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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 Mar 29. 2017

언젠가 나에게도


친한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부고 문자에 한참 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얼음장 같은 손으로 익숙지 않은 길, 익숙지 않은 차를 운전해 친구에게 달려갔다. 달려가는 내내 겁이 났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 거대한 슬픔을 내가 어떻게 위로해줘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어서. 



하지만 나의 그런 걱정은 친구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되어 끝도 없이 흘렀다. 검은색 상복을 입고 있는 친구의 모습은 낯설었고, 가여웠다. 순식간에 수척해진 얼굴이, 핏기 없는 얼굴이 힘을 내 나를 반기고 있었다. 보자마자 슬픔의 감정보다 먼저 눈물이 나왔다. 



친구의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친구의 동생과 짧은 얘기를 나누고, 다른 친구들이 있는 테이블에 가 앉았다. 모두 오랜만이었다. 이제 결혼식장이 아닌 장례식장에서 다 모이게 되었다. 어떤 친구는 나처럼 아직 눈물이 채 마르지 않았고, 어떤 친구는 애써 우리를 웃게 만들어주었다. 그 모두가 애도하는 방법이었다. 



장례식의 풍경은 늘 낯설다. 친구 아버지의 친구분들은 시끌벅적하게 고스톱을 치고 계셨고, 상주는 끊임없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쉬다 울다 쉬다 울다 하시고, 내 친구는 얘기하다가도 손님이 올 때마다 울었고, 손님들은 열심히 무언가를 먹고 마시고, 친구들은 일상적인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울다가 또 웃다가 했다.



장례식장이야 말로 가장 어른들의 세계를 잘 보여주는 곳인 것 같다. 어릴 때 나는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의 모습이 늘 이해가 안 갔었으니까. 어떻게 사랑하는 이가 죽었는데 웃을 수가 있고, 고스톱을 칠 수가 있고, 먹을 수가 있고, 시끄럽게 떠들 수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그 시절 그 어른들의 나이가 되니 그게 애도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함께 해주는 것, 함께 고인에 대한 얘기를 하고 울고 웃고, 고인이 가는 길 외롭지 않게 시끌벅적하게 배웅해주는 것. 그것이 어른들이 사랑하는 이를 보내주는 방법이었다. 



친구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담담해 보이는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얘기하면서 또 눈물을 흘렸다. 친구의 손을 꼭 잡았다. 친구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이 보였다. 언젠가 나도 겪게 될 일이었다. 엄마,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도 눈물이 났다. 



친구가 아기 때문에 집으로 간다고 해 다 같이 일어났다. 다시 손 한 번 꽉 잡고 나왔다. 그녀 곁에 남편이 있고, 집에 돌아가면 아기가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겁이 덜컥 났다. 나는 그 친구보다 훨씬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한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 나에겐 유일한 가족인 우리 엄마가, 우리 아빠가 돌아가신다면...... 나에겐 그 한 조각이 너무 크기 때문에. 문득 이래서 결혼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슬픔은 절대적이기에 자신의 슬픔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덜 힘들다는 건 단지 타인의 생각일 뿐. 스스로는 가장 아프고 가장 슬픈 순간일 것이다. 



새벽에 집으로 들어오니 동생 방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안방 밖으로 아빠의 코 고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잠깐 동안 그 소리를 듣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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