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어 퍼펙트 데이>를 보고

인생은 전화위복

by Ann

ㅣ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화위복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으로, 어떤 불행(不幸) 한 일이라도 끊임없는 노력()과 강인()한 의지()로 힘쓰면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말



최악의 만남이라고 생각했던 인연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 나의 모든 걸 뒤흔들었던 그 인연이 진짜 '나'를, 좀 더 강해진 '나'를, 저 밑 시커먼 우물 속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나'를 수면 위로 띄워준 것이다. 불행이라고 생각했던 그 시간들이 오히려 그 시간들이 말이다.



하루하루 시간이 쌓여갈수록 이 세상에 아주 나쁜 일도, 아주 좋은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엔 그 일이 아주 나쁜 일, 나에게 생긴 최악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면 그 일 덕분에 상황이 더 나아지는 결과가 생기고 아주 좋은 일이라고 기뻐했는데 그 일 때문에 배로 괴로운 일들이 생기곤 한다. 그럼 그 일들을 좋은 일이라고 해야 할까 나쁜 일이라고 해야 할까.



영화 <어 퍼펙트 데이>는 마치 그런 인생의 축소판 같다.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아주 중요한 일 하나가 계속 애를 먹인다. 줄이 끊어지고, 맹견을 만나고, 지뢰에 막히고, 바람 폈던 옛 여자 친구가 나타나고, 화장실이 막혀 물이 홍수처럼 불었는데 비가 오고. 하지만 그 엉켰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뜻하지 않은 일들을 데리고 온다. 그렇게 따라온 일들이 결국 해결되지 않을 것 같던 일을 해결하게 만든다.



끊어진 줄은 '니콜라'라는 꼬마를 만나게 해 주고 니콜라는 맹견을 만나게 하지만 맹견은 니콜라 부모의 행방을 알게 해 주고, 그 부모의 행방은 밧줄을 구하게 해 주고, 지뢰는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불청객인 비는 끝내 그들이 해결하고자 했던 일을 너무도 쉽게 해결하도록 도와준다.



그저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여유를 잃지 않고, 팀원을, 사람을 생각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으며 솔선수범해 힘을 합쳐 하나하나 해결해 나갈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일은 해결이 된 것이다. 어이없게도. 그렇게 그들의 완벽한 하루가 지나갔다. 지독하게도 운이 나쁜 날이자 도무지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던 일을 해결한 완벽한 하루가.



어떤 사람은 그들의 하루를 보고 최악의 하루라고 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최고의 하루라고 할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어떤 일을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만들 수 있는 게 최악의 혹은 최고의 하루가 아닐까. 나는 나의 하루를 최악으로 만들고 있는가 최고로 만들고 있는가. 나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을까.



어릴 땐 최악의 하루를 만드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작은 일에도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괴로워하고 감정을 과장하고. 하지만 시간은 나를 조금은 더딘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래서일까. 최악의 하루는 전보다 자주 오지 않는 것 같다. 최악의 하루는 점점 자리를 내어준다. 나쁜 일 뒤에 좋은 일이, 좋은 일 뒤에 나쁜 일이 순서를 바꿔가며 나를 헷갈리게 했고 점점 그 두 녀석이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조금 덜 슬퍼하고 조금 겸손하게 기뻐하게 됐다. 물론 그게 안 될 정도의 일들이 아직도 너무 많고 많지만......




movie_image.jpg 영화 <어 퍼펙트 데이> 중에서 / 출처 : 네이버 영화





유머와 농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했다. 하지만 좀처럼 쉽지 않은 것도 유머와 농담 속에서 사는 일이다. 특히나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모든 게 엉망진창이어서 기분도 엉망진창일 때 누군가 툭 던지는 농담 한 마디는 그 모든 것을 뒤엎는다.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이 그 안의 모든 공기를 뒤바꾼다. 이 영화에선 짜증 나는 상황, 어찌할 수 없는 상황, 끔찍한 상황에서 농담을 툭툭 던진다. 나는 최근에 본 그 어떤 코믹 영화들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크게 웃었다. 웃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될 때, 화가 나는 부분이라고 생각될 때 생각지도 못하게 던지는 농담은 더 큰 웃음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 상황을 잊었다. 아, 저들이 지금 곤경에 처한 거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라는 법륜 스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나는 그 말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은 '농담을 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로 들린다. 이 영화를 본 후에 말이다. 농담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얘기고 그렇게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그 안에서 내가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곧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부정적이고 비관적이고 초조한 상태보다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일이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아닐까. <어 퍼펙트 데이>의 요원들이 퍼펙트 데이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나도 내 주변에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사람들이 좀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늘 진지하지 못한 게 문제가 되는 경우가 좀 많긴 하지만...... 꼭 필요한 구성원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위기의 순간에서.



영화 <마션>도 떠올랐다. <마션>의 주인공인 마크 와트니가 살아서 지구로 귀환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성격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순간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게 실패할 경우에도 순간 분노할지언정 다시 가볍게 리셋하고 무언가를 시작하는 그 성격 덕분에 생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한 마지막 대사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내가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은 내가 화성에 고립되었을 때, 죽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랬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걸 알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여러분에게 일어날 일이기 때문이죠. 우주는 절대로 협조적이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모든 것이 틀어지고, 당신은 '이거구나, 내가 이렇게 죽는구나'하고 말하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사실을 그저 받아들이거나, 그럴 것이 아니라면 맞서서 할 일을 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고, 그다음 문제를 해결하고, 또 그다음 문제를 해결하고. 그렇게 충분히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집에 도착하게 될 것입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deepdown_/221016960422




인간의 인생에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100% 확실한 정답이다. 가다 보면 길이 막히고 또 가다 보면 악당이 나타나고 또 가다 보면 비가 오고, 눈이 오고, 가만히 서 있는데도 흙탕물이 나를 덮친다. 그 모든 걸 미리 알고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예방하고 예비할 수는 있지만 모든 걸 예방하고 예비할 수는 없다. 그걸 인정하고, 알고 삶을 살아가는 건 참 중요한 것 같다. 그러면 좀 더뎌질 수 있는 것 같다. 나에겐 매일 꽃길만 펼쳐져야 해, 나에겐 매일 꽃길만 펼쳐질 거야. 하고 살아가는 삶은 생각만 해도 견디기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알고 인정한다고 해도 내 앞에 나타나는 수많은 장애물들, 나를 힘들게 하는 사건, 사고들을 좋게만 받아들일 수는 없다. 없을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 영화를 꺼내 보고 싶을 것 같다. 다만 자주 꺼내 보는 일이 없길 바랄 뿐이다.











* 이 영화는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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