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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 Mar 25. 2017

영화 <미스 슬로운>을 보고

어떤 이의 손에 총이 쥐어져 있는가

! 스포일러가 걱정되시는 분은 영화를 보고 읽어주세요 :)



어떤 선택을 하기 전에 내가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옳은 것'인가 '옳지 않은 것인가'이다. 그동안 살면서 내 나름대로 열심히 만들어온 저울 위에 선택지를 올려놓은 뒤 눈금이 가운데 오는지를 보는 것이다. 물론 100% 옳은 선택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을 질끈 감은 적도 있다. 하지만 늘 저울 위에 올려놓으려 한다. 



그런데 이 영화 <미스 슬로운>을 보면서 다른 질문을 할 때라는 것을 깨달았다. 옳은 것을 선택하느냐, 그른 것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맞는가? 하는 질문 말이다. 








승률 100%의 로비스트인 미스 슬로운의 선택들, 그 선택이 불러온 결과들을 지켜보면서 그녀 또한 나와 같은 질문을 하게 됐고 결국 무언가를 깨닫고 성장했다고 느꼈다. 자신만만 미스 슬로운의 성장 드라마라고나 할까. 오프닝 화면을 가득 채웠던 자신만만하고 화려한 그녀의 모습은 그걸 깨닫기 전이고 클로징 화면 왼쪽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가만히 서 있는 그녀는 그걸 깨닫고 난 후의 모습 같았다. 오프닝과 클로징의 톤 차이가 확연했다. 나에게는. 




출처 : 네이버 영화




올해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일들, 그 안에서의 나와 갈라진 사람들의 모습들이 떠오른다. 각자가 믿는 것을 위해 행동했던 사람들. 그 행동들은 둘 다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그 굳은 믿음이 누구의 손에서 어떻게 실행되느냐는 엄청나게 중요한 얘기다. 종종 태극기를 든 시민들 중에서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이 뉴스에 등장한다. 태극기를 들고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태극기를 들고 폭력을 휘두르는 행위는 잘못된 신념의 실행이다. 타인의 목숨까지도 위협할 수 있는 행동이다. 또는 '광장에서 촛불을 든 사람들은 전부 빨갱이다'라고 굳게 믿고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도 그들에게 그런 신념이 있을 수는 있으나 그들이 그것을 옳다고 믿고 있는 것은 꽤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신념이 강한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아니 무척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미스 슬로운에서 이를 드러내 주는 설정이 바로 '총기 규제'다. 미스 슬로운이 맡은 사건이 바로 총기 규제 법안이다. 총기 소유를 규제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는 나에게, 강한 신념을 누가 가지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문제와 같게 느껴졌다. 미스 슬로운 팀원 중 한 명이 총기를 소유한 사람에게 위협을 당하지만 결국 다른 총기를 가진 사람에 의해 그 위협에서 벗어난다. 즉 '총'이라는 무기는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에게 쥐어지면 범행의 도구가 되지만 좋은 의도를 가진 사람에게 쥐어지면 방어 수단이 되는 것이다. '강한 신념'처럼 말이다. 



그 설정 위에서 미스 슬로운은 그것을 직접 눈으로 보여준다. 자신의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미스 슬로운은 자신은 자신의 신념대로 옳은 것을 위해 프로로서 최선을 다하는 거라고 믿는다. 초반에 그 모습은 굉장히 프로페셔널하고 멋있게 그려진다. 모두들 그녀를 인정한다. 



하지만 중반부에 들어서면 그녀의 승리에 대한 집착을 그려내는 것으로 변한다. 그 집착으로 그녀의 팀원 중 한 명이 죽을 뻔 한 사건이 벌어진다. 그때부터 그녀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자신이 믿었던 신념이 과연 옳았던 것인가? 에 대한 질문을 떠올리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프로라면 자신을 내던져야 한다는 그녀의 말이 틀린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문제이지 타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인데 말이다. 한 사람의 목숨이, 인생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릴 수 있었던 어마어마한 일을 겪고 나서야 그녀는 비로소 폭주기관차 같았던 자신을 잠시 멈추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엄청난 반전과 결말이 그런 그녀의 변화를 보여준다. 물론 갑자기 그녀의 모든 행동이 눈에 띄게 변하지는 않는다. 그게 이 영화의 장점이기도 하다. 만약 그 시점 이후로 그녀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모두를 배려하고 따듯하고 다정한 사람으로 변해버린다면 정말 촌스러운 영화가 됐을 것이다. 그녀의 성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반전을 통해 그녀가 결국 변화하고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미스 슬로운을 비난하지도 칭찬하지도 않는다. 그녀의 그릇된 신념 때문에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일도 보여주고, 또 그런 신념이 결국 정의를 실현하게 되는 모습도 보여준다. 이 역시 총기 규제처럼, 한 사람을 통해 두 가지 결과를 보여주면서 같은 주제를 얘기하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그 신념을 옳게 실행에 옮겼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결과를 통쾌한 반전으로 보여주면서 말이다. 



새빨간 입술의 화려한 미스 슬로운의 모습으로 시작해 화장기 없는, 검은색 점퍼 차림의 모습으로, 어찌 보면 그 첫 화면의 그녀보다 초라해 보일 수 있는 모습으로 영화가 끝이 났는데도 나는 왜 그토록 그녀를 멋있게 느낀 것일까. 바로 그녀 반성과 회의와 고민을 통한 변화와 성장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끝내 그녀가 보여준 것은 성장을 바탕으로 한 누구도 함부로 흉내 낼 수조차 없는 올바른 신념의 실천을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그 마지막 모습에서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을, 카리스마를 느낀 것이다. 



무조건 옳은, 반드시 옳은 신념이란 없다. 틈 하나 없을 것 같은 미스 슬로운도 실수를 하지 않나. 나 스스로는 옳다고 믿는 것들이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언제든 회의하고 점검하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 신념은 어떤 경우엔 아주 위험하게 실천될 수 있다. 총이 어떤 이의 손에 쥐어졌냐에 따라 어떤 이를 살리고 죽이듯이 말이다. 



영화 <미스 슬로운>을 통해 그런 점검의, 회의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은 그 어떤 생각을 할 새도 없이, 정신없이 끌려갈 만큼 즐거웠고,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미스 슬로운, 그리고 제시카 차스테인! 이 언니들 정말 멋있다!!







ㅣ영화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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