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그런 여자는 없다>를 읽고

너무 늦었지만 알아가고 있는 페미니즘

by Ann


차근차근 알아가고 있다. 내가 몰랐고, 알아야 하는 것에 대해서. 그런데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좀 불편하다. 한편 혼란스럽기도 하다. 알아가고 있는 것이 맞나 보다.




IMG_9435.JPG





정희진 작가의 <페미니즘의 도전>은 나에게 개론과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고 떠나갔다. '페미니즘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어렵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한 나의 코를 아주 납작하게 눌러버린 책이었다. 도무지 읽히지가 않았고 어려웠다. 두 번이나 읽었는데도. 물론 페미니즘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 처음이라 그랬던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페미니즘의 도전>을 발판으로 삼아 다른 책들을 하나둘씩 찾게 되었다. 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과 게릴라 걸스의 <그런 여자는 없다> 이렇게 두 권의 책을 이어서 만났다.



두 권 모두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입문자들에게 잘 맞는 책이었다. 너무 깊숙하게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페미니즘이 품고 있는 전반적인 것들에 대해 훑어볼 수가 있었다. 또 그 안에 내가 알지 못했던 많은 쟁점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동성애와 인종 차별과 같은 것들까지.



특히 이번에 읽은 게릴라 걸스의 <그런 여자는 없다>는 간결하면서도 임팩트가 강한 책이었다. 표지부터가 확 눈에 띈다. 잘못 읽으면 '그런 여자년'으로 보이기도 한다.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었는데 살짝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그러면 쓰나! 하곤 마음을 바로 당당 모드로 바꾸기도 했다. 여성들에 대한 각종 고정관념과 그것의 역사, 여성을 차별하는 여러 가지 호칭과 명사들의 의미와 역사 등등을 마치 백과사전처럼 다루고 있다. 큰 제목에 짧은 설명들과 이미지들이 쉽고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책을 구성했다.



굉장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마더 테레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모든 것이 마더 테레사에 대한 고정관념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 뒤에는 마더 테레사의 다른 모습도 숨겨져 있다. 마더 테레사는 예방보다 치료에 더 관심을 보였다. 그녀는 전 세계 수많은 아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참담한 빈곤 상황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피임에는 반대했다. 그녀는 노벨평화상 수락 연설에서 낙태와 피임을 세계 평화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많아도 좋은 꽃이나 별처럼, 아무리 낳아도 부족한 존재가 아기들”이라는 것이 그녀의 신념이었다.

그녀에겐 상과 기부도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었다. 마더 테레사는 누가 돈을 주든 마다하지 않았다. 아이티의 독재자 파파독 뒤발리에가 마더 테레사에게 상을 주겠다고 하자 그녀는 아이티에 가난을 가져온 그의 부패한 정권을 비난하는 대신에 그를 가난한 자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칭송했다.

마더 테레사는 또 미국의 저축은행 예금주들에게서 수백만 달러의 돈을 횡령한 찰스 키팅으로부터도 140만 달러를 기부받았다. 법원은 그녀에게 기부금을 돌려주라고 명령했지만 그녀는 이를 무시했다. 키팅에게 평생 돈을 모아 온 돈을 뜯긴 피해자들 가운데는 인도인들처럼 경제적 빈곤으로 고통받고, 심지어 아기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마더 테레사에 대한 고정관념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보지 못한 그의 모습들을 들춰볼 수 있도록 했다. 마더 테레사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녀에게 무조건적으로 덮어 씌운 고정관념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고정관념이 종종 여성들에게 강요되는 '여성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존경받아 마땅한 성녀이지만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부분들이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생각하지 않은 채 어떤 사람들은 희생을 강요하는 그런 여성상으로 그녀를 언급하곤 한다. 나이팅게일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으로 이 책은 언급하고 있다.



이 외에도 롤리타에 대한 오해, 서구의 여성들이 어떻게 해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노처녀라는 말이 왜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는데 재밌으면서도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쉽고 흥미로웠지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한국과는 조금 거리가 먼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 별첨으로 추가하긴 했지만 그걸로는 나에게 좀 부족했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니까. 앞으로 읽을 책들을 통해 보충하면 된다.




IMG_9417 2.JPG 게릴라걸스의 <그런 여자는 없다> 중에서




깊게 들어간 책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는 막막함을 조금 느꼈다. 그리고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아직 뭘 잘 모르기에 그 고민에 대한 답도 아직은 찾을 수가 없다. 그저 더 알아가는 수밖에. 일단 제대로 아는 것부터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만 들뿐이다.



아! 한 가지 다짐한 게 있다. 내가 평생 결혼을 안 하고 사는 한이 있더라도 마음을 열고 페미니즘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없는 사람과는 결코 결혼하지 않겠다는 다짐. 물론 다 소용없는, 하나마나한 다짐이긴 하지만......









ㅣ책 정보

그런 여자는 없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여자들을 따라다니는 고정관념들의 역사와 숨은 이야기! ‘된장녀’, ‘김치녀’ 등 ‘○○녀’라는 이름짓기가 성행한 것은 최근의 일이지만, 여자들을 비좁은 상자 속에 가두고 폄하하고, 혐오하는 말들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도시 중산층 가정에 들어와 온갖 가사를 도맡아 하던 ‘식모’는 가정파괴범으로 몰리기도 하고, 남자 형제들을 위해 돈을 벌러 온 ‘공순이’들은 ‘쉬운 여자’로 소비되었다. 여자가 솥뚜껑뿐만 아니라 운전대까지 잡게 되면서 도로 위의 무법자 ‘김여사’가 탄생했으며 이제 애들을 데리고 카페에 나타나 스펙 쌓기를 방해하는 젊은 엄마들을 ‘맘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왜 사회의 온갖 부조리와 대중의 원망은 늘 ‘그런 여자들’의 몫일까? 『그런 여자는 없다』는 이와 같이 여자를 가리키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말들. 여자들에게 늘 꼬리표처럼 따라붙으며 삶을 제약해 온 말들을 찾아내 그것이 내포한 과잉단순화된 생각과 여성 혐오적 특성들을 드러내고 그 뒤에 숨겨진 실제 여성들의 이야기를 발굴해 낸 책이다. 1980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해 온 페미니스트 활동가 그룹 게릴라걸스는 특유의 유머와 풍자를 통해 이런 관념들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확대 재생선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64372692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