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나는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지 않다

최고요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by Ann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니오”였다. 좋아하는 곳에 살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것들이, 나에게는 필요했다.

어릴 때부터, 정확하게 몇 살 때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공간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인테리어 전반에 관심이 많았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공간을 눈여겨본다. 드라마나 영화의 스토리가 재미없어도 공간이 멋지게 꾸며져있으면 그걸 보기 위해 그 작품을 봤다. 내 방이 처음 생겼을 때도 나는 내 방의 구조를 수도 없이 바꿨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으니까. 이미 가지고 있는 가구들의 위치를 바꾸는 것. 나중에 어른이 된다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공간에서 살아야지 하고 꿈꿨었다. 지금의 내가 바로 그때 꿈꾸던 어른의 나이고, 나는 아직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 살고 있지 않다. 아니, 못 하다.

대부분 결혼한 나이, 혹은 독립한 나이에 나는 아직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결혼과 독립 둘 다 나에겐 내가 어쩔 수 없는 일들이다. 인연은 제 때 내 앞에 나타나주지 않았고, 독립을 하기에 나는 너무 가난하다.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좋아하는 공간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그곳은 부모님의 집이니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엄마’의 집이니까. 내가 맘에 들지 않는 가구들이 내가 살고 있는 공간 전체를 다 차지해버리더라도 나는 어쩔 수 없다. 그곳은 엄마의 공간이니까. 물론 부모님과 잘 상의를 해서 서로가 좋아하는 공간으로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건 사람에 따라 좀 다른 것 같다. 서로가 절충이 안 되는 경우는 세입자가 발언권을 포기해야 한다. 세입자는 바로 나.

그 집에서 내가 원하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도록 허락된 공간은 내 방과 화장실 뿐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가구 하나를 바꾸려고 해도 버리고 사오고 하는 일이 고스란히 엄마에게 노출이 되고 ‘멀쩡한 걸 왜 버리냐, 왜 번거롭게 일을 벌이냐, 쓸데없이 돈을 쓰냐’와 같은 잔소리를 매번 들어야 한다. 그럼 늘 주춤거리게 된다. 가구를 버리고 사는 일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포기하고 만다.

그러다보니 현재 내 방을 채우고 있는 것들은 모두가 제각각이다. 마음에 드는 것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있다. 어릴 때 사놓은 마음에 들지 않는 가구들이 떡하니 버티고 앉아 내가 사들인 물건들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사실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공간의 협소함이다. 내 방은 좁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책상 하나 놓을 공간이 없다. 좁은 방 하나에 옷장, 화장대, 침대가 들어가니 더이상의 자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뭐하나 뺄 수 있는 것도 없다. 버릴 수도, 어디 놓을 곳도 없기 때문이다. 가끔 그런 내 방에 앉아있으면 가끔 숨이 막혀올 때가 있다.

그래도 최대한 내가 좋아하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늘 애를 쓰지만 한계가 너무 명확해 풀이 죽는다. 수집해놓은, 내가 살고 싶은 공간에 대한 자료는 넘치지만 정작 내가 써먹을 기회는 없다. 그런 상황이 나에겐 아직 허락되지 않았다. 좋아하는 곳에서 살려면 일단 혼자 만의 공간이 필요한데 그건 돈 없이는 힘들다. 누굴 탓하랴. 전부 나의 능력 부족인 걸.

부모님 보호 아래 호의호식하고 있는 내가 그런 불평을 해도 될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와 같은 책을 읽으면, 또는 그런 사진들을 보면 그런 공간에서 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나는 또 마음이 꿈틀꿈틀거림을 느낀다. 아직 독립할 능력이 되지 않는 나를 탓하며 한숨 쉰다. 동시에 어쨌거나 따뜻한 집에서 먹고, 자고, 살 수 있다는 것에, 그렇게 만들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도 느낀다.

그와중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살고 싶다. 아주아주 좁은 방 한 칸만이 허락된다고 해도, 내가 꼴보기 싫어하는 물건들이 당장 내 눈에 걸려도, 하나씩 하나씩 조금씩 조금씩 바꿔나가면서 내가 좋아하는 공간으로 만들어나가고 싶다. 지금은 그게 가장 가능하고도 빠른 길이니까.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좁으면 많이 덜어내고, 듣기 싫은 잔소리도 이겨내면서.


공간도, 물건도, 사람도 되도록이면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사람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 그걸 알아가는 게 인생의 여정이라고 생각하면서.

기왕 이렇게 된 거 좁은 내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들을 좀 비워볼 생각이다. 가장 중요한 것만 남겨놓고 다 비워볼 생각이다. 과연 어떤 것들이 내 방에, 내 공간에 남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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