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강철비>를 보고
나는 한가로이 글을 쓰고 있다. 어떤 이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을 테고, 어떤 이는 TV를 보고 있을 테고, 어떤 이는 잠을 자고 있겠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우리는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상태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데 말이다. 미국에 가족을 두고 있는 지인은 북한의 도발이 있을 때마다 빨리 미국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는다고 한다. 정작 본인은 그런 반응이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그 이야기를 한다. 이게 현실이다.
정말 실감이 나지 않는다. 북한이라는 나라는 그저 영화나 TV에서만 보고 접하는 나라인 것 같고, 북한 사람들도 완전히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가끔 그들의 영상을 보고 있으면 좀 거북해지기도 한다. 그 말투와 내용 때문에. 북한의 핵 문제도 그렇다. ‘설마 진짜로... 에이.’ 뉴스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한 소식을 접해도 ‘설마 진짜로 핵을? 에이 아니겠지.’ 뉴스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로 돌아간다.
영화 <강철비>를 보면서 나의 ‘설마’가 진짜일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영화는 그 ‘설마’를 너무나도 실감 나게 그려낸다. 그 과정과 끝은 좀 허술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핵’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작용하게 될지는 확실하게, 똑똑히 보게 됐다. 또 전쟁이 먼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도. 또한 전쟁이 일어나면 희생되는 건 평범한 ‘우리들’이라는 것도.
영화 <강철비>는 돌직구 같다. 우리가 우려하는 바를 그대로 재현한다. 미국, 중국, 일본과의 관계, 핵의 위력, 정치인들의 입장들. 빙빙 돌려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무섭다. 가만히 이렇게 카페에서 글을 쓰다가 핵이 나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데도 모르고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내가 이렇게 잠시 분단국가라는 걸 잊고 평화롭게 글을 쓰고 있을 때 누군가는 고군분투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왠지 잘 떠오르진 않았다. 영화 <강철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왠지 너무 영화적인 것 같았달까. 우리 뒤에서 목숨을 걸고 전쟁을 막고 있을 그들이 잘 그려지지 않는 이 현실이 참 씁쓸하다.
영화는 그렇게 북한과 핵 그리고 전쟁에 대해 돌직구를 날리지만 그래서 나에게 너무나도 생생한 긴장감을 줬지만 여러 가지가 허술해 보였다.
중간중간 곽도원 배우를 활용한 유머 코드는, 그 자체로는 재밌었지만 약간의 조롱 같기도 했고, 문명인이 미개인을 대하는 것 같은 태도가 약간 거슬리기도 했다. 일이 너무 쉽게 해결되는 것도 허무했다. 물론 희생이 따랐지만 사람의 목숨으로 쉽게 해결되는 듯해 김빠진 콜라를 마시는 것 같은 찝찝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찝찝함이 곽도원과 정우성의 연기에 씻겨 내려갈 정도였다. 곡성 이후로 나는 개인적으로 배우 곽도원의 연기가 너무 좋다. 제2의 송강호를 보는 것 같달까. 연기가 비슷하다는 게 아니라 그만의 톤이 확고해졌다는 거다. 어느 영화든 그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유머 무드가 형성되고 자연스러운 친밀감이 느껴진다. 이 영화에서도 그의 연기가 자연스럽게 웃음을 자아내기도, 눈물을 자아내기도 한다. 곡성 이전의 연기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톤의 연기였는데 어떻게 이렇게 180도 달라질 수가 있을까. 이제 그가 나온다고 하면 그의 연기를 믿고 모든 영화를 보고 싶다.
정우성의 연기도 상상 이상이었다. 그의 북한 말투가 너무 어색하지 않을까 괜한 걱정을 한 터라. 이미 그는 눈빛만으로도 많은 것을 보여주는 배우였지만 이 영화에선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 같은 연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마른 몸, 전혀 어색하지 않은 북한 말투, 액션, 눈빛, 표정 등등. 특히 아버지로서의 감성을 그렇게까지 표현할 줄은 몰랐다. 시종 아재 개그를 날리는 곽도원의 연기 앞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애처로운 때론 강인한 때론 그에 맞장구쳐 코믹한 모습까지 든든하게 보여준다.
생각하고 싶지 않아 외면했던 상상들, 예측들이 눈앞에 보여 불편하고 두려웠지만 영화는 중간중간 두 철우의 따뜻하고 코믹한 감성들을 보여주면서 균형을 맞춰준다. 상업 영화로서 탁월한 균형 감각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꽤 투박하고 상투적인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그것을 또 배우들의 연기로 잠시 잊게 만든다.
영화 <변호인>에 이어서 <강철비>도 결국 인간 냄새가 풍긴다. 무시무시한 북한 핵 문제가 시종 나를 긴장시켰지만 지금 내 기억에 남은 건 국수를 먹던 두 철우의 뒷모습이다. 옳은 것을 위해 함께 뭉쳤던 두 사람. 양우석 감독의 방향은 늘 그쪽이었던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 오른쪽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다음엔 또 어떤 이야기를 통해 그것을 보여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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