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히든 피겨스>를 보고

아직 결말이 지어지지 않았다.

by Ann


어제 새벽 트위터 타임라인을 구경하다가 끔찍해 보이는 사진을 발견했다. 어떤 남성이 얼굴에 피를 흘린 채 질질 끌려나가고 있는 사진이었다. 클릭하고 싶진 않아서 그냥 지나쳤는데 그 사진은 계속해서 타임라인에 업데이트가 되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져서 기사 형태의 주소를 클릭했다. 읽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나와 멀지 않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히든 피겨스>라는 영화를 통해 내가 느낀 연민, 분노는 어디까지나 타인을 향한 따뜻한 눈길, 따뜻한 마음이었다. 캐서린 존슨이(타라지 헨슨) 화장실이 급해도 일하는 건물 안에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이 없는 탓에 멀고 먼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로 뛰어다니고 다른 직원들과 같은 커피 머신을 사용하지 못하고, 자신이 작성한 보고서에 이름을 올리지 못할 때, 메리 잭슨이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이수해야 하는 교육 자체를 받지 못할 때 나는 함께 울고 분노를 느끼며 그들을 응원했다. 그때 나는 모르고 있었다. 나도 다른 이들에게 그런 시선을 받을 수 있는 처지에 놓여있었다는 것을. 이번 유나이티드 항공 사건을 보기 전까지 말이다.



현대의 인종차별은 백인과 흑인 사이의 일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동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은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고 외국에서 한 번도 생활해 본 적이 없는 나에겐 크게 와 닿는 부분이 아니었다. 한국 배우들, 가수들이 한류 열풍이라는 현상을 통해 동양인에 대한 선입견, 차별을 많이 무너뜨렸다고 안일하게 생각했었다. 삼성, 엘지, 소니 등등 아시아의 유명한 기업들도 한몫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여전히 백인 우월주의는 존재하고 있었고 그들이 있는 곳에서 유색인들은 차별받고 있었다. 아주 처참하게 말이다.



유나이티드 항공사 사건의 문제를 100% 인종차별로만 볼 수는 없다. 오버부킹에 대한 부적절한 처리 문제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기존 행보를 보면 분명히 인종차별이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흑인 남성에게 휠체어를 제공하지 않고, 이슬람 여성에게 따지 않은 캔음료를 제공하지 않는 등). 무작위로 사람을 골라낸 것이 하필이면 동양인이었고, 그가 거부했을 때 거칠게 대했다는 것을 백인 남성으로 바꿔 생각해보면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과연 그들이 백인 남성에게도 그렇게 대했을까?




movie_image.jpg 출처 : 네이버 영화



<히든 피겨스>라는 영화는 꽤 유쾌했다. 전체적인 톤이 그랬다. 음악, 편집, 이야기, 미술 등등 톤이 전혀 무겁지 않다. 아니 오히려 밝고 경쾌하게 느껴진다. 캐서린 존슨, 메리 잭슨, 도로시 본의 백인에 대한 통쾌한 복수극 같다. 이것이 실화라는 것이 그것을 더욱 극대화한다. 하지만 그 안에 묵직한 것들이 숨어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여 최고의 결과를 끌어내지 못했다면 그들의 그 모든 성과는, 그들이 받은 대우는 존재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그냥 존재 자체만으로는 다른 이들과 같은 것을 누릴 수 없었다. 무조건 열심히 치열하게 최고가 되어야만 그들은 겨우 다른 사람들과 같아졌다. 얼핏 보면 통쾌한 성공담 같지만 그 저변에 깔린 메시지는 어쩌면 그것을 꼬집는 무거운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여전히 정도는 조금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도.



유나이티드 항공 사건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직 나, 그러니까 아시아인도 세계로 나가보면 아직 그런 대우를 받을 수가 있구나, 그런 시선들이 여전히 존재하는구나. 반대로 나는 부끄러웠다. 어찌 보면 내가 그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나는 아니니까'하는 마음을 가지지는 않았었는지. 그러면서 그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유나이티드 항공 사건을 보면서 비로소 나는 피부로 느꼈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그들에게 진짜 공감하고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내가 영화를 보면서 느낀 감정이 가짜 같아서 부끄러웠다.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소외 혹은 차별받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다시 한번 그들이 얼마나 절실할지,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고 있을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항상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 언제나 나는 예외라고 생각하고 산다. 하지만 나 또한 아시아인으로서 여성으로서 그렇게 차별받고 있고 차별받을 수 있다. 그 누구든 마찬가지이다. 언제 어떤 입장에 놓일지 모르면서 언제나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나도 어찌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이 어느 날 갑자기 닥치고 그 어찌할 수 없는 일 때문에 어찌할 수 없이 소외되고 차별받을 수 있다는 것을.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끝내 자신들의 꿈을 이룬 그들의 실제 모습을 보고 극장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 결말이 아니었다. 아직 결말은 지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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