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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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부럽다 생각하는 연인 혹은 부부가 딱히 없었다. 나이는 점점 늘어가지만 결혼 혹은 연애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줄어가는 이 시점에 이렇게 멋진 커플을 만나게 되다니. 이런 관계라면, 나 당장이라도 연애를 시작하고 싶다. 아니, 결혼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영혼을, 진짜 나를 자유롭게 해 주는, 아니 자유로운 그 상태로 유지시켜주는, 존중해주는 그런 관계라면. 박열과 후미코 같은 관계라면.
아직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잔상이 되어 나를 미소 짓게 한다. 비록 그들의 삶이 평범하지 못했지만, 원하는 만큼 마음껏 사랑할 수는 없었지만 그 장면에서 느껴지는 둘의 애정, 애틋함, 신뢰, 존중, 장난기가 아직도 선명하게 떠올라 나의 마음을 이상하게 만든다. 박열이 후미코의 가슴에 슬쩍 손을 갖다 대고 그런 그를 올려다보던 후미코의 미소. 박열의 장난기 어린 미소. 그리고 그들을 비추는 따뜻한 햇살. 너무 좋았다. 실제 박열과 후미코가 남긴 사진을 재현한 그 장면. 그 장면을 마지막에 보여준 연출도 정말 좋았다.
그 장면이 이 영화의 전체를 아우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의 관계, 두 사람의 동료애, 두 사람의 사랑, 두 사람의 신념, 두 사람의 용기, 두 사람의 자유분방함 등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영양분이었던 것 같다. 다른 독립투사들을 다룬 영화들과는 다르게 말이다.
첫째, 동지로서 동거한다.
둘째, 운동 활동에서는 가네코가 여성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셋째, 한쪽의 사상이 타락해서 권력자와 손잡는 일이 생길 경우 즉시 공동생활을 그만둔다.
가네코 후미코가 박열에게 먼저 동거를 제안한다. 두 사람은 그렇게 동거를 시작하고 후미코는 한글로 된 '동거 서약'을 박열에게 내민다. 저 서약이 1920년대 한국에서 게다가 여성에 의해 쓰였다는 것이 놀랍다. 또 그것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망설임 없이 받아들인 영화 속 박열의 모습도 무척이나 낯설다.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와 비슷한 많은 일들은 전혀 문제없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장애물들이 다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일본인과 한국인이라는 것, 여성과 남성이라는 것, 한국이 일본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 그들이 감옥에 있다는 것 등 그들에겐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감정이고 두 사람의 생각이고 두 사람이 하고자 하는 것들일 뿐이다. 그 어디에도 갇혀 있지 않았다.
처음 두 사람이 만났을 때도 서로의 국적 따위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결혼이 아닌 동거를 바로 시작했고, 함께 일을 했다. 동지로서 누군가 의리를 져버리면 바로 응징하고 사과했다. 누가 누구를 보호하거나 지키지 않았다. 반대로 누가 누구를 보호하지 못하게 하지도 지키지 못하게 하지도 않았다. 감옥에 갇혀서도 두 사람은 취조를 통해, 글을 통해 마음을 전하고 받았다. 그것들을 통해 몸은 비록 떨어져 있지만 수많은 얘기들을, 마음을 주고받았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두 사람은 혼인을 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다. 누가 누구를 누구의 소속으로 만드는 일은 하지 않았다. 동등한 동지로서, 인간으로서 함께 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물론 결혼이 반드시 누군가의 소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것. 그것을 서로가 존중하고 그 뜻이 맞았다는 것이, 특히 그 시대에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멋있었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에 박열이 사형 선고를 앞두고 변호사에게 가네코 후미코와의 혼인신고를 부탁한다. 사형당한 후 시신은 가족 만이 수습할 수가 있는데 가족이 없는 후미코의 시신을 자신의 가족들이 수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너무나도 애틋하고 따뜻한 반전이었다.
사실 실제로 두 사람이 깨가 쏟아지는 연애를 하는 장면들은 별로 나오지 않는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이 그다지 많지 않다. 감옥 안에 각자 갇혀 있거나, 재판을 받을 때 그저 나란히 피고석에 앉아 있는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영화의 아주 큰 시선이 그들을 애처롭게 안타깝게 그리고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음이 느껴지면서 나 또한 그 감정에 몰입했다. 두 사람이 취조를 받는 장면을 교차 편집해서 보여주는데 직접 만나지는 못 하지만 마치 직접 만나 사랑의 이야기를 속삭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 설레 하고 애틋해하는 표정이란.
또 두 사람의 첫 재판 때 박열은 혼인할 때 입는 예복을, 가네코 후미코는 한국 여성들이 입는 치마저고리를 입고 등장하는데 저렇게 쿵짝이 잘 맞는 천생연분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장면이다. 어찌 서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앞서 말한 마지막 사진 촬영 장면은 두 사람의 이런 사랑을 보여주는 그야말로 화룡점정이다. 누가 말려, 이 두 사람을!! 하며 끝내 웃음을 짓게 만드는.
이 영화를 본 사람들 중 이 영화는 박열의 영화가 아니고 가네코 후미코의 영화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렇게 볼 수 있을 만큼 가네코 후미코의 존재감이 대단한 영화이긴 하다. 하지만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영화는 박열의 삶에 쑤욱 들어갔다가 쑤욱 빠지는 영화다. 그가 끝까지 살아남았으니까.
영화의 첫 장면은 박열이 인력거를 끌고 뛰어가는 뒷모습을 느닷없이 따라간다. 후미코의 목소리와 함께. 박열을 따라가다 보면 박열의 시를 읽고 있던 후미코가 툭하고 등장한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함께 간다. 그러다가 영화의 후반부에서 다시 후미코는 박열의 인생에서, 아니 이 영화에서 툭하고 빠진다. 그녀가 빠진 이후로도 영화는 계속 진행된다. 끝까지 살아남은 박열은 1920년대 조선에서 달리고 달려 결국 2017년의 나에게까지 온 것이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잊히면 안 되는 이야기를 싣고 말이다.
이 영화는 그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제대로 정확하게 잘 전달해주는 것이 목적인 듯 그렇게 시작해서 그렇게 끝난다. 박열과 후미코의 관계를 중심으로.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이 문구가 떠올랐다. 그들에게서 진짜 '젊음'이라는 것을 보았다. 생각도 행동도 사랑도 젊음 그 자체였다. 정신적인 자유라는 것, 젊음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지!!
만약 내가 사랑을 한다면, 앞으로 하게 된다면 이들처럼 해보고 싶다. 어디에도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그러나 서로를 존중하면서, 마음껏 자신, 자신의 마음을 펼치면서. 시대를 잘못 만나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했던 이들의 사랑은 안타깝지만......
늦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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