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영화 <아이 캔 스피크>를 보고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할 때

by Ann


! 이 글에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는 송강호의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는 말에 "송강호 선배의 말에 공감한다. 배우가 연기를 하면서 첫 번째 계기가 됐던 게 영화를 보면서 성장했던 시기다. 확실히 영화가 영향이 컸다. 지금은 내 삶에 있어 영화는 일부분일 수 있지만 그걸 막상 떼고 나면 설명할 수가 없다. 내 영화를 보는 분들이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들이 하나하나 소통하게 된다면 그것 역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나 싶다"라고 웃었다.

- 스포츠 조선 배우 '이제훈' 인터뷰 중에서 -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과연 그럴까? 실제로 영화가 마법처럼 "짠!"하고 모든 것을 순식간에 바꿔놓을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스위치 역할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뿐만 아니라 문학도 마찬가지.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을 딸깍하고 환기시킬 수 있으니까. 세상은 사실 영화가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사람, 영화를 보는 사람, '사람'이 바꿀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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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움직이는 건 마음과 생각이다. 그리고 '알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그것들을 잘 충족시켜주는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미처 몰랐던 것을 알게 해주었고, 영화적인 방법으로 내 마음을 건드려주었다. 내가 '그 사람'이 되어보고 '이 사람'도 되어보고 '그 일'도 겪고 '이 일'도 겪으면서 미처 내가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알고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바로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에 말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나옥분 할머니는 구청 직원들이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떠는 존재다. 할머니의 이름으로 구청에 민원이 총 8천 건이 넘게 접수됐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을 몽땅 신고하고, 불편한 사항들이 있으면 즉시 증거를 수집해 구청에 민원을 넣는다. 하지만 정작 그녀에게 고마워하는 사람 하나 없다. 오히려 불편한 존재로 여겨질 뿐.



영화는 이런 그녀의 삶을 따라다닌다. 도대체 그녀는 왜 그러는 것일까? 그저 오지랖 넓은 동네 할머니일 뿐인 걸까. 게다가 구청 직원이자 영어를 잘하는 민재(이제훈)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영어를 가르쳐달라고 조르는 나옥분 할머니. 왜 그렇게까지 영어를 배우려고 하는 것일까? 그녀를 열심히 따라다니다 보면 그 끝에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가 서 계신다. '나 여기 있어, 할 말이 있어'하고.



자신이 사는 동네를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생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학생을 위해 손수 저녁을 지어 먹이는 나옥분 할머니는 자신이 위안부였던 사실을 숨기고 있었던 위안부 할머니였다. 아마도 그녀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어릴 적 부모는 그녀가 위안부였던 사실을 수치스럽다 하여 숨기게 했고 그 때문에 그녀는 다른 할머니들처럼 나서서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일본의 악행을 밝히는 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자신과 함께 힘들게 살아남은 친구 정심은 열심히 활동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치매에 걸려 모든 걸 잊어버리고 만다. 나서지 못한 것에 대한(사실 그것이 결코 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죄책감 때문에, 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감내해야 했던 지독한 외로움 때문에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동네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녔던 것 아니었을까.



영화 속에서 옥분은 자신의 어머니 산소 앞에 앉아 울부짖는다. 왜 숨기라고 했냐고. 왜 창피해했냐고. 주저앉아 울부짖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울음을 터트려버렸다. 아주 잠깐이지만 내가 그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의 억울함이, 서운함이, 허무함이 나에게 고스란히 몰려왔다. 그녀는 무슨 죄로 그런 일을 겪어야만 했을까. 무슨 죄로 일본 군인들에게 몹쓸 짓을 당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고국과 가족에게 몹쓸 소리를 들어야 했을까. 남동생의 앞날을 위해 마음과 입을 닫고 살아야만 했던 나옥분 할머니의 인생은 어떤 의미일까......



