내 답답한 마음을 풀어줘야 하는지를 몰랐던 거다. 아니, 그냥 책 읽고 유튜브 보면서 방법을 찾아내면 그게 복잡한 내 마음을 깨끗이 해결해 주는 최선의 길이라고만 생각했던 거다.하지만 글쓰기는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던 내깊은 분노를 해소해 주었고 헝클어진 마음을 매만져 준 고마운 존재였다.신통하게도 그 이후로는 더 이상 그녀가 밉지 않았다. 미워하는 것도 관심이기에, 그 관심조차도 관심 없어졌기에.
그러나 이렇게만 내 감정선이 쭉 유지되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눈물 수도꼭지가 열린 건지 오늘은 연신 울다 깨고 울다 잠든 날이었다. 새벽에 아이의 이마를 만져주면서 그날 밤까지 주고받았던 우리의 편지글에 대한 생각을 하다 폭풍처럼 덮친 슬픔 때문에 시작된 눈물이었다. 손가락 사이로 하염없이 빠져나가는모래알 같은 아이와의지난 시간들이 못내서러웠나 보다. 사랑 주고 많이 안아주었다 생각했지만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 아아와 아기였을 때의 모습이 오버랩 되며 갑자기 세월이 날 무력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이 밤이 날 덮칠 것만 같아 쉬이 다시 잠들지 못해 혼자 흐느껴 울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철저히 외롭지는 않았고엄마 품에 안겨 목놓아 울고 나니 후련한 기분이 드는,또 다른 해방감을 느낀 아침을 맞을 수 있었다. 옆에서 토닥여준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나만 힘든 게 아니었기에. 공감이란 이렇게 큰 힘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 힐링의 아침.
알게 모르게 나를 무겁게 누르고 있던 또 다른 거대한 돌덩어리들이 잘게 부서질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분쇄기에 휘리릭 갈아 신속하게 털어버릴 것들이 아니라면 일단은 찬찬히 살펴본 다음, 버릴만하면 두드려 깨어서 깨끗이 버리고, 그래도 아직은 보호받아야 하는 감정들이라면 도닥여서 지켜주려 한다. 일일이 솎아내야 하는 이 지루한 작업은 한 달가량 지속될 것 같다. 너무 빙 돌아가지 않게 중심을 잘 지키면서 천천히 회복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