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조금 더 느긋해졌는가
'아, 읽기 싫어'라는 말이 절로 나왔던 시간들이었다. 보고 싶어서 사둔 책들은 늘어만 가는데 읽지 못하는 괴로움이 더더욱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었다. 나는 길고 긴 <사피엔스>를 다 읽어야만 했다.
사둔지는 꽤 오래됐다. 작년 아주 더운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주 두꺼운 책이니까 이북으로 사야지 하고 리디북스 페이퍼에 담아둔 뒤 읽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잠시 잠재운 아이. 그런데 지난 독서 모임 선정 독서가 <사피엔스>가 되고 다시 깨웠다.
처음 사서 읽었을 때 생각보다 쉽고 재밌어서 놀랐었다. 역시나 다시 읽기 시작하자 술술 읽혔다. 다만 읽어도 읽어도 끝이 나질 않는 것이 힘들었다. 읽어도 읽어도, 독서 모임 당일 날이 가까워져 와도 책은 마지막 페이지를 보여줄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이북으로 읽으니 부피감이 없어서 더욱 지루하게 느껴졌다. 나는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내용의 어려움이 아니라 지루함 때문에 뒤로 나자빠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결국엔 내가 다 읽어냈다. 독서 모임에서 그 책을 끝까지 읽어온 사람은 나를 포함해 2명. 즉 나 외에 한 명만이 책을 다 읽어왔다. 아, 뿌듯했다. 7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이 책을 다 읽다니! <총. 균. 쇠>, <스티브 잡스>에 이어 나에게 어마어마한 성취감을 가져다준 책이었다.
읽는 과정은 무척 지루했지만 내용이 지루한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 조금 더 시간이 여유 있게 주어졌다면 다른 책들도 읽어가며 덜 지루하게 읽었을 텐데 시간적 여유가 없어 그 책만 주야장천 읽는 바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줄어들지 않는 바람에 지루하게 느껴졌을 뿐이지, 내용은 아주 흥미진진했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이 책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요즘 시기가 대선 기간이라 그런지 지도자가 될 사람이 꼭 읽었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었다. 우리의 미래가 단지 나의 의지, 나의 선호에만 달려있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사피엔스>의 마지막 문장
우리는 친구라고는 물리법칙밖에 없는 상태로 스스로를 신으로 만들면서 아무에게도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의 친구인 동물들과 주위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든다. 오로지 자신의 안락함과 즐거움 이외에는 추구하느느 것이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이 책은 과거, 현재, 미래를 지름길을 통해 횡단한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그 안에 굉장히 많은 지식이 담겨 있다. 그 지식의 양에 짓눌려 허우적거릴 때도 있었지만 점점 읽어갈수록 그 지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지식들은 재미있게 읽고 넘어가면 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에 대한 독자의 대답이다.
좀 더 쉬운 삶을 추구한 결과 더 어렵게 되어버린 셈이었고, 이것이 마지막도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중략*** 과거엔 편지를 쓰고 주소를 적고 봉투에 우표를 붙이고 우편함에 가져가는 데 몇 날 몇 주가 걸렸다. 답장을 받는 데는 며칠, 몇 주, 심지어 몇 개월이 걸렸다. 요즘 나는 이메일을 휘갈겨 쓰고 지구 반대편으로 전송한 다음 몇 분 후에 답장을 받을 수 있다. 과거의 모든 수고와 시간을 절약했다. 하지만 내가 좀 더 느긋한 삶을 살고 있는가?
사피엔스의 작가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중간중간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인지 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을 거쳐 여기까지 온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 많은 일들을 해냈는지 묻고 있다. 이 질문이 이 책 전체가 하고 있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의 말미에서 얘기하는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수많은 연구들, 발명들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모른다는 것이 덜컥 겁이 났다. 앞의 거대한 혁명들이 현재 우리가 원하던 것을 가져다주었는지 생각해보면 앞으로 우리가 겪게 될 변화 또한 과연 우리가 원하게 될 것들일까? 에 대한 물음이 생기고 그 물음은 두려움을 안겨다 준다. 물론 섣부른 두려움일 수는 있으나 이 책을 읽고 나면 우선 드는 감정이 두려움이다. 이 책의 후반부인 제4부 과학 혁명 부분을 읽고 있으면 현재 인간의 능력은(과학적) 신에 가깝다고 볼 수 있고 그 점이 섬뜩함을 안겨준다.
우리는 머지않아 스스로의 욕망 자체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 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일 것이다. 이 질문이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두려움 뒤에 약간의 위로가 찾아온다. '지금쯤 멈춰 서서 생각해보자'라고 얘기해주는 것 같아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대부분의 역사서는 위대한 사상가의 생각, 전사의 용맹, 성자의 자선, 예술가의 창의성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책들은 사회적 구조가 어떻게 짜이고 풀어지느냐에 대해서, 제국의 흥망에 대해서, 기술의 발견과 확산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개인들의 행복과 고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 이해에 남아 있는 가장 큰 공백이다. 우리는 이 공백을 채워나가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거시적인 인류의 역사를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보면서 느낀 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건 결국 인지 혁명도, 농업혁명도, 과학혁명도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그 어떤 것들을 만들어내도 늘 호모 사피엔스는 만족하지 못했다. 필요에 의해서 무언가를 만드는 게 만들어진 것에 노예가 되어버리는 것 같다. 거기에서 오는 불만족은 언제나 재생산되고 말이다.
과거에 비해 사람들의 수명은 어마어마하게 늘어났다. 하지만 그만큼의 행복을 더 느끼며 사느냐?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늘어난 수명만큼 비례하는 걱정거리만이 눈에 띌 뿐이다. 행복의 조건이 수명의 연장은 아닌 것 같다. 내 주위만 돌아봐도 당장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데도 그렇게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없어 보이니 말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를 행복하게, 평화롭게 만드는 건 그렇게 거창한 것들이 아니라는 의미가 된다. 그게 이 책이 주는 위로인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나의 시각이 아주 조금 트인 기분이 든다. 마치 길고 긴 여행을 다녀온 후의 기분이랄까. 내 코앞, 우리 집, 우리나라에만 갇혀 있었던 시각이 확 트인 느낌이다. 이것이 이런 종류의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이제 <사피엔스>를 읽은 사람이 되었다. 앞으로 내가 읽는 책들은 <사피엔스>를 읽은 사람으로서 읽게 되는 것이다. 뭔가 조금 달라질 것 같다는 설레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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