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채식주의자>를 읽고

이 소설이 나에게 가져다준 것.

by Ann







해방감을 느꼈다. 속이 시원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이런 감정을 느끼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진작에 읽을 걸 하는 아쉬움이 스칠 정도로 나는 이 책으로부터 용기를 얻었다. 나에겐 결코 난해한 책이 아니었다. 이런 거구나. 읽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물론, 내가 이 책을 잘 해석해서 난해하지 않았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나만이 느끼는 개인적인 공감대가 그만큼 컸다는 뜻이다.


이 소설의 두 여성. 영혜와 인혜의 선택이 갇혀 있던 나를 세상 밖으로 내보내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영혜는 정신병원에 갇혀 원치 않는 치료를 받으며 괴로워하지만, 인혜는 누구든 겪고 싶지 않은 일로 인해 결국 이혼을 하게 되고 이혼의 원인을 제공한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동생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녀들은 끝내 그들의 숨통을 움켜쥐고 있던 것으로부터 벗어나 드디어 크게 한숨을 토해내게 되는 것 같았다.


남편의 시선으로 소개되는 영혜는 거의 무색무취의 여성이다. 즉 남편이 자신의 아내에 대해 그런 생각하면서 결혼 생활을 진행했다는 얘기다. 또 그녀의 취미를 설명하면서 '기껏 책 읽기 정도였는데'라고 표현하면서 은근한 무시를 드러내고, 결혼 생활에 대해 '올해로 결혼 오년차에 접어들었으나, 애초에 열렬히 사랑하지 않았으니 특별히 권태로울 것도 없었다'라고 얘기하며 나름대로 만족을 표현한다. 대놓고 무시하거나 괴롭히거나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 몇 가지 표현들만으로도 영혜의 성격에 얼마나 상처받고 숨이 막혔을지, 답답했을지, 짐작이 가 내가 다 숨이 가빠졌다.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중략)
내가 그녀와 결혼한 것은,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과 같이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아내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 나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일은 드물었고, 내 귀가시간이 아무리 늦어도 관여하지 않았다. 어쩌다 함께 있는 휴일에 어딘가로 외출하기를 청하지도 않았다. 내가 오후 내내 텔레비전 리모컨을 쥐고 뒹구는 동안 아내는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중략
끼니때에만 문을 열고 나와 말없이 음식을 만들었다.



이 소설에서는 영혜의 생각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왜 영혜가 그 남자를 선택했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궁금하지 않았고, 나는 그 남자를 선택하지 말았어야지! 하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누구든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 최악일 거라고 생각하고 선택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녀는 그런 사람을 선택하는 그런 성향의 사람, 여자였던 것일 뿐이다. 결혼 생활 또한 마찬가지. 이 책이 나에게 이토록 큰 감동이었던 것은 이런 그녀가 아주 극단적인, 그녀 스스로를 망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몸부림치고 자기 자신을 있는 힘껏 내던졌기 때문이다.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은 채.


물론 현실에서 보면 그녀는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본인의 건강한 의지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지점에서 더욱 해방감을 느꼈다. 저 너머로 가 버렸다는 것이. 아예 완전하게 넘어가버렸다는 것이. 아예 미쳐버렸다는 것이. 현실에 발을 붙이고 서있기 위해 끈을 붙잡고 안간힘을 쓰는 대신 그 끈을 놓아버리고 완전히 떠올랐다는 것이 묘하게도 나를 시원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내 눈에 그녀는 굉장히 편안해 보였고, 평온해 보였고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워 보였다.




그녀가 욕실문을 열고 나오고 있었다. 물소리 따위가 전혀 들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그녀가 거기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정말 놀란 것은, 그녀가 벌거벗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기가 전혀 묻지 않은 알몸으로.




지독한 고독 속에 평온하고 자유로운 그녀가 나는 부럽기까지 했다. 모든 것을 넘어선, 넘어가버린 그녀의 상태가. 내가 그동안 얼마나 그 무엇인가에 눌리고 갇히고 있었는지 그 감정을 맞닥뜨리며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무엇인가가 바로 '나'자신이었다는 것도.


스스로의 몸에 대한 구속, 다른 사람들의 시선의 구속 같은 것들이 점점 거추장스럽고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모든 걸 다 비워내고 싶고 가벼워지고 싶은 욕구가 나에게 들이닥칠 때가 있다. 내 몸에 붙어있는 살덩이들, 옷들을 모두 없애버리고 싶은 생각. 그래서 정말로 한때 채식을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저 보통 인간이기에 의지력이 그리 오래 발휘되지 못했다.


그런 욕구를 알기에 영혜의 선택이 나는 직선처럼 바로 꽂히듯 공감됐다. 옷을 자꾸 벗는, 육식을 거부하는 영혜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꼈다. 그녀를 통해 나는 다시 한 번 가벼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좀 더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지고 싶다. 모든 나를 압박하는 것으로부터. 모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훌훌 다 내던지고.


또 다른 사람. 영혜의 언니 인혜. 그녀는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중심에 두는 사람이었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람. 그녀가 그녀의 남편을 사랑하게 된 계기도 그 이유에서였다.



그날 이후 그녀가 그에게 바란 것은 자신의 힘으로 그를 쉬게 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도 끝내 자신을 발견한다. 자신이 방치해 둔 숨이 끊어져가는 그녀 자신을.



더이상은 견딜 수 없다.
더 앞으로 갈 수 없다.
가고 싶지 않다.




죽음까지 결심했던, 끝까지 가보고자 했던 그녀는 그것이 주는 고통과 두려움과 뒤섞이는 평화를 느끼고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보자 한다. 그리고 자신의 동생인 영혜를 살리러 정신병원으로 향한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남을 구원하려했던 그녀는 돌고 돌아 자기 자신에게 돌아왔다. 이혼을 포함한 그녀의 결심들이 영혜의 것과는 다르게 좀 더 현실적으로 나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살아보자! 하는 것 같아서.


영혜와 인혜. 이 두 자매를 통해 그녀들은 괴로웠겠지만 나는 행복했다. 그리고 이 소설이 내가 앞으로 어떤 여성으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 그 방향을 좀 더 세밀하게 조정해준 것 같다. 문득 궁금해진다. 그 이후 영혜와 인혜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의 상상 속의 그녀들은 그 전보다는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을 것 같다. 그 전보다는 확실히.







/ 가장 좋았던 문장


이따금 그녀의 눈이 단지 수동적이거나 백치스러운 담담함이 아니라 어떤 격렬함을, 동시에 그것을 자제하는 힘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따뜻한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추운 병아리처럼 몸을 움크린 채 자신의 발치를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그 자세는 연민을 불러일으키기 보다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할 만큼 단단한 고독을 음영처럼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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