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고

1980년 5월 광주로의 시간 여행

by Ann

개인택시 운전사인 만섭은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신나게 부르며 택시를 운전한다. 늘 그랬던 것처럼.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을 내일을 맞이하며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듯 보이는 만섭. 그러다 꽉 막힌 길 끝에 데모하는 학생들을 보곤 구시렁거린다. 데모하려고 대학을 갔느냐 하면서. 혀를 끌끌 차면서. 그에게 그 모습은 그저 남의 일이었다. 그저 혀를 차면서 구시렁거리는 남의 일.


하지만 우연히 독일에서 온 한 기자를 태우고 광주로 가게 되면서 그 남의 일이 만섭의 일이 되어버리고 만다. 발을 빼고 싶어도 도저히 뺄 수가 없는 돌이킬 수 없는 그의 일이 되어버리고 만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를 끊임없이 즐겁게 하거나 분노하게 하거나 슬프게 하거나 신경 쓰이게 하는 일들로 변했던 경험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탄핵 관련 일이나 대통령 선거와 같은 정치에 관련된 일 또는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들에 대한 일들이 그랬다. 모를 땐 그저 손가락질하면 그만인 일, 얼굴 한 번 찌푸리며 안타깝네 한 마디 내뱉으면 되는 일이었는데 내가 막상 그 안으로 들어가면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자꾸 보게 되고, 알게 되면 말이다. 지난 1년은 내가 태어나서 가장 뉴스를 꾸준히, 꼼꼼하게 열심히 챙겨봤던, 역사 관련된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시간들이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알면 알수록, 그 사람에 대해 알게 되면 될수록, 함께 한 시간이 쌓이면 쌓일수록 외면할 수 없게 된다. 단단한 끈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연결이 되어 멀리 달아나려 해도 어느새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사정을 알게 되면 자꾸 이해라는 걸 하게 되니까.


영화 <택시 운전사>의 만섭도 그런 사람이었다. 미지근했던 마음이 그 누구보다 뜨거워지게 된 사람. 자의는 아니었지만 알게 되고, 겪게 되고, 보게 되면서 그 누구보다 앞장서게 됐던 사람. 그런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결국 큰 힘이 되는 것이었다. "너 하나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냐?"라는 말이 틀린 말이 되어버렸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힘이 모이면서 말이다.


아마 만섭은 결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혀를 끌끌 찼던 대상들을 위해 그렇게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될 줄은, 몸을 던져 그들을 구해내게 될 줄은. 모를 때와 알고 난 후의 차이는 이렇게나 천지 차다.







이 영화를 통해 나는 2017년 7월의 분당에서 1980년 광주로 시간 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경험을 했다. 1980년 5월 20일 그날의 광주의 모습을 직접 보고 온 것 같은 경험. 그만큼 그 장면들 만큼은 무척이나 생생했다.


DSCF2482.JPG?type=w773 캄캄한 영화관에서 <택시 운전사>를 보며 휘갈겨 쓴 나의 메모



서울 사람인 만섭이 광주로 가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 충격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저 눈물만 흘려대던 그 시선 그대로가 바로 영화를 보는 나의 시선이었다. 내가 만섭이 되어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영상의 색감과 질감이 마치 그 시절 영상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들게도 만들었다. 한 마디로 나는 직접 그 광경을 목격한 만섭이 되었다가 그 광경을 영상으로, 사진으로 담은 힌츠페터 기자가 되었다가 왔다 갔다 한 것이다. 만섭의 시선으로 보는 참극, 힌츠페터의 시선으로 보는 참극 둘 다를 경험하는 것 같았다. 둘 다 참혹하기는, 눈물을 멈출 수, 참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몇몇 장면들은 도저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을 정도로 잔혹하고 끔찍하고 사실적이었는데 그것이 영화를 자극적으로 만들기 위함이 아닌 실제 있었던 일들을 조금 더 실감 나게, 조금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함이었음이 너무 슬펐다. 아니, 사실이었음이 자꾸만 내 눈물을 불러냈다.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를 총알에 힘없이 쓰러지는 많은 학생들, 시민들, 바닥에 뿌려지는 그들의 피와 살점들. 그걸 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어찌하지 못함에 어쩔 줄을 몰라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만섭(송강호)의 표정이 아마 내가 영화를 보며 짓고 있는 표정과 거의 똑같았을 것이다.


