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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 Aug 14. 2018

대단치는 않아도 괜찮게 살고 있지 않나

영화 <패터슨>을 보고

매일 새벽 같은 이유로 잠에서 깬다. 뚜이의 소동.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 뚜이는 일부러 그러는 건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갖은 소음을 만들어내며 집안을 누빈다. 뚜이와 놀아주고 밥 주고 다시 눕는다.


다시 일어나 샤워를 하고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선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틀고 늘 가던 길을 걸어 일터로 향한다. 두 개의 신호등을 건너 동물병원을, 김밥천국을 지나 내가 일하는 곳 건물에 들어선다.


출근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하기 싫은 일들도 하고. 그렇게 하루가 흘러가고 퇴근 시간.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와 이어폰을 끼고 두 번의 신호등을 건너 집으로 걸어간다. 집으로 들어가면 현관문 앞 소파에 올라가 냐옹 거리며 나를 반기는 뚜이가 있고 뚜이와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 짐을 놓고 옷을 갈아입고, 씻고 그렇게 하루가 마무리되어간다.


그 반복되는 일상들 사이사이 내 머릿속 빈 공간에 문장이 들어찼다가 사라졌다가 한다. 책을 보다가 한 문장, 하늘을 보다가 한 문장, 어떤 사람의 행동을 보다가 한 문장. 빨리 가서 써야지 하고 집에 가면 또 한 순간에 사라진다. 아, 메모를 해둘 걸......어떨 때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 한 편을 완성하려고 노트북 앞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겨우겨우 써내려간 글을 몽땅 지우고 노트북을 끄기도 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패터슨



이런 나의 삶도, 패터슨의 삶도 특별할 건 없지만 결코 하찮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을 발칵 뒤집을 만한 작품을 써내는 작가는 아니지만, 시인은 아니지만 그동안 모아온 문장들을 단 한 권의 책으로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살고 있지만 그래도 하루하루를, 문장들을 잘 쌓아가고 있는 우리들, 대단치는 않아도 괜찮게는 살고 있지 않나.


영화 패터슨은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아도 꽤 멋지게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각자의 마음 속에 작게 반짝이는 별 하나 담고 일하는 틈틈이 꺼내보면서 살아가는 우리. 매일 똑같은 일상 속에서도 다른 것들을 찾아내는 우리. 나는 그런 사람들이 멋지다고 생각한다. 아주 잘하지는 못 하더라도, 누가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좋아서, 너무 좋아서 할 수밖에 없어서 매일매일 꾸준히 해나가는 사람들. 우리의 패터슨 같은 사람들.


패터슨은 자신의 그 무엇을 위해 다른 이들을 희생시키지 않는다. 피해 주지 않는다. 하지만 패터슨의 아내는 패터슨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취미를 즐기지만 종종 패터슨을 불편하게 한다. 패터슨에게 꽤 비싸게 느껴지는 기타를 사달라고 한다던지, 패터슨이 좋아하지 않는 취향들을 집안 곳곳에 늘어놓는다던지 패터슨의 입맛과 상관없이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게 한다던지. 물론 패터슨이 호불호를 표현하지 않으니 아내로서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서 하는 행동이겠지만 어쨌거나 패터슨을 조금은 불편하게 하는 건 맞다. 그와 정반대로 패터슨은 자신이 쓴 시를 아내가 읽어달라고 말하기 전까지 들려주지 않고, 자신이 쓴 시에 대해 어떠냐고 묻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작은 일들을 혼자 매일매일 할 뿐이다.


버스 운전기사로서도 너무 잘하려고 하지도, 나태하지도 않다. 마치 버스 안에 없는 사람처럼 조용히 운전을 하고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들으며 살짝 미소 짓기도 하고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아는 메뉴얼대로 차분하게 처리한다. 글쎄, 이 사회에서 이런 사람들을 한심하다고, 젊은 사람이 열정이 부족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사람들이 더 좋다. 더 멋지게 보인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는 것도, 지나치게 나태한 것도 어쩌면 다 이기적인 행동으로 볼 수도 있으니까. 오히려 욕심을 덜고 자신의 현재에 만족해하며 별 탈 없이 하루하루를 잘 보내는 것이 더욱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니까.  


매일 똑같은 출근길, 똑같은 일을 하지만 그 속에서 다른 것들을 찾아내 시를 써 내려가는 패터슨을 보면서 글을 쓰는 사람들의 일상은 참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무표정에 가깝고 시 쓰는 것 외에 별다른 취미도 없고, 따로 만나는 친구도 없고 매일 강아지를 산책시키며 마시는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를 살아가게 하는 것, 즐겁게 하는 것, 신나게 하는 것은 ‘시’ 그리고 아마도 ‘글을 쓰는 일’일 것이다.


지루할 것 같은 일상 속에서도 매일 다른 책을 만나고, 그 책이 매일 다른 문장들을 만들어준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살아지고 가끔은 재밌고 또 그것 때문에 좌절하기도 한다. 좌절은 다시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또 재밌어진다. 다른 이들은 늘 나의 삶이 정적이고 똑같다고들 말하지만 아니다. 패터슨의 하루들처럼, 시처럼 조금씩 조금씩 다르다.  


사실 가끔씩 잊고 산다. 가끔은 지겨워한다. 일상의 소중함을, 매일 하는 일의 소중함을, 반복의 힘을. 지칠 때쯤, 삶과의 권태를 느낄 때쯤 다시 이 영화를 꺼내보아야겠다. 몇 백 번이고 다시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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