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컨택트>를 보고
ㅣ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꾸 싸움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화부터 버럭. 그 화를 받는 사람은 영문도 모른 채 순식간에 죄인이, 가해자가 된다.
"잠깐만. 그거 사실이 아닌데."
이렇게 말을 하는 순간 뜨거운 화의 공기가 갈 곳을 잃고 침묵이 공간을 넓혀간다. 상대방이 아차 하는 순간이다. 나는 오해라고 사실은 이러이러한 상황이었다고 얘기한다. 알고 나면 화낼 일이 전혀 아니었던 것을 안 전화 안에 있는 사람은 머쓱해한다. 머쓱함은 버럭 화를 내버린 것에 대한 벌이다.
영화 <컨택트>에서 갑자기 지구에 온 외계 생명체를 대하는 지구의 전문가라는 사람들 대부분은 나에게 버럭 화부터 내던 그 사람처럼 외계 생명체에 화부터 낸다. 언어학자인 루이스(에이미 아담스)만 빼고 말이다. 그들은 진실이 무엇인지,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소통하려는 노력은 잠시, 외계 생명체의 의도 모를 '무기'라는 단어 한 마디를 듣고 버럭 화를 내고 공격한다. 그리고 영화는 그들의 머쓱함으로 끝이 난다.
많은 사람들은 싸우지 않아도 될 싸움을 하고 사는 것 같다. 오해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적대적이다. 사실인지 확인하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소중한 시간을 싸우는 데 써 버린다. 싸우고 화해하는 시간까지 괴롭고, 괴로운 만큼 길다.
하지만 루이스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었다. 나 또한 루이스 같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며 사는 사람이다. 루이스는 그들이 두렵지만, 의심스럽지만, 조급한 마음이 들지만, 답답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조심스럽게 다가서고 자신을 보여주고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긴 시간 동안 연구하고 그들과 더 깊은, 정확한 소통을 하기 위해 언어를 가르치고 자신 또한 배운다. 아주 긴 시간 동안.
다른 사람들은 어서 빨리 그들의 의도를 알아내라고 다그치고 조급해한다. 사실 알아내려는 의도는 없어 보였다. 그들을 공격할 구실을 찾고 있는 듯 보였다. 그렇게 본 이유는 그들은 그 외계 생명체의 언어를 배우려는 노력 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끼리도 서로의 좀 다른 종류의 언어를 알아야 한다. 욕이라고 해서 전부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듯, 좋아한다는 말이 진심으로 상대를 좋아한다는 뜻이 아니듯, 예스가 전부 예스라는 뜻이 아니듯. 그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서로 소통할 수 없다. 오해만 되풀이될 뿐.
인내심을 가지고 진심으로 외계 생명체와 소통한 그녀는 그들로부터 선물을 받는다. 그리고 외계 생명체와 인간 사이의 평화를 지켜낸다. 사실은 애초부터 평화는 깨어질 일이 없었다. 루이스처럼 소통할 수 있었다면. 들어주고 얘기하고 또 들어주고 이해할 수 있었다면.
싸움은 필요하다. 옳은 것을 위해, 불의를 위해. 하지만 둘 모두에게 상처뿐인, 알고 보면 하지 않아도 될 싸움은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상대의 말을,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듣는 순간까지 조금만 인내한다면. 화부터 내지 않는다면. 대화를 한다면.
그것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소중한 시간들을 지켜냈으면 좋겠다. '언제까지나 영원히 내 곁에'라는 말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루이스가 두 사람을 잃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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