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 <혹성탈출>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혹성탈출 1,2,3편을 연달아 보면서 인간에 대해 진절머리가 날만큼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희망보다는 절망을 더 크게, 많이 느꼈다. 그건 나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도 인간이니까. 나는 아닌 척 고고한 척할 수는 없다.
내가 혹성탈출 시리즈를 보는 동안 살충제 계란과 릴리안 생리대 파동이 있었고, MBC 파업이 있었고, 각종 크고 작은 사건들이 줄줄이 줄을 이었다. 티비 속 사람들은 괴로워했다. 비싼 계란이라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비싼 유기농 생리대는 이미 품절이며, MBC의 직원들은 눈물을 흘리며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어제 한 10분 정도 멍하니 뉴스를 보다가 절로 한숨이 내 입을 뚫고 나오는 걸 느꼈다. 기계식 주차장 관리 소홀로 한 승용차가 엘리베이터 10미터 밑으로 곤두박질하는 영상을 보았다.
혹성탈출 2편에서 바이러스 때문에 거의 몰살이 되고 소수의 종족이 된 인간들은 유인원들을 향해 분노를 표출한다. 너희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고. 하지만 그 바이러스는 인간이 만들었다. 인간의 뇌를 더욱 활성화시키기 위해 유인원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 만든 약의 부작용이었다. 그래 놓고 유인원들을 향해 분노의 눈길을 보내는, 분노의 말을 내뱉는 인간들을 보면서 나는 고래를 절레절레 흔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내가 요즘 인간에 대해(나에 대해) 실망하게 된 계기가.
살충제 계란을 만들어낸 것도 인간, 괴로워하는 것도 인간, 화학물질 덩어리 생리대를 만들어낸 것도 인간, 괴로워하는 것도 인간, 언론을 탄압한 것도 인간, 괴로워하는 것도 인간...... 누군가를 탓하고 싶지만 그것은 나를 향한 비난이기도 하다. 같은 인간이 행한 짓들이다.
그래도 항변해보자면 적어도 살충제 계란, 화학 덩어리 생리대, 죽음의 가습기 살균제 등을 만든 사람들보다 더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자신들의 가치관을 지키려 노력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살아왔다. 못된 짓, 나쁜 짓을 종종하면서 살아왔지만 최소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망설이고 고뇌했다. 다른 사람들을 헤치는 것에 큰 두려움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다.
혹성탈출의 마지막 3편의 시저도 그랬다. 아내와 아들을 인간 때문에 잃고 복수심에 불타오른다. 자신이 처결한, 인간에 대한 강한 복수심, 분노를 갖고 있던 코바와 점점 같은 길을 걸어간다. 그로 인해 자신이 그토록 외쳤던 '유인원은 유인원을 죽이지 않는다'는 신념을 져버리게 된다. 그러면서 시저는 괴로워한다. 자신의 꿈속에 매번 나타나는 코바를 보며 괴로워하고 고뇌한다. '과연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과연 코바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중요하다. 시저는 내내 괴로워하고 고뇌하고 자기 자신과 싸운다.
하지만 그것조차 하지 않는 인간들은 도대체 뭘까. 평화롭게 공존하고 싶어 하는 유인원들을 끊임없이 공격하고, 배신하는 심지어 같은 인간들끼리도 공격하고 배신하는 인간들은 도대체 뭘까. 사람들에게 해가 될 걸 알면서도 살충제 계란을 생산하고 그것을 허가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뭘까. 여성들에게 가장 예민하고 중요한 생리대를 화학물질 덩어리로 만들고 그것을 허가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뭘까. 자칫 잘못하면 사람의 목숨을 헤칠 수도 있는 독성 살균제를 만들고 그것을 허가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뭘까. 사실을 왜곡하고 그것을 보도하도록 강요하고 협박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뭘까. 그 안에 내 또래의 사람들이, 우리 부모님 또래의 사람들이, 내 동생 또래의 사람들이 있다. 나와 비슷한, 우리와 비슷한 모습을 한 사람들이 있다. 알면서도 보았으면서도 패스! 를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름 아닌 인간의 외형을 하고 있다. 아주 평범한 나와 같은 인간의 모습을.
그들은 어디선가 누구의 아버지일 것이고, 누구의 어머니일 것이고, 누구의 친구일 것이고, 누구의 자식일 것이다. 결국 그들이 저지른 짓이 자신의 자식, 자신의 아내, 자신의 부모, 자신의 남편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아마 그것조차 모르겠지. 알았다면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들진 않았을 테니까.
혹성탈출 시리즈를 보면서, 최근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을 보면서, 난 자꾸 화가 난다. 인간에 대해 실망하게 된다. 도대체 인간은 어디까지 악한 것일까. 얼마만큼 악해질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의 욕심은 어디까지이고,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어떤 짓까지 할 수 있는 것일까. 소중한 타인의 삶을 순식간에 날려버려도 아무렇지 않은 그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자신의 자식들에게, 아내에게, 부모에게, 친구들에게 부끄러울 짓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그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시저가, 시저의 생명의 불꽃이 스르르 스러져가는 것을 보며 나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시저는 너무나도 위엄 있게 자신의 생을 마감했지만 유인원들은 그들만의 파라다이스를 찾았지만 우리에게 위엄 있는 삶, 부끄럼을 아는 삶을 안내해 줄 '지혜로운 리더'가 떠난 것 같아서......
인류가 탄생하고 수많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악행.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끝내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자 끝내 사라지지 않을 실망감일 것이다. 혹성탈출 시리즈에는 유인원들과 협력하는 좋은 인간이 늘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을 보면서도 사실 위로는 되지 않는다. 그들은 늘 언제나 소수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선행을 베푸는 이들은 늘 소수이고 그들은 때론 악행을 벌이는 이들에 의해 어이없게도 희생되는 경우가 많다. 동화나 영화와는 다르게 말이다.
'선'을 믿고 싶다. 전면에 두드러진 악행들 뒤에 숨어 있는 '선'의 행동들을 보고 싶다. 그런데 지금은 좀처럼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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