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싱글맨'을 읽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상실감. 경험해보지 않아서 온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최근 배우 김주혁의 죽음을 통해 아주 조금이나마 느껴본 상실감. 상상만으로도 마음에 타격이 크게 느껴졌다.
만약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고로 급작스럽게 죽는다면. 나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소설 <싱글맨>의 조지의 하루를 따라가며 나의 하루도 상상해보았다.
그 비극적인 소식을 들은 날부터 어느 시점까지 나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주변을 둘러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부모를 잃고 형제를 잃어도 그들은 잠시 웃기도 하고 밥도 먹고 또 다른 종류의 걱정도 한다. 나도 그럴까.
일단 아침에 눈을 뜨면 그저 일어나기 싫다는 생각으로 시작해 뭉그적거리며 인스타그램을 훑고 날씨를 확인한 후 엉망진창이 된 몰골을 이끌고 가득 차 있는 소변을 배출하러 화장실로 가겠지. 그리곤 샤워를 하고 방으로 돌아와 음악을 틀고 얼굴에 로션과 선크림을 바르며, 정말 아무런 생각도 없이 기계처럼, 눈썹을 대충 채우고 머리를 말리겠지. 앞머리엔 롤을 말고. 그 사이엔 아마 다른 생각들이 틈입하지 못할 것이다. 말 그대로 모두 기계처럼 무의식으로 하는 행동들이니까.
늦은 아침이자 이른 점심을 깨작깨작 먹고 집을 나서면서 비로소 난 혼자가 되고, 이어폰을 귀에 꽂는 순간, 동시에 나를 떠난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겠지.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눈물이 나올까 봐 침을 꼴깍 삼키며 일터로 걸어가겠지. 아주 짧은 시간 5분. 그 사이에 오롯이 혼자가 되어 그를 생각하겠지. 길게만 느껴지던 신호도 짧게 느끼면서.
일터에 도착하면 또 다른 루틴이 나를 기다리고 있고 한동안 텅 빈 머리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일을 할 것이다. 그야말로 기계다. 표정도, 생각도 없는. 그 일들을 다 끝내면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나도 모르게 큰 한숨을 내쉴 것 같다. 이렇게 또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그제야 실감을 하면서.
실시간 검색어에 호기심이 가는 단어가 있으면 클릭을 해보고, 아니면 스케줄을 확인해보고 오늘 컴퓨터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실제로 실행한 후 다시 멍한 상태가 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한 사람에게 참 안 어울리는 일을 나는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상상을 해보니. 가만히 멍하게 있을 시간이 너무 많다. 간단한 업무들을 마치고 나는 이제부터 뭘 해야 할지 몰라, 아니 사실은 뭘 하고 싶지 않아 정신적으로 방황을 할 것이다. 책도 손에 잡히지 않겠지. 그래도 일단 책을 들겠지.
그러다가 손님이 오면, 늘 만나던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이 말을 걸어오면 평소와 다름없이 대답하고 억지 미소를 짓고 어쩌면 정말 웃음이 나올 수도 있고,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 아, 싫어했던 사람은 계속 싫다고 느끼면서.
그리고 또 가만히 있다가. 인스타그램을 넋 놓고 구경하겠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일상을. 텅 빈 머리로, 눈만 움직이면서.
그러다 나의 인스타그램으로 돌아가면 우리의 과거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 보면 마음 아플 걸 알면서도 다시 처음부터 죽 훑어보며 눈물짓고. 혹시나 사무실에 동생이나 아빠가 있으면 그 눈물을 참느라 고생 꽤나 하겠지. 그래도 눈물이 나면 방 하나에 들어가 울다가 나오겠지. 바로 사무실로는 못 오고 화장실 잠깐 들러 얼굴을 좀 확인하고.
울고 나면 마음이 또 잠시 후련해져 기분이 좋아질 수도. 그럼 그때 커피 한 잔을 타 마시고 책을 읽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금방 집중력이 흐려져 일어나 괜히 한 바퀴를 둘러보고 다시 제자리. 다시 멍.
저녁이 되면 식욕은 없지만 배는 고파 뭘 먹을지 고민을 할 것이다. 선택지는 별로 없지만. 저녁 메뉴를 고민한다는 게 어이가 없어서 실소를 남모래 짓다가 대충 저녁을 때우고. 그가 늘 연락을 해오던 그 시간이 되면 나도 모르게 휴대폰을 보고, 만지작거리다가 깨닫겠지. 안 오겠구나. 안 오지. 영영...오지 않겠구나. 그 사실이 너무 슬퍼 또 눈이 시뻘게지겠지.
드라마가 할 시간이면 늘 함께 드라마 얘기를 하던 생각이 떠올라 그 드라마가 끝날 때가지 보지 못할 테고. 겨우겨우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전화하고 싶어 전화기를 들었다가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대신 이어폰을 꺼낼 것이다. 사실 음악을 듣기도 겁이 나겠지만. 함께 좋아하던 노래들로 가득 차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 핑계로 다시 보고 싶은 그 얼굴을 떠올리겠지.
그렇게 또 짧은 퇴근길을 추억에 잠겨 걸어가다가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아파트 주변을 잠시 배회하고. 집으로 들어가선 씻고 동생과 늘 보던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고 방으로 돌아와 갑자기 터져 나오는 눈물을 어쩌지 못하고 울어버리겠지. 그리고, 그러다 잠이 들고 다시 아침을 맞이하겠지.
상실감에 휩싸여 하루를 보내지만 남들이 보기엔 그저 똑같아 보이는 나의 하루들이 되겠지. 그리고 나도 점점 그 상실감으로부터 벗어나겠지. 그리고 언젠가 완전히 벗어나 상실감에 앓았던 시절을 그저 슬픈 추억으로 기억하겠지. 흉터를 남긴 깊은 상처이자 슬픈 추억으로. 다시 누군가를 만날 가능성도 조금씩 열어두고.
실제와는 완전히 다를 수도 있는 상상 속의 나의 하루는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누구도 대신 들어줄 수 없는 무거운 상실감을 짊어지고 걸어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은 나의 몫이었다. 떠나간 사람도, 곁에 남아 있는 사람들도 결코 대신해줄 수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하루를 보내기.
떠나간 사람은 서운할 수도 있겠지. 너무 하루를 무사히 잘 보내서. 하지만 어쩌겠나. 죽어서도 살아서도 인간은 혼자인걸. 그래서 문득문득 외로움을 느끼면서 살아야 하는걸. 어차피 인생은 가장 즐거울 때도, 가장 슬플 때도 오히려 혼자일 수밖에 없는 걸.
오히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지금 내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이 보고 싶어진다. 외로움은 그들을 더욱 소중하게 느끼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 가득한 하루 속에서도 나를 걱정해주고, 나를 생각해줄 사람들. 내 옆에서 직접 온기를 얹어줄 사람들. 결국 상상의 끝은 그들로 향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잘, 살아가야 한다.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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