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돌아오지 못한 자들에 대한 애도

영화 남한산성을 보고

by Ann

영화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칼바람이 내가 앉아있는 곳까지 불어와 나를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밤바람은 이제 제법 차가운 10월에 아직도 에어컨이 가동되는 영화관은 영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더욱 서늘하게 느껴졌다. 큰 스크린에서 뿜어져 나오는 입김에 나도 모르게 가지고 온 카디건으로 몸을 덮었다.



movie_image.jpg 출처 : 영화 <남한산성>






영화 <남한산성>은 아픈 우리의 역사들 중 하나를 골라 아주 슬프게, 차갑게, 아프게 표현한 작품이다. 회색 배경에 흰색 눈, 잎이 없는 앙상한 나무들, 어두운 대신들의 의상 등 화사한 색감 하나 없는 스크린 속 영상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한없이 춥고 건조하게 만든다. 그중 가장 화려한 색감의 용포는 톤이 다운된 붉은색이어서 오히려 더 어두운 기운을 뿜어낸다. 검붉은 피와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무채색 배경 속에 날리는 사람들의 피는 너무도 붉다. 생생한 삶들이 뻘건 피를 뿜어대며 우수수수 스러져가는 장면들을 보고 있자니 너무도 처참했다. 하나하나 생생하고도 묵직한 삶인데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단칼에 끝나가는 모습은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 전쟁 영화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저들의 삶은 어찌도 저렇게 가벼울 수가 있을까. 어쩜 저렇게 찰나에 끝이 날수가 있을까. 한 겨울에 제대로 된 장비와 옷도 갖추지 못해 추위에 떨며 동상 걸린 손, 발 한 번 따뜻하게 녹이지도 못한 채 죽어간 사람들. 그에 비하면 이럴까, 저럴까 하는 인조의 머리 아픈 고민과 그가 청으로부터 겪은 굴욕은 나에겐 그다지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스크린 바깥에 있는 나에겐, 2017년을 살아가는 나에겐 그저 그들 모두 하나의 개인일 뿐이니까. 누군가에게 소중한 동생, 아내, 자식, 부모인.


누군가에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목숨들이 적들에 의해 순식간에 사라져 가고 있는 마당에, 살아있는 사람들조차 밥 한 끼 그득하게 먹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품위, 품격, 명분, 자존심 그런 것들이 뭐가 그리 중요하단 말인지. 나는 최명길의 주장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런 탓일까. 왠지 이 영화도 그를 지지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도 최명길의 모습이 가장 먼저 화면 가득 담기고, 이 영화에서 실제 말과 행동을 함께 보여주는 이는 최명길이었다. 남한산성으로 어가를 옮기라고 말한 이도 최명길이고, 목숨을 걸고 청과 직접 만나 몇 번이고 협상을 시도한 이도 최명길이었다. 그리고 왕이 삼배구고두례를 할 때 눈물 흘리며 비통해하는 얼굴도 최명길의 얼굴이며 영화의 마지막 장면마저 최명길의 뒷모습이다.


처참하게 지고 있는 적과의 전투 장면을 멀리서 부감으로 보여줄 때 나는 그들의 희생을, 아픔을 체험하는 것 같았다. 결국 대부분의 병사들이 고립된, 차가운 눈이 쌓인 산 위에서 외롭게 죽어갔다. 영화는 그렇게 여기저기 널려있는 그들의 시체를 비춰준다. 나는 더욱 몸을 움츠렸다.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할 때였다. 남한산성 밖에서 그들이 그렇게 춥고 외롭게 죽어갈 때 안에서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안으로 들어가 보면 대신들이 엎드려 말을 하고 있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입장을 계속 바꾸는 대신들이 있는가 하면 옳든 그르든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신념에 따라 뜻을 꺾지 않는 대신들이 있었다. 뜻을 꺾지 않는 이는 김상헌과 최명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신념을 지켜나갔다. 나는 최명길에게 마음을 줬지만 두 인물 모두에게 존경심을 느꼈다. 왕의 미움을 살 수도, 관직을 읽을 수도,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얼마나 숭고한 일인가. 하지만 나에게 더욱 중요했던 건,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던 건 죽어나가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안에 있는 그들이 제발 힘을 합쳐, 머리를 모아 쌓인 눈 위에 선명한 발자국을 남길만한 무게를 지닌 삶들을 구해내길 바랐다. 그들의 혀가 바쁜 동안 바깥에 있는 백성들은 죽기 바빴다. 그런 나의 마음을 뒤늦게나마 전달받은 것 같은 이는 최명길이었다.


김상헌이 얼어붙은 강을 건넌 뒤 그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도와준 노파를 죽인다. 그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노파의 손녀 나루가 불어내는 입김이 스크린에 가득 찬다. 그 장면은 아마도 '삶'을,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나루는 할아버지가 죽자 혼자 그 강을 건너 남한산성까지 오게 되고 그런 나루를 김상헌이 맡아 키우게 된다. 그에게 돌아온 '삶'. 하나의 '삶'을 보고 김상헌도 흔들리지 않았을까. '산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앞에 생생하게 서 있는 '삶'자체를 보면서. 죽지 않아서 생생하게 이어지고 있는 나루의 하루하루를 보면서. 살아있음으로 해서 그에게 보여주는 나루의 모든 사랑스러운 행동들이 그를 흔들지 않았을까. 물론 그의 신념을 바꾸기엔 부족했지만.


나루를 보면서 나는 '살아있음'에 대해 강렬하게 느꼈다. 나루와 같은 삶들이 순식간에 생기를 잃어가는 순간들이 빨리 멈춰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적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최명길이 그 삶들을 구하자고 주장했고, 인조 임금은 결단을 내렸다. 죽음보단 치욕을 견디기로.


인조 임금이 삼배구고두례를 할 때 극장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숨을 크게 뱉어냈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의 숨에는 안도의 숨도 포함되어있었다. 이후 영화는 좀 더 밝은 톤으로 안정된 백성들의 모습을 날쇠를 통해 보여준다. 날쇠와 나루는 가족이 되었다. 김상헌이 날쇠에게 나루를 키워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나루의 친구가 놀자고 나루를 부자 날쇠는 나루에게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당부하고 나루는 경쾌하게 대답하며 친구와 놀러 나간다. 죽지 않았다면 그 많은 백성들의 삶도 이렇게 나루처럼 이어지고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찡하고 울렸다.


결국 김상헌은 노인을 벤 칼로 자신의 생을 마감한다. 최명길은 다시 궁으로 들어간다. 다시 이어진 삶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하지만 수많은 백성들은 돌아가지, 아니 돌아오지 못했다. 이 영화는 그렇게 다시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 남한산성에 묻힌 이들을 위한 애도의 영화였다. 나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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