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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 Sep 07. 2018

배우 박정민에 대하여

작품보다 글을 통해 먼저 알게 된 배우가 있다. 바로 박정민. 서점에서 우연히 <쓸 만한 인간>을 발견하고 조금 읽어보다가 마음에 들어 책을 샀고 그의 팬이 되었다. 그때까지 단 한 편도 그의 작품을 본 적이 없었다. 




두 번째로 그를 만난 건 민음사 문학잡지 릿터 3호의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내가 좋아하는 코너가 <읽는 당신>이라는 인터뷰 코너인데 책을 읽는 예술계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들을 통해 나는 자극을 받기도 하고 책 정보를 얻기도 한다. 무튼 그는 릿터 인터뷰에서 말한 자신의 작품을 대하는 자세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영화 <동주>를 위해, 송몽규 역할을 위해 그의 묘지까지 다녀왔다고. 그와 관련된 책들을 다 읽어봤다고. 멋지다. 




세 번째 그를 만난 건 한 인터넷 뉴스 기사에서였다. 영화 <변산>을 개봉하고 한 인터뷰 기사였는데 그 기사에서 그는 분당에 작은 책방을 하나 낼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곳을 자신이 좋아하는 책들로 채우고 틈틈이 글도 쓰고 싶다고. 이 얘기에 나는 더욱 그에게 빠졌다. 어찌 보면 나의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자신의 주업도 열심히 하고 게다가 위트까지 겸비한 남자. 크하. 실제 성격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글로만 그를 만나다가 결국 작품을 보게 되었다. 영화 <변산>과 <동주>를 연달아 보았다. 같은 사람이 맞아? 싶었다. 그의 작품을 보고 나는 완전한 그의 팬이 되어버렸다. 다른 작품들도 모두, 몽땅 찾아보고 싶을 만큼. 




그의 연기 자체도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연기였다. 어떤 역할이든 유머를 담고 있는 연기. 하나의 작품 안에서 진지와 유머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연기. 그런 연기의 최고봉은 나에게는 송강호다. 그런 연기로 그를 뛰어넘은 배우를 본 적이 없다. 배우 박정민은 또 다른 매력으로 그의 뒤를 밟고 있는 듯 보였다. 




영화 <변산>에서는 그의 제대로 된 짜증 연기를 볼 수가 있다. 코믹 연기는 기본이고 고향으로 내려가 벌어지는 짜증스러운 일들, 황당한 일들에 대한 리액션이 정말 좋다. 계속 짜증을 내는데 그의 연기가 지루하지가 않다. 내가 인정하는 짜증 연기의 대가 이선균과 또 다른 느낌이다. 이선균은 처절하게 짜증을 내고 박정민은 능청스럽게 짜증을 낸다. 둘 다 좋다. 




영화 <변산> 자체가 좋지는 않았다. 그냥 이준익 감독이 만든 소품집 같았달까. 영화 <동주> 이후 그리운 배우, 스텝들이 모여 만든 소품집. 아기자기하고 따뜻하고 웃음 짓게 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새롭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았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가 맞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개인적으로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그 점에 있어서는 공감이 갔다. 문득문득 <동주>가 떠오르기도 했다. 두 사람의 우정, 사랑, 시, 소설에 대한 이야기니까. 




영화 <동주>는 영화가 무척 좋았다. 흑백 화면은 정말 신의 한 수라고 느껴졌다. 흑백 영상이 더욱 나를 슬프게, 아련하게 만들었다. 과거의 역사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아주 슬프게. 거기에 더해진 윤동주 시인의 시들이 내 귀에 스며들며 나를 눈물짓게 했다. 그는 너무 슬프게, 시로 후손들에게 얘기하고 있었다. 부끄럽다고. 자신은 너무 부끄럽다고.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정작 부끄러움을 모르고 사는 많은 이들이 떠올랐다. 




이 영화에서 배우 박정민은 진지하면서도 남자답고 거기에 코믹한 요소도 빠뜨리지 않는 완벽한 연기를 해냈다. (지나친 팬심 때문에 그렇게 느낀 걸지도......) 지나치게 의욕적이고 비장해 보이지 않는 그의 연기는 그의 연구 덕분일까. 보통 독립운동가를 연기하다 보면 말투나 표정이 지나치게 비장해 보일 때가 있는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다가 영화의 후반부에 조사를 받는 장면에서 그가 터트린 울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가슴을 움켜지게 만들었다. 함께 울게 만들었다. 사람의 마음을 북받치게 만들었다. 




그가 작은 책방을 내면 그를 만날 수 있을까? 그곳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을까? 어차피 말 한마디 못 붙일 거면서 뭘...... 수줍게 책을 내밀면서 사인이나 받아야지, 그리고 정말 팬이라고 아주 작게라도 얘기해야지 다짐해본다. 다짐하지 않으면 못할 것 같아서. 빨리, 내주세요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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