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보고

1%의 어떤 것이 있었더라면

by Ann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 관객들이 이런 걸 원하잖아요. 하고 말해주는 것 같은 영화였다. 잘생기고 예쁜 남녀 주인공, 그들의 달달한 로맨스, 귀여운 아역 배우, 유머와 슬픔의 적절한 발란스, 판타지 같은 배경, 반전까지. 다수가 좋아할 것 같은 영화이자 소수는 별로라고 할 것 같은 영화. 나는 후자였다.


나의 영화 취향이 점점 덜 대중적이 되어가는 것 같다. 좀 더 어렸을 때라면 난 분명 이 영화를 좋아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 영화가 싫진 않지만 좋지도 않은 그런 영화로 분류된다. 나는 언제부턴가 영화 안에서 1%의 어떤 것을 찾고 있는 것 같다. 뭔가 남다른 1%의 어떤 것. 그것이 찾아지지 않으면 ‘좋아하는 영화’로 분류하지 못 한다. 그 1%가 뭔지 제대로 설명도 못하는 나이지만......


사실 나는 이 영화의 일본판을 무척 좋아했다. 총 6번 정도는 본 것 같다. 영화 채널에서 해주면 무조건 멈춰서 보게 되는 영화였다. 볼 때마다 울었고, 비가 오면 종종 생각나는 영화였다. 그래서 그 정서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일본 특유의 정서. 그들의 모습, 영화의 풍경만 바라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뭐라 자세하게 설명하거나 무언가 더 첨가하지 않아도 그 영화가 주는 향기, 감동이 있었다. 주인이 그대로 느껴지는 가게랄까. 하지만 한국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그런 정서나 톤을 만들기 보다 이것저것 적절하게 섞어 만든 프랜차이즈 가게 같은 느낌을 줬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다음 작품은 어떨까?’ 가 전혀 궁금하지 않은......


각색도 아쉬웠다. 스토리와 반전은 원작과 같고, 상당히 많은 양의 대사도 비슷하거나 같다. 생각보다 대부분이 그대로 옮겨졌다. 물론 우진(소지섭)의 직업이 다르고, 그의 친구인 홍구(고창석) 역이 새롭게 추가되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주 미미하거나 유머를 넣기 위한 도구에 불과해 보였다. 나에게도 그 유머 자체는 재밌었지만 각색 부분에 있어서는 아쉬웠다는 것이다. 비 오는 날 죽은 아내이자 엄마가 돌아온다는 설정을 중심으로 조금 더 새로운 에피소드들이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이미 원작에서 본 대사, 장면들이 대부분 그대로여서 좀 실망스러웠다. 원작을 본 사람으로서.


한 마디로 이 영화는 원작을 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당 부분 원작에 아주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유머’ 부분을 추가했을 뿐 새로워 보이는 부분들은 별로 없었다. 그중에서 그래도 맘에 들었던 부분은 오프닝이었다. 아주 짧은 단편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원작에선 생략된 부분이다. 수아(손예진)가 아들에게 만들어준 동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주는데 이 영화 전체의 줄거리를 압축해놓은 듯하다. 펭귄 캐릭터도 무척 귀엽고 그 짧은 애니메이션에서 뭉클한 감동도 느껴진다.



이 영화가 그래도 싫지 않았던 것은 단연 배우 손예진 때문이었다. 그녀의 연기는 매번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질리지 않는다. 아마도 그녀의 연기가 한 영화 안에서도 시시각각 다양하게 변하기 때문 아닐까. 코믹한 부분도, 애절한 부분도, 괴짜 같은 부분도 모두 완벽하게 해내니까. 하나의 이미지로 영화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영화 장면 장면에 맞는 다양한 감정을 과하지 않게 때론 필살기를 날리며 만들어가니까. 특히 그녀의 연기가 인상 깊었던 장면이 아들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케이크를 앞에 두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었다. 마지막이 될 아들을 위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다가 “사랑하는 지호의” 부분에서 차마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목이 멘 그녀를 보면서 나는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나는 그 감정을 알았다.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그 이름을 떠올리기만 해도 목이 메는 그 감정을. 그 감정을 그녀가 아주 정확하게 표현해주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느꼈던 지난 날의 그 감정들, 여전한 그 감정들을 고스란히 기억해냈다.


이제 그녀는 나에게 그야말로 믿고 보는 배우가 되었다. 그녀는 영화를 다이나믹하게 만들어준다. 영화의 진폭을 크게 만들어준다. 크게 웃기고 크게 울리고. 그녀의 연기만으로도 영화는 밋밋한 영화에서 다이나믹한 영화가 된다. 감정의 진폭을 크게 느끼도록 만들어준다. 얼마나 대단한 배우인가.


끝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강하게 느껴진 감정에 대해 말하자면 ‘간절함’이다. 내가 가장 많이 울었던 장면이 바로 그 간절함이 느껴졌던 부분이다 아들 지호가 비가 그친 것을 보고 엄마가 떠날까 봐 집을 향해 전력질주를 하는데 그 작은 몸이, 온몸을 다 이용해 있는 힘껏 전력질주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왈칵 눈물이 터졌다. 그 하나의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간절함이 전해졌다. 물론 원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죽은 사람이 돌아온다는 것은. 하지만 그것만큼 간절한 일이 또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 딱 한 번만이라도 마주 보고 싶은 마음. 되돌릴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 그 마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곁에 있는 사람과의 갈등이 대부분 해소가 된다. 수아를 다시 만나게 된 두 부자의 마음, 그들의 다시는 그녀를 돌려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떠올리게 되고 바라보게 되고 내 곁에 살아 있음에 안도하게 되고 감사하게 된다. 오래도록 내 곁에 머물기를 바라게 된다. 금세 잊게 되는 것이 문제이지만.


많이 웃고, 많이 울었지만 그 웃음과 눈물이 이 영화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하지는 못할 것 같다. 알맹이를 찾지 못한 채 영화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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