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맘마미아2>를 보고
누가 아빠인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 중요하다. 그녀에게는 '엄마'가 누구인지 더 중요하다. 도나(메릴 스트립)가 스스로 결정해서 소피를 낳았고 키웠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에 당당하게 책임을 졌다.
영화를 보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을 것이다. 도나는 왜 이 남자, 저 남자와 잤는가. 문란한 여성 아닌가. 셋 중 누가 아빠인지 찾는다고? 막장 드라마 아닌가? 10년 전의 나라면 나 또한 그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을지도 모른다. 젊은 여자가 겁도 없다 하면서. 그런데 지금의 내가 맘마미아를 보는 눈은 달라졌다. 그녀는 누구보다 자유로워 보였다. 그리고 그 자유를 누린 만큼 책임을 졌고, 그녀 나름대로 의미 있고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
1편은 소피의 친아빠를 찾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면 2편은 도나가 그리스로 와서 살게 되기까지, 소피를 낳기까지의 이야기가 주요 내용이다. 도나는 그리스로 오는 길, 그리스에 와서 세 명의 남자를 만나고 그들과 잠자리를 갖는다. 그 세 남자가 지금 소피의 아빠들(?)이다.
도나의 젊은 시절이 펼쳐진다. 자유롭고 흥 많고 솔직한 도나는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여행을 떠난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노래를 하고 싶으면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싶으면 춤을 춘다. 떠나고 싶으면 떠나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마음껏 사랑을 한다. 도나는 여러 여행지를 거쳐 운명처럼 이끌려온 그리스에 굉장한 매력을 느낀다. 그곳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집을 만난다.
탁 트인 하늘 아래서 춤추고 노래하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도나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꼈다. 어딘가에 꽉 매여 살았던 것 같은 나에게 그녀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 어떤 것에도 구속받지 않고 자신을 놓아주는 그녀가. 몸도 마음도 자유로운 그녀를 보면서 나는 무엇 때문에 나를 이토록 가두고 움츠리고 사는가? 싶었다.
어쩌면 책임 지기 싫어서, 두려워서 일지도.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하고 살면 따라올 그 어떤 것, 마음껏 사랑하면서 살면 따라올 그 어떤 것, 마음껏 떠돌며 살면 따라올 그 어떤 것이 두려워서. 그것들을 감당하고 책임지기 싫어서, 두려워서. 그래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지점에서 어슬렁거리는 건 아닐까.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가지 못한 채.
책임지기 싫어서 외면했던 나의 내면의 목소리들에 더 귀를 기울여본다. 두려워서 외면했던 일들을 다시 한번 꺼내어 본다. 그리고 질문을 던져본다. 이게 그렇게 두려운가. 이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그냥 해 버리면 안 될까. 어떤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그리고 괜찮다고 대답해준다. 나는 혼자가 아니니까. 그 어떤 일이 생긴다고 해도 가족이, 친구가, 좋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도나의 곁에, 소피의 곁에 그들이 있었던 것처럼.
영화는 1편보다 더 재밌지는 않았다. 아바의 음악도 여전히 반가웠지만 그게 다였다. 릴리 제임스의 생각보다 뛰어난 노래 실력에 놀라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음악에 맞추다 보니 이야기가 억지스럽게 진행이 되고 안무가 다소 과장되고 정신이 없어서 약간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새삼 라라랜드가 얼마나 완성도 높은 뮤지컬 영화였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뮤지컬 영화에서 늘 어색하게 느껴졌던 부분이 완전히 제거된 영화였으니까. <맘마미아 2>는 여전히 그 어색하고 오글거리는 순간들이 몰입을 방해한다. 뮤지컬 영화라면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라라랜드>로 인해 그렇지 않게 되었다. 어색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엽서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그리스의 풍경들은 1편에서도 충분히 본 장면들이어서 새롭지 않았고, 아바의 음악은 반가웠지만 음향이 뭔가 아쉬웠다. 전체적으로 신나게 들리지가 않았다. 목소리가 도드라지고 음악은 평면적으로 들렸달까. 음량도 작게 느껴지고. 중요한 순간에 반가운 음악이 나올 때 느껴지는 희열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맘마미아>가 나올 때가 아쉬웠다. 가장 하이라이트가 아닐까 싶었는데 조금 밋밋했달까.
편집과 엔딩은 인상 깊었다. 과거와 현재를 교차 편집하여 특유의 경쾌한 리듬을, 어떨 땐 감동을 만들어내는 것이 좋았다. 엔딩에서는 젊은 시절을 연기한 배우들과 현재를 연기한 배우들이 함께 노래를 하고 출연자들이 모두 모여 춤을 추며 흥겨워하는 모습이 왠지 모를 감동을 주었다. 반가운 얼굴들도 등장해서 더욱 그랬다. 그 엔딩 신이 끝나자 박수를 치는 관객도 있었다. 충분히 이해가 됐다.
도나는 소피에게 생명과 함께 그녀 곁의 좋은 사람들도 함께 선물해주었다. 좋은 엄마, 좋은 부모란 그런 것 같다. 많은 돈, 편안한 인생을 주는 부모보다 더 좋은 부모는, 엄마는, 아빠는, 좋은 인성, 좋은 사람들, 좋은 생각들을 물려주는 것. 그런 도나가 참 멋져 보였다. 아빠 없이 소피를 키우기는 했지만 그래서 힘든 부분들도 분명 있었을 테지만 주변의 좋은 사람들을 믿고, 무엇보다 자신을 믿고 그곳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자신 만의 삶을 만들어간 도나. 그곳에서 만든 것들을 소피에게 고스란히 물려준 도나.
문득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재산과 편리함을 물려줬지만 진짜 제대로 된 것들을 물려주지 못해 결국 집안 전체를 무너뜨린 부모와 그 자식들. 뭐가 정말로 중요한 건지 이 세상에 제대로 보여준 그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기분은 참 좋아졌다.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인생? 한 번뿐이잖아. 즐겨, 즐기자고! 하면서 신나게 춤추고 나온 기분. 모든 것이 무겁게만 느껴지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아마 영화를 보고 나와 집에 가서 잠들기 직전까지 노래를 흥얼거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