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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 Aug 27. 2018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진짜 멋진 사람


내 뒤로 버스가 오고 있었다. 정류장엔 2명의 사람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구 뛰었다. 내가 뛰는 동안 2명의 승객이 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그 사이에 충분히 버스 앞 문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버스기사 아저씨의 옆모습을 봄과 동시에 문이 닫혔고 나는 힘차게 팔을 흔들었다. 창가 쪽에 앉은 아줌마가 나를 쳐다봤다. 기사 아저씨는 충분히 곁눈질로 나의 움직임을 알아챈 것 같은데 그대로 버스를 출발시켰다. 이 버스가 떠난 후 나는 빗속에서 10분을 기다려야 했다. 


속으로 나는 육두문자를 날렸다. 화가 났다. 아슬아슬하게였지만 나는 정류장에 도착했고 아직 출발 전인 버스 안의 기사 아저씨는 나를 보았다. 승객들도 전부 나를 보았다. 바로 뒤에 버스가 뒤따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주 조금만, 단 몇 초만 시간을 내어주었다면 나는 버스에 탈 수 있었다. 분명 알면서도 일부러 그냥 가 버린 것이 화가 났다. 게다가 짐도 많은데......


일단 반사적으로 욕이 나왔지만(이놈의 승질) 평소와 다르게 많은 생각을 했다. 당연히 며칠 전에 읽은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가 떠올랐다. 화를 가라앉히며 그래, 분명 이유가 있었을 거야 했다. 빗길 운전이라 예민한 상태였던지, 앞차와의 간격이 너무 벌어져서 빨리 따라잡아야 했던지, 그냥 짜증이 난 상태였던지......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전에 하지 않던 생각들을 하는 걸 보니 이 책의 영향력이 꽤 큰 모양이었다. 







이 책을 쓰신 기사님과 나는 완전하게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공감했다. 이 책은 단지 버스기사의 일상 만을 다룬 것이 아니었으니까. 일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으니까. 그의 많은 감정들이 이해가 되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굉장히 존경스럽기도 했다. 배울 점이 많은 어른이었다.


특히 사람에게서 받는 스트레스가 꽤 크다는 게 공감이 크게 됐다. 사람이 주는 그 은근한 스트레스는 처음엔 웃어넘길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체력이 떨어질수록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로 변신한다. 그래서 오후에 누군가 나에게 아주 작은 실수만 해도 그가 나의 분노의 표적이 되어버린다. 다 앞에서 쌓여버린 분노 때문이다. 버스기사는 오죽할까. 나보다 훨씬 많고 다양한 사람들을 나보다 훨씬 위험한 상황 속에서 만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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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는 기사의 김빠지는 소리가 황당하기도 할 것이다. 생각 없이 돌멩이 하나를 던졌는데 감히 기사가 백 개의 돌멩이를 되던지니 억울해서 민원을 안 넣을 수도 없다. 승객은 늘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분노 폭발 이벤트'에 당첨된 것이다. 기사가 아흔아홉 번의 돌멩이질을 참고 있다가 백 번째 돌멩이를 던진 승객에게 '분노 경품'을 왕창 안긴 것이다.






재밌다. 분노 폭발 이벤트, 분노 경품. 나의 경우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내가 있는 사무실 안으로 노크도 하지 않고 불쑥 들어와 연필꽂이고 책상이고 아무 데서나 막 가져가는 통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처음 한두 명은 그러려니 참지만 네다섯 번째 때 들어오는 사람은 나의 눈에서 나오는 저주의 레이저를 받아내야 한다. 그도 나의 분노 폭발 이벤트에 당첨된 것이다. 


이런 재치 있는 표현들이 이 책에 꽤 많다. 일을 하면서 겪는 많은 어려움들을 그는 유머러스하게 웃어넘기려 한다. 물론 그 순간엔 그렇게 대처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늦게나마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며 반성도 하고 재미있는 하나의 일화로 변신시키기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잘 견뎌낸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이 얼마큼 부족한지, 어떤 부분에서 화를 느끼는지, 어떤 부분을 견뎌내지 못하는지, 부족한 부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고민하고 개선하려 노력한다. 그는 그냥 버스기사가 아니었다. 


그는 버스를 운전하는 꽤 멋있는 사람이었다. 버스 운전기사라기 보다 멋진 사람. 그는 어떤 일을 해도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아주 멋지게 해낼 수 있는 그런 사람 같았다. 


물론 그의 모든 행동이 다 이해가 되고 수긍이 가는 건 아니었다. 그는 버스기사의 입장에서 나는 승객 입장에서 각자 원하는 게 다르니까. 승객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참 많다. 앞의 나의 경우처럼 정류장에 도착을 했는데도 보고도 그냥 출발을 해버린다든지, 공손하게 물어보는 데도 기분 나쁘게 대답을 한다든지, 너무 험하게 운전을 한다든지, 내리기도 전에 문을 닫아버린다든지 하는 행동은 이해할 수가 없다. 그것에 대해 이 책의 저자는 이런저런 변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당하게 돈을 내고 타는 승객의 잘못은 아니란 말이다. 그의 변을 읽고 있으면 화가 나기도 한다. 내가 당했던 일들이 떠올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좋았던 건, 이 기사님이 멋졌던 건 그런 그의 변명 안에 자기반성이 한가득 들어있다는 것이다. 사회적인 문제,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지만 그것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시키지는 않는다. 자신의 분노, 불친절, 불만을 무조건 승객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어쨌거나 자신의 문제를 꼭 짚고 넘어간다. 반성하고 다짐한다. 그게 난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이 좋았다. 결정적으로. 


나의 일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하며 사는 일. 당연하지만 어려운 일. 대부분 '그냥' 사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매일 똑같은 불만을 로봇처럼 반복적으로 쏟아내고, 그 불만의 원인을 무조건 다른 이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 불만은 늘 불만으로 놓아두고, 그 불만이 결국 다른 이에게 불편으로 돌아가는 악순환. 하지만 정작 자신은 남 탓. 서로의 거울처럼 찡그린 얼굴들......


나도 늘 경계하는 것이 그것이다. 생각 없이, 반성 없이 그냥 사는 것. 그래서 글 쓰는 것이, 독서가 큰 도움이 된다. 글을 쓸 때, 책을 읽을 때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되고 그 생각 안에는 '나'가 있다.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본다. 그런 시간을 보장해주는 것이 글쓰기와 독서다. 아마 저자도 그랬던 모양이다. 이렇게 책으로 나온 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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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삶에 매번 딴죽을 걸어 우리를 깊은 나락으로 빠트리는 무의식은 꿈 분석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의 실수에 상식선을 넘어 격분하거나 어떤 사람이 왠지 이유 없이 미우면 그 미운 점이 자기의 무의식이다. 무의식은 결코 인정하기 싫은 자기의 구린 속마음이다. 그런 연유로 분석을 통해서 그 사람의 무의식을 알려주면 얼굴이 시뻘게지면서 칼 들고 달려들기 쉽다.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고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을 죽도록 경멸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무의식이다.






그는 결코 자신이 좋은 버스기사라고 말하지 않는다. 자신이 이 일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고 있는지, 어떻게 견뎌내고 있는지에 대해 말한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나도 생각한다.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나의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견뎌낼 것인지. 나는 그런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겸손하게 나를 점검하고 다독이며 오늘을, 이 순간을 살아가야겠다. 그럼 나도 조금은 멋진 사람이 되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 멋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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