평소 사진이나 짤막한 영상으로 1980년 5월의 광주를 접했던 나에게 이 영화는 충격적일 정도로 길고 생생하게 진짜 1980년 5월의 광주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눈물이 났다. 만섭(송강호)이 울 때도, 울지 않을 때도.








대통령 탄핵을 겪고 이 영화를 보니 좀 남달랐다. 하나하나의 힘을 직접 느껴보았기 때문일까. 이 영화에선 내가 늘 중요하게 생각하는 직업정신을 느낄 수가 있었는데 각자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아주 잘 보여준다.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광주에서 일어난 참극을 카메라에 담는 것을 그냥 포기했더라면, 만섭이 그냥 서울로 돌아가버렸더라면 어땠을까. 그들이 그들이 맡은 일을 포기하지 않고 해주었기 때문에 묻혀버릴 수 있었던 혹은 왜곡될 수 있었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사실 그대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었고, 더 큰 희생을 막을 수 있었다.


물론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나 만섭을 비롯한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일을 하신 분들은 너무나 위대하고 숭고하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분들의 정신을 본받아, 목숨까지 내놓을 순 없을지 몰라도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태도를 늘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하는 일이 때론 하찮아 보일 수 있지만 어떤 상황에선 위대한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만섭도 아마 자신의 일이, 아내가 남겨주고 간 이 택시가 이런 위대한 일에 쓰이게 될지 결코 알 수 없었을 테니까.


광주의 선하고 용기 있는 시민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대학가요제에 나가려고 대학에 온 재식(류준열), 광주에서 개인택시를 운영하는 태술(유해진)과 그의 동료들, 그의 부인, 사실을 광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한 한국의 기자(박혁권) 모두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하고 행동한다. 그저 대학가요제에 나가고 싶었던 평범한 학생이었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던 택시 운전기사였고, 그 집의 평범한 가정주부였지만 그들이 현재의 우리에게 건네준 선물은 정말 어마어마하다.


만섭이 시간이 흐른 후 택시를 타고 '광화문'으로 가달라고 하는 그 대사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힌츠페터 기자는 돌아간 후에도 김사복이란 이름으로 기억하는 극중 만섭을 다시 보고 싶어 했지만 그를 찾을 수는 없었다. 물론 지금도 그의 실제 모습, 존재는 알려지지 않았다. 영화의 말미에 힌츠페터 기자의 생전 인터뷰 영상이 나오는데 그는 김사복을 만나고 싶다면서 그 이후 대한민국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함께 택시를 타고 둘러보고 싶다고 얘기한다. 만약 두 사람이 만났다면 함께 택시를 타고 현재의 한국을 둘러보며 무슨 얘기를 나누었을까? 영영 그 답을 알 수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그저 그들이 후회하지 않았기를 바라볼 뿐이다.








영화는 1980년 5월의 광주를 아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또 무조건 어둡고 무겁지 않게 곳곳에 유머를 꽤 많이 배치했다. 영화를 보면서 많이 웃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외엔 조금 평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들의 연기에 많은 부분 기대지 않았나 싶다. 만섭의 감정이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거의 비슷해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배우 송강호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감정을 쥐락펴락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배우 유해진이 맡은 역할도 너무 평면적으로 느껴졌지만 그만의 색깔로 잘 살려낸 것 같다.


한 영화에서 배우 송강호, 유해진이 함께 호흡을 맞추는 걸 본 게 처음이었다. 이 영화 이후로 두 사람이 함께 나오는 영화를 꽤 보게 될 것 같다.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니 광주에 가 본적이 없다. 물론 광주 이외에도 가본 곳이 많진 않지만. 언제 한 번 시간을 내 광주에 가보고 싶어 진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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