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28>

인류에 대한 경고

by 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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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을 꾼 것 같다. 무섭고 잔인한 악몽을 며칠을 꾼 것 같다. 다시 꾸고 싶지 않은 악몽. 그만큼 무시무시했다.


악몽에서 깨어난 지금 그게 꿈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마음을 쓸어내린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들에게 벌어진 일이 악몽 같다. 재형, 기준, 동해, 수진, 윤주, 링고 모두에게. 다시는 꾸고 싶지 않은 악몽. 계속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었다. 휴. 정말 지독한 악몽이었어.


기존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죽음의 도미노.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죽어서는 안될 것 같은 사람들이 이어달리기를 하듯 죽는다.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입이 나도 모르게 '헉'하고 벌어지는 순간들이었다. 또 죽음에 버금가는 불행이 주인공들에게 배달된다. 아내와 딸이 죽고, 아버지가 죽고, 성폭행을 당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자신의 목숨까지 잃게 되는 불행이. 이 작가가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것일까 원망스러울 정도로 가차 없이 계속해서 그들에게 불행을 떠안긴다. 한 번에 많은 양을 읽을 수가 없었다. 너무 지쳐서.


인간들에게만 그 불행이 던져진 것이 아니라 개들에게도 던져졌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개들이 고통받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구제역, AI를 떠올릴 것 같다. 정유정 작가님과 마찬가지로 나도 구제역 당시 돼지들이 산 채로 묻히는 장면을 보았고, 그때 기억이 떠올랐다. 차마 눈뜨고 계속 보지 못 했다. 바로 꺼버렸는데도 잔상이, 그 울음소리가 쉽게 나를 떠나지 않았다. 정말 괴로웠던 기억이다. 그때 나는 내가 인간인 것이 그들에게 참 미안했었다. 나 살자고 저렇게......


소설 속 개들이 구덩이 속에 생매장 당하는 장면은 읽기가 힘들 정도였다. 나는 계속 속으로 나를 달래야 했다. "이건 소설이야. 소설일 뿐이야." 하지만 돼지들의 울음소리가, 그 기억이 그것을 방해했다. 너무 있을 법한 일이어서. 소설일 뿐이 아니라 '소설에서도'여서.


말을 못 해서, 너무 약해서 그렇게 인간에게 죽임을 당해야만 하는 존재들. 이 소설에 개가 등장함으로써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든다.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을 위해 희생당하는 많은 동, 식물들을.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만이라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졌으면 좋겠다. 그것들을 대하는 태도가 곧 인간을 대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서재형'과 '링고'를 등장시킨 것 아닐까.


재형은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동물에게, 즉 개에게 미안해하는 인물이다. 알래스카에서 개 썰매 경주를 했던 재형은 자신 때문에 희생당한 썰매 견들에게 늘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다. 그 속죄의 의미로 <드림랜드>라는 유기견 보호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만이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동물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결국 그가 자신의 목숨을 다른 사람의 목숨을 위해 내어놓는다. 그는 동물에게 미안해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희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 인류를 지켜내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소설 속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 인간은 같은 인간을, 자신보다 약한 동물을 가차 없이 죽이고 사지로 내몬다. 하지만 그 와중에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마음을 내는 사람들이 소수지만 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 그들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는 사람들. 그들이 이 인류를 유지하고 지켜나가는 것이 아닐까.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모두가 살고 싶은 본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사람들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이 목젖 밑에서 신물처럼 솟구쳤다. 그때 살려고 애쓰는 것 말고 무엇이 가능했겠느냐고. 삶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본성이었다. 생명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본성.



10명의 군인들이 착검한 총을 들고 구덩이 삼면을 에워쌌다. 나머지 둘은 스키 폴만큼이나 긴 죽창을 쥐고 철장 문을 열었다. 덤프의 적재함은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개들이 구덩이로 떨어져 내렸다. 처음엔 몇 마리씩, 곧 무더기로. 떨어진 개들은 곧장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누워 자빠진 동료의 몸을 딛고 서로의 머리를 밟으며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구덩이를 에워싼 군인들은 착검한 총 끝으로 개들을 찍어서 구덩이로 다시 떨어뜨렸다. 큰 개, 작은 개, 검은 개, 흰 개들이 눈을 찍히고, 뱃가죽이 뚫리고, 등을 꿰인 채 핏물을 내뿜으며 구덩이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백구 한 마리가 창살을 발로 움켜쥐고 버둥거렸으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피투성이가 돼서 구덩이로 떨어지는 데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다른 한편에선 굴삭기가 구덩이를 덮기 시작했다. 개들은 떨어져 내리는 흙과 쓰레기 더미 속에서 울부짖었다. 그 울음이 윤주에겐 사람의 말로 들렸다.

살려주세요.




죽음 앞에서, 고통 앞에서 두려운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나도 동물을 위해 내가 희생하는 일은 엄두도 못 낸다. 생각만 해도 참 두렵다. 하지만 난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려 한다. 최대한 함께 살기 위해 배려하고, 내가 편하자고 그들의 자리를 빼앗은 것에 대해 미안해하고, 지금 내 자리에서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것들은 해보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그럼 왠지 이 세상이 좀 덜 지옥 같아질 것 같다.


인류에게 그런 마음이 점점 사라져 없어지는 순간 바로 <28>에서 일어난 지옥 같은 상황이 바로 내 앞에 벌어질 것이다. 이 소설은 바로 경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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