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와 나는 같은 양띠. 하지만 우리의 나이차는 48세나 된다. 외할머니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빼빼 마르고 보글보글한 파마머리에 얼굴을 목젖이 보일 만큼 뒤로 젖히며 하하하웃으시던 모습이다. 할머니의 목에는 검은콩같이 까만색의 사마귀가 달려 있었는데 신기해서 어릴 때 할머니가날 안아주시면 그때마다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목에 딱 달라붙어있지 않고 떨어질 듯 말 듯아슬아슬한 상태라 그게 더 재밌어계속 만졌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의 목에서 덜렁대던 까만 사마귀가 보이지 않았다. 놀란 마음에 사마귀가 어디로 갔냐고 할머니께 여쭤보았더니 어느 날 할머니도 모르게 사라졌다고 하시는 거다. 내가 그동안자꾸 만지작 거려떨어져 버린 게 아닌가 싶어 덜컥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다행히도 할머니는사마귀가 떨어져나가 너무 후련하다고 하셔서속으로 깊은 안도를했다.
외할머니는 운동신경이 남다르셔서 중/고등학교 때 학교 대표로 탁구대회를 나가셨다고 한다. 대회란 대회는 다 휩쓸고 다니시며 상도 많이 받고 화려했던 그 시절이 참 행복했다고 하셨다, 어릴 때 할머니댁 지하 주차장에 탁구대가 있길래 어떻게 치는 건지 시범을 보여달라고 할머니께 말씀드리니 '아이, 지금은 내가 너무 늙고 다 까먹어서 잘 안될 거야.'라고 하시며조금은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셨다.하지만 왠지 할머니는 지금도 굉장히 잘 치실 것 같은 막연한 믿음에 나는 굴하지 않고 자꾸 보여달라고 할머니를졸라댔다. 할머니는결국 손녀의 재촉을못 이기시고는 순간 진지한눈빛으로 확바뀌시더니몇 번 라켓으로 공을 탁구대에 통통 튕기시고는 서브자세를 취하시더니 강한 스매싱을 날려 공을중앙 네트 위로 가볍게 넘기셨다. 순간 우리 할머니가 '3초 현정화'로 보였다.음식 맛있게 만드시고 살림 잘하는 주부로서의 할머니 모습만알고 있었는데젊음을 탁구에 온통쏟아붓던 풋풋했던 10대 시절의 우리 할머니도 있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 그때의 소녀가 애틋해지는 마음에 먹먹한 감정이 들었다.
외할머니는 어릴 때부터 워낙 미모가 출중하셔서 별명이 배우'황신혜'였다고 한다. 쪼글쪼글한 할머니와 황신혜의 공통점은 커다란 눈 빼고는 그다지 일치하는 부분이 없는 것 같아 내 눈을 의심했다. 그때 할머니는 본인의 어릴 적 앨범을 장롱 깊숙한 곳에서 꺼내오시더니 내게 흐뭇한 표정으로 보여주셨다. 동그랗고 큰 눈, 오뚝한 코, 작고 갸름한 얼굴, 날씬한 몸매가 거짓말 안 보태고 정말 황신혜 같았다, 아니 솔직히 황신혜보다 훨씬 예뻤다. 할머니는 6남매 중 맏이셨는데 요즘 소위 말하는 K-장녀셨다. 젊디 젊은 증조할머니 앞에 쪼르륵 서있는 꼬꼬마 형제자매들 중 이국적인 외모로 우리 할머니가 단연 눈에 띄었다. 나는 할머니께 '이렇게 예쁜데 왜 배우를 안 하셨냐'라고 여쭤보니 연예계 쪽보다는탁구가너무 좋았고외할아버지와 일찍 결혼하시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모든 꿈을 포기했다고 하셨다. 시대가 이렇게 많이 흘렀어도 여전히 엄마들은 일과 양육이라는 기로에 놓인 건 마찬가지구나, 결국 자식을 위해 꿈을 포기해야 하는 쪽은 여전히 엄마인가라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외할머니는 92세인 지금도 T.P.O(Time, Place, Occasion)에 맞게 입고 외출을 하신다. 전체적으로 가을 느낌이다라고 하면 갈색 계열의 옷들을 꺼내시고 패션의 완성인 신발과 구두도 톤 앤 매치하신다. 결혼식이냐가족식사냐 미용실이냐, 집에 손님이 방문하시는지에 따라 정장 슈트, 트렌치코트, 홈드레스 등이 바로바로 초이스 가능하신 센스쟁이시다. 게다가 훨씬 젊은 나도 메기 귀찮아하는 스카프도 할머니께는 그날의 패션을 완성시켜 주는 필수적인 아이템이다. 게다가 진주 목걸이나 금목걸이등은 그날 조금 더 패션에 포인트를 주고자 하실 때에 착용하시곤 한다. 탱탱한 피부를 위해 마스크팩도 잊지 않으시며 아직도 파우더팩트, 눈썹 그리기, 립스틱 바르기 등의 화장을 곱게 하시는 것도 잊지 않으신다. 미용실에 몇 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가셔서 파마를 하시고 외출하실 때에는 롤을 하나하나 말아 머릿결에 뽀글 텐션감을 더 주신다. 가장 놀라운 점은 식사 후 거울을 보며 다시 꼼꼼히 립스틱을 바르시는 할머니의 정성스러움이다. 이렇게 92살 우리 할머니도 멋과 뽐을 잃지 않고 아름다움을 유지하려고 최선을 다하시는데 어떻게 할머니보다도 젊디 젊은 내가 미를 포기하고 대충 살 수 있겠는가. 집에서는 후줄근할망정 집을 나가면 어느 정도는 꾸며줘야 우리 할머니 열정 반의 반이라도 따라갈지 모르겠다. 내가 예쁘게 꾸미고 할머니를 뵈러 가면 할머니는 내게 꼭 착장에 대한 심사평을 해주신다. 색이 화사해서 너랑 잘 어울린다, 옷이 좀 큰 것 같다, 소재가 부들부들해서 고급스럽다, 허리 부분이 들어가서 날씬해 보인다 등의 평을 가감 없이 해주시는데 그 날카로움이 아주 전문 디자이너급이시다.
지난주에 드라이브 겸 친정에 놀러 갔는데 오랜만에 할머니를 뵈니 아직 정정하시긴 하지만 한해 한해 조금씩 노쇠해지시는 모습이 내 눈에는 잘 보였다. 시간이 주는 의도하지 않은 가혹함이 안타깝지만 떠나가실 미래에 대한 두려운 감정도 이제는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날이 너무 빨리는 오지 않기를.
내가 아주 어릴 때 할머니께서 '우리 벨라 하드 사줄까?' 하시며 브라보콘을 손에 쥐어주시던, 지금 우리 엄마 연세보다도 젊고 예쁘고 참했던 우리 할머니를 기억한다. 할머니와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놀았던 그날을 기억한다.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포장해서 우리에게 하나씩 나눠주시던 할머니를 기억한다. 내 머릿속에는 할머니와의 다채로운 추억이 남아 있으니 할머니가 점점 더 나이가 드시더라도 너무 슬프지 않으려 한다. 내가 울면 할머니가 너무 슬프실 테니까. 살아 계시는 동안 웃음 한 번 더 드리는 게 나에겐 더 급한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