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나쁜 놈들의 세상

영화 <1987>을 보고

by Ann


그냥 얼추 보기에 내 생각에는 나쁜 사람보다 착한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그나마 이 세상이 굴러가고는 있다고 본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멸망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크고 작은 그룹에서 나쁜 놈들은 꼭 소수다. 나머지는 착하거나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사람들. 그런데 꼭 소수의 나쁜 놈들이 다수에게 피해를 준다. 그 소수의 나쁜 놈을 처단하기 위해 오랜 시간 많은 이들이 희생을 감수하며 투쟁을 해야 한다. 뭘까 이건.



얼마 전에 시기를 놓쳐 보지 못했던 영화 <1987>을 보았다. 어째서 현실은 늘 착한 이들의 희생이 해피엔딩을 가져다줄까. 권선징악은 동화 속에나 나오는 것일까. 나쁜 놈들의 목숨은 그렇게나 질기고 질긴데 착한 이들의 목숨은 꽃잎처럼 흩날려 날아갈까. 아, 아까운 목숨, 아까운 청준들......



그렇게 아깝고 아까운 소중한 목숨들과 맞바꾼 지금의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여전히 악은 바퀴벌레처럼 징그럽게도 재생산되고 선한 이들은 희생되고 있다. 어쩌면 영원히 세상은 이렇게 굴러가는 것일지도. 나아졌다고 생각하지만 허무하게도 멈춰지지는 않는 비극의 생산.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 모든 것을 끝내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또 다른 악이 등장하여 한 나라를 자기 것인 양 소유했고, 그들을 몰아내기 위해 두들겨 맞고 죽임을 당한 국민들의 희생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국민들을 괴롭히는 악들이 등장했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 영화의 빌런들처럼.



그래도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외면하지 않았던, 용기 잃지 않았던, 자신의 자리에서 옳은 일을 했던 이들이 있었기에 나쁜 놈들의 만행을 역사에 남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부끄러운 짓거리들을 영원히 손가락질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1987> 같은 영화도 만들 수 있고 말이다. 반대로 옳은 일을 하다가 희생당한 사람들도 영원히 기억할 수 있게 되었고...... 그걸로 그들의 한이 풀리겠냐만은.



바통을 들고 이어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처럼 자신들의 용기와 희생을 전하고 전했던 이들이 <1987>의 주인공들이었다. 각자의 분량은 적었지만 그들 전체가 사실은 주인공이었다. 그들은 하나였다. 광화문 광장에 촛불을 들고 나온 이들 전체가 하나였던 것처럼. 그들 모두가 주인공이었던 것처럼.



영화의 후반부에서 이한열 열사의 역할을 맡았던 배우 강동원이 자신의 앞에서 쓰러져가는 사람들을 보다가 맨 앞으로 나와 혼자서 있는 힘을 다해 소리치던 모습이 아직도 강하게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목에서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니라 온몸이 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멀리서 비춘 아주 작아 보이는 한 인간이 온몸을 흔들면서 울부짖고 있는데 그게 그렇게 가슴이 아프고 슬펐다. 그리고 그렇게 울부짖던, 자신의 몸 전체를 내던졌던 이는 힘없이 쓰러져버렸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마지막 그가 쓰러지기 직전의 모습을 내가 기억하고 있는 건 그런 위험 속에서 그 사진을 남겨준 기자 (정태원 당시 로이터통신 기자) 덕분이다.



언제까지고 나쁜 놈들은 사라지지 않겠지. 그들로 인해 희생당하고 고통받는 사람들도 당연히 생길 테고. 그때마다 활약하는 곳곳의 이름 모를 선한 이들의 릴레이가 이 세상이 멸망하는 것을 막아주고 있겠지. 나도 그 시작점이고 싶다.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어달리기의 시작점. 미약하게나마. 선순환의 시작점.



뭔가 불공평하고 부조리한 것 같은 이 세상. 소수의 나쁜 놈들이 온통 물을 흐리는 이 세상. 그래서 억울한 일들도 많은 이 세상.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가 이렇게 편히 앉아 글을 쓸 수 있는 건 그 부조리함 속에서도 옳은 일을, 아주 작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옳은 일을 선택한 이들의 노력과 희생 덕분인 건 확실하다. 그들에게 감사하는 일은 오래도록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이라는 것도.









이한열 열사 사진






ㅣ사진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95407.html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에게 보였던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