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 엠 러브>를 보고
엠마는 사라지고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해방시켰다. 열려 있는 문 밖은 아주 환했다. 그녀의 해방을 축하하듯이.
영화 <아이 엠 러브>는 나에게 아주 큰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싹둑 잘라버린 머리, 벗어버린 하이힐과 타이트한 원피스, 활짝 열려 있는 문. 그것들은 모두 나를 대리만족시켜주는 것들이었다. 떠오르는 영화들이 있다. <친절한 금자 씨>, <아가씨>. 앗, 그러고 보니 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네.
<친절한 금자 씨>에서 금자가 백 선생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가위로 자르는 장면, <아가씨>에서 히데코와 숙희가 넓은 들판을 달려나가는 장면에서 나는 <아이 엠 러브>에서 느꼈던 해방감을 이미 느꼈었다. 그 해방감은 쾌감을 가져다주었다. 마음의 문이 활짝 열려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는 것 같은. <친절한 금자 씨>에서 그 감정을 느꼈을 때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 영화는 굉장히 잔인한 장면이 많았고, 그 장면에서 그런 쾌감을 느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쾌감은 잔인함이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었다. 금자의 해방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엠마는 불륜을 저질렀다. 엠마는 남편이 있는 상태에서 아들의 친구와 사랑에 빠졌다. 그와의 사랑을 통해 그녀는 자신의 욕망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해서는 안 되는 짓이지만 어쨌거나 그것을 통해 자기 자신의 욕구, 욕망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향해 가기로 결심하고 문 밖으로 뛰쳐나간다. 맨발로. 불륜은 나쁜 것이지만 그녀는 남편에게 스스로 아들의 친구인 안토니오를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그 집을 떠난다. 숨기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변명하지 않으며 직진한다. 여러모로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둘 모두 나를 대리만족시켜주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엠마와 안토니오의 러브 신이다. 그들의 나체는 환한 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뒤엉킨 그들은 마치 자연의 일부처럼 보인다. 이토록 눈부시고 아름다운 러브 신을 본 적이 없다. 커다란 집에서 빛바랜 가구처럼 지내던 엠마가 인간 엠마로서 환하게 빛이 나던 순간이었다. 생기가 흘러넘치는 것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사랑은 혹은 연애는 자기 자신의 현재 상태를 오롯이 보여주는 거울 같다. 사랑하는 척이 아닌 진짜 사랑은 진짜 연애는 현재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가끔 보기 싫은 밑바닥의 나를 보게 되기도 한다. 뜻밖의 나의 욕망과 마주하기도 한다. 엠마도 그랬던 걸까. 누군가 정해준 역할대로 살다가 사랑을 통해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에 비로소 눈뜨게 된 것일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지난 연애들을 통해 나를 좀 더 깊게 알게 되었다. 어떤 것에 흔들리는지, 어떤 것을 두려워하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에 대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입체적으로 알게 되었다고 할까. 때론 미처 보지 못했던 상처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그 상처를 치유하는 건 스스로의 몫이다. 사랑 자체가 그 상처를 치유해주지 못 한다. 엠마처럼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 노력해야 한다. 용기를 내야 한다.
물론 영화처럼 극적으로 짠! 하고 변하기는 쉽지 않다. 그저 그런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나를 각성시키는 거다. 그래! 나도 문을 활짝 열어보자. 그리고 밖으로 당당하게 나가보자. 내가 원하는 곳으로.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이어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영화였다. 루카 루아다니노 감독은 모든 걸 벗어던지고 떠나고 싶게 만드는 영화를 참 잘 만드는 것 같다. 영화에서 그런 여행의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파란 하늘, 반짝거리는 빛, 가벼운 옷차림, 맛있는 음식 등등 보고만 있어도 내용과는 상관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소리를 끄고 영상만 틀어놓고 싶을 정도. 한국의 미세 먼지도 그의 영상을 사랑하게 만드는 데 한몫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내 앞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은 회색이다.
자유로워질 것. 임경선 작가의 책 제목이 떠오른다. 스스로가 묶어 놓은 나의 손과 발을 보며 다시 한 번 되뇐다. 자유로워질 것. 조금만 더 자유로워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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