내가 그 시절에 태어났다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의 나 대신 과거의 그녀들이 겪은 일이다. 그런데 어느새 나는 또 잊고 살았다. 너무 죄송스러웠다. 그런 나의 마음을 영화 속 내 또래의 민재(이제훈)가, 나보다 어린 고등학생 영재(성유빈)가 대신 전해줬다. 민재는 나옥분 할머니 앞에서 눈물과 고개를 떨구며 죄송하다 사과했고, 영재는 '할머니한테 그러지 마. 외로우셔서 그런 거야'라고 할머니를 오해한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나옥분 할머니는 열심히 영어를 배워 미 의회에 가 자신이 하고 싶었던 얘기를 당당하고 위엄 있게 외친다. 일본의 군인들이 위안부 여성들에게 한 짓들에 대해 또박또박 설명했다. 또한 정당하게 사과를 요구했다. 자신들이 한 명이라도 살아있을 때 사과할 기회를 주겠다고 진심으로 사과하라고 단호하게 요구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 기립 박수를 쳤다. 나도 맘 속으로 누구보다 힘차게 박수를 쳤다. 영화의 단호한 메시지를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영화는 단호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면서도 따뜻하게 나옥분 할머니를 감싸준다. 초반 할머니를 향한 원망 어린 시선들을 거두고 따스한 시선, 존경 어린 시선을 선물한다. 미국에서의 증언을 마치고 돌아온 할머니를 향한 동네 사람들의 시선과 태도가 그것을 보여준다. 이제야, 수십 년이 흘러서야 그녀는 환영받게 된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뒤늦게나마 돌아온 그녀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사과한다. 그녀가 증언을 마치고 만난 입양한 남동생의 사과를 통해, 우리를 대신하여......



영화의 말미에 미 의회에서 위안부 사죄 결의안이 통과되었지만 10년이 지나도록 일본은 제대로 된,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자막이 나온다. 어떤 이들은 일본이 몇 번이고 사과를 했다고 이제 그만 하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사과'의 진정한 뜻을 이해하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또한 사과는 하는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니다. 받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때린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니고 맞은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용서를 하라, 마라 할 수 있을까. 감히 누가 누구에게......




사과 :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






'위안부'라는 소재의 무게가 어마어마한 만큼 그것에 이야기에 좀 치중되긴 했지만 이 영화는 유사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다루고 있다. 부모님 없이 살고 있는 두 형제에게 따듯한 밥을 지어주고 따듯한 관심을 가져주는 동네 할머니. 명절 때 혼자 계실까 봐 먹을 걸 싸들고 할머니 집에 들르는 두 형제. 이들은 피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지만 그렇게 가족이 되어갔다. 면접시험 중 면접관이 민재의 이력서를 보며 가족이 동생 하나인가 봐요?라고 묻자 민재는 첨엔 "네"라고 대답했다가 다시 "아니요"라고 정정한다. 그리고 화면이 넘어가는데 아마도 민재는 그 뒤에 "할머니 한 분이 더 계십니다"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할머니가 직접 만들어준 양복을 입고.



전체적으로 영화가 아주 잘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코믹한 요소들은 배우 박철민에게 꽤 많이 기댄 것처럼 보였다.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들도 있었다. 영화의 톤을 너무 무겁지 않게 하기 위한 방책이었을 것 같은데 단지 그 이유로 억지로 대충 껴넣어버린 것 같았달까. 또 몇몇 감동을 자아내는 장면들도 너무 뻔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다음 장면이 나오기 전부터 예상이 될 정도로.



하지만 어떤 장면들에선 정확하게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감정과 감동들은 전했다고, 충분히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한다. 일등공신은 아마도 배우 나문희 선생님이 아니었을까 싶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그들의 마음, 생각,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잠시 빌려준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 이 영화는 배우 나문희가 없었다면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아이 캔 스피크>는 영화로써 하고 싶은 말을 우리에게 전했다. 나는 글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한다. 귀 기울이자고. 그들이 하고픈 얘기에 열심히 귀 기울이자고. 그리고 기억하자고.











* 이 영화는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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