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연애의 효과

이서희 <이혼일기>를 읽고

by Ann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이 몇 가지 있다. 보통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연애를 할 때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모습들이 와르르 쏟아진다. 그야말로 단점 종합 선물세트가 펼쳐지는 것이다.



나는 나의 문제를 연애가 끝난 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첫 번째 연애 때 알게 된 것들이 두 번째 연애에 영향을 끼쳤고, 두 번째 연애 때 알게 된 것들이 세 번째 연애에 영향을 끼쳤고, 세 번째 연애 때 알게 된 것들이 그다음 나의 선택에 영향을 끼쳤다. 그렇게 연애를 통해 나는 조금씩 나를 만들어갔다. 다행히도 내 생각으로는 좋은 쪽으로.



나의 첫 번째 연애는 ‘나’ 자신이 무척 강했다. ‘나’가 중요했고, 나의 주변 사람들이 중요했고 나의 생활이 중요했다. 애인은 늘 나의 2순위였다. 그는 종종 나에게 ‘나는 왜 너에게 1순위가 아니야?’라고 물으며 서운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나는 내 친구들이 더 중요해. 내 친구들 못 만나게 하면 나도 오빠 못 만나. 하고 으름장을 놓았다. 오빠는 나의 1순위가 아니야! 그때 내가 정말로 강한 사람이어서 그럴 수 있었을까? 아니다. 나는 겁이 나서 그랬던 거다. 난 상처받기를 무척이나 겁을 내는 그런 사람이었다. 상처를 받을까 봐 나를 온전히 내어주지 못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늘 거리를 두려고 했다. 헤어져도 혹은 차여도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도록. 하지만 상대는 그걸 전혀 알지 못 했다. 나는 감정을 감추는 것도 무척 잘했으니까.



나의 두 번째 연애는 그런 나의 첫 번째 연애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를 좀 더 던져보기로 했다. 맘껏 표현하고 맘껏 좋아해 보자고. 주변 친구들이 날 보고 많이 변했다고 놀라기도 했다. 상처받더라도 덜 사랑했다고 후회하지 말자 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또 다른 문제가 나를 맞이했다. 오히려 내가 너무 저자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내가 부족함을 느끼지 못할 만큼 많은 사랑을 줬지만 종종 나를 상하 관계에 놓여 있는 사람처럼 대하곤 했다. 내가 느끼기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걸 못 견뎌하는 사람 같았다. 나는 그의 방식대로 사랑을 했고, 연애를 했다. 바보처럼. 나에게 맞지 않는 방식임에도 아니다 말하지 못 하고 이리 휘청 저리 휘청거리며 따라가기 바빴다.



내가 생각할 때 잘못하지 않은 것 같은 일임에도 사과를 꽤 자주 했다. 그저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기 바빴다. 싸우는 게 싫었다. 싸우면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 같은 고통에 시달렸다. 그는 화가 날 때면 나를 어떻게 고통스럽게 할지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나는 바보처럼 그런 그의 행동을 멈추게 하지 못 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시들고 말라 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나는 미친 듯이 책을 읽었다. 책은 나의 도피처이자 안식처였다. 많은 걸 깨닫게 해줬고, 힘을 키워줬다. 서서히 나는 변해가기 시작했고, 끝내 그와의 이별을 선택했다. 나를 괴롭게 내버려둔 , 상처받게 내버려 둔 나와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을 깊고 길게 겪어냈다. 나는 나의 행복보다 타인의 행복에 의지하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길고 길었던 두 번째 연애를 끝마치고 더욱 본격적인 독서가 시작되었다. 미친 듯이 읽었던 것 같다. 마치 책을 하나의 종교로 여기듯 들여다보았고 답을 얻었다.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은 나를 보면서 더욱 책에 집착하게 되었다. 나쁘지 않은, 아니 좋은 집착이었다. 몰입이었다고 표현해야 할까.



많은 생각들, 행동들이 바뀌었다. 조금씩 조금씩.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들을 배워나갔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이들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고, 방어적인 성격도 나아져갔다. 동시에 혼자 지내는 행복들을 조금씩 맛보게 되었다. 누군가가 필요치 않았다.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했다. 이런 나의 평화와 행복을 깨려는 이들이 있다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했었다.



그러다 세 번째 연애가 시작되었다. 나는 이제 완전히 나아졌다고 확신했다. 더 이상의 실패는 없다고. 하지만 답답하게도 반복되는 나의 문제가 또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이 자꾸만 고개를 내밀어 나를 뒷걸음 치게 만들었다. 다 치유된 줄 알았는데.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또다시 그에게 휘둘리는 나를 보면서 자책감에 시달렸다. 나는 여전하구나, 여전해. 이런 내가 정말 싫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나는 재빨리 마음을 다잡고 그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나를 괴로움에 빠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나는 나에게 손을 뻗었고 나는 그 손을 힘껏 잡고 빠져나왔다.



연애를 통해 본 나의 문제들, 상처들은 연애를 하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부분들이다. 나의 깊은 곳 어딘가에 외롭게 웅크리고 있었을 것이다. 축축이 젖은 채로. 그게 훗날 어떤 식으로 나를 만들었을지 모르겠다. 언제 예고도 없이 찾아와 나를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데려다 놓을지 모를 일이었다. 연애를 통해 깊고 깊은 곳의 나를 만날 수 있었고 비로소 그를 밝고 따뜻한 바깥으로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반짝거렸던, 사랑 받고 줬던 나의 모습들도 떠오른다. 사랑을 할 때 나의 과감한 모습들, 몰입의 모습들, 의외의 모습들도 연애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런 나의 모습들을 꺼내주고 알게 해준 지난 나의 연인들에게 참 고맙다. 또 잘 이겨내준 나에게도 고맙다.



다음 연애는 또 나의 어떤 모습들을 알게 해줄까. 궁금하다. 인연이 존재한다면, 한 번 만나보고 싶다. 그를, 그리고 나를.




옛 연인이란 존재는 지난 세월의 고통까지, 마치 좀비처럼, 살려내는 힘이 있다. 덕분에 반복되는 문제를 돌아볼 수 있다.

- 이서희 <이혼일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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