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빌린 <생각 정리 공부법> 사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는 있지만 어떻게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써야 하는지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 물론 학교 다닐 때 배웠겠지만 기억이 날리 없고......
학생들을 위한 책이지만, 어렵게 쓰인 다른 '글쓰기'에 대한 책들보다 내용이 훨씬 단순하고 기본에 가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집어 들었다. 생각만큼 그랬다. 문학 작품을 읽고, 영화를 보고 어떻게 내 생각을 정리하면 좋을지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설명을 해주니 무엇이 기본인지 그대로 드러났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현재 내가 글을 쓰고 있는 형태가 이 책에 설명되어 있다는 것이다. 특별히 내가 배워서 그렇게 쓴 것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아주 엉망으로 쓰고 있는 건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이 조금 느껴졌다.
내 생각을 모르겠어요.
책도 재미있게 읽었고 주인공 및 다른 등장인물들도 마음에 드는데 논제를 봐도 내 생각은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책 속 인물이 싫은 까닭, 이야기가 재미없는 이유도 나의 생각입니다.
때론 어떤 영화나 책을 봐도 도무지 쓸 거리들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땐 내가 억지로 쓸 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에 짜증이 날 때도 있었다. 재밌는 건 알겠는데 그 이상 무엇을 끄집어내야 할까. 어쩌면 그건 한없이 게을러지고 싶은 욕구에서 나타난 현상이 아닐까 싶다. 그 생각, 그 감정에서부터 생각을 시작하면 되는데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귀찮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쨌거나 글은 '생각'이라는 걸 했을 때만이 쓸 수 있는 것이다. 그것부터 귀찮아진다면 결코 글을 '잘'쓸 수는 없는 것 같다.
결국 책상 책꽂이에서 매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던 <야성의 부름>은 책 커버도 넘겨보지 못하고 반납을 했다. 민망한 마음이 들지만 읽고 싶은 책 목록에 다시 끼워 넣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과연 그다음이 오긴 할까 모르겠지만...(보고 싶은 책들은 매일매일 늘어나니까)
<다시, 책은 도끼다>를 통해 많은 책들을 접하고 있다. 그중 법인 스님의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이란 책이 내 구미를 당겼다. 제목부터 지금 꼭 읽어야 해! 하는 강한 인상을 풍겼다.
첫 챕터부터 심하게 내 마음에 지진을 일으켰다. 사람이 왜 '사유'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법인 스님의 말씀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쉽고 빠르게 접할 수 있는 정보들은 잠깐 내 눈을 스쳐갈 뿐이지 머리나 가슴을 스쳐가지는 못한다. 그래서 늘 많은 정보를 접하지만 나에게 남은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은 허무함이 가끔 들곤 했었다. 그 허무함을 달래주는 것은 책뿐이었다. 그런 나의 감정에 대해 법인 스님이 너무나도 잘 설명해주셨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어떤가. 감각이 무뎌져 있고 오염되어 있다. 눈앞에서 보고 들어도 진정으로 보고 듣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오래 보고 자세히 보고 애정으로 보면서 아름다움과 사랑을 가슴 깊이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보아도 보는 것이 아니다. 그저 눈으로 객관적인 대상을 보는 '행위'이지 '감각'은 아니다.
감각을 잃고 싶지 않다. 무엇인가를 보고 행복해하고, 감격하고, 놀라고, 슬퍼하면서 풍요롭게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늘 '사유'하려 노력하는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 정보의 홍수에 휩쓸려 가지 않고, 나의 길을 만들어 나가야겠다는 의지가 불끈불끈 솟는다. 그 길에 서서 주변을 돌아보며 자세히 들여다보며 천천히 걸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