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정민의 <쓸 만한 인간>을 읽고
그의 연기를 본 적이 없다. 제대로. 영화 <동주>에서 아주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는 소문이 자자해서 관심이 가게 되었고, 알고 보니 내가 즐겨 보았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성보라의 나쁜 남자 친구였다. 분명히 난 그 드라마를 보았고, 그 장면도 본 것 같은데 내 기억엔 그가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 배우를, 박정민이라는 배우를 글로 제일 먼저 만나게 된 거다. 글 쓰는 배우? 잘은 모르지만 매력적인데? 하며 이 책에 끌렸다.사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읽다 보니 사고 싶어졌다. 일단 인간적으로 끌렸다. 이 글 위에서 존재하는 인간에게. 굉장히 유머러스하고 유쾌한 사람인 것 같았다.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큭큭거렸는지 모른다.
그래도 아직 이 집이 마음에 든다. 강아지 덕이도 좋아하는 눈치다. 전보다 배를 까뒤집는 횟수가 늘었고 그에 비례해서 나는 좀 더 귀찮아졌다. 배를 긁어주지 않는다고 주인 뺨을 때리는 개를 키우고 있다. 팔자다.
대부분의 유머러스한 사람을 좋아한다. 거기에 따스함까지 묻어 나온다면 더더욱. 이 글 위 박정민이라는 인간은 그런 사람 같았다. 책 전체적인 온도가 따뜻했다. 이런 사람과 만나서 얘기한다면 나는 웃다가 시간 다 보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웠던 몸에 열이 후끈 날 만큼.
유머가 많지만 결코 가벼운 느낌은 아니었다. 긍정적이지만 그 긍정에는 자신만의 근거가 있었다. 자신이 믿는 어떤 삶의 철학이 있는 것 같았다. 그 철학 위에서 꽤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바로 이거다.
다 잘 될 거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격려하기도, 자신의 글을 읽는 사람을 격려하기도 했다. 그 말의 힘을 믿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무작정 '다 잘 될 거다'라고 하는 것은 도둑놈 같은 심보지만 무언가 하고 있는 와중에 아무런 성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 잘 될 거다'라고 말하는 건 꽤 큰 위로가, 동력이 된다. 멈추지 않고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데 있어서 말이다. 이런 그의 글들을 읽으면서 아, 이 배우는 틀림없이 연기를 잘 할 거야, 더 좋은 배우가 될 거야 하는 예감이 들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의 책에 대한 생각이었다. 책을 좋아하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이 있는 나로선 그의 그 생각에 깊게 공감했고 당장 만나 책에 대해 얘기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요지는 책을 읽자는 거다. LCD에서 반짝거리는 글자가 책 속에 진득하니 박힌 활자는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조금은 보수적인 성향 때문에 이런 진부한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책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줄 수도 있다는 거다.
...(중략)
서점으로 가서 그 어떤 책도 좋으니 잘 읽힐 만한 책을 한 권 사서 집으로 오길 권한다. 그리고 머리맡에 놔두시라. 그럼 언젠가는 읽게 될 테고 당신의 내일이 조금 더 영리할 하루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지도 모른다.
책, 책, 책, 책을 읽읍시다.
조금 더 영리할 하루가 되는 듯한 느낌. 책을 읽어본 사람들만이 아는 느낌이다. 실제로 영리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왠지 녹슨 머리에 깨끗한 기름칠을 한 것 같은 느낌. 멈춰있던 생각의 태엽이 돌아가는 느낌. 그 느낌을 아는 사람이라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나에게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배우. 그 자체로도 참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래서 나는 이 박정민이라는 배우가 잘 됐으면 좋겠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어떤 사람을 만드는지 보여줬으면 좋겠다. 나에게 그런 자극이 되는 사람, 배우가 되어줬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아, 이런 오빠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바랐다. 그러면서 그의 나이를 찾아봤는데 글쎄, 나보다 어리다. 그것도 네 살씩이나. 슬픈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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