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죄 많은 소녀>를 보고
ㅣ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시무시한 공포 영화 한 편을 보았다. 영화가 끝이 난 후에도 나는 알 수 없는 존재가 나를 위에서 꾸욱 누르는 것 같아 좀처럼 일어날 수가 없었다. 옆을 보니 동생도 멍하니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앞에도 뒤에도. 다른 영화와는 다르게 끝나자마자 벌떡 일어나는 사람은 없었다.
귀신이 등장하지 않는데 왜 공포영화라고 느껴졌을까. 그것은 이 영화를 보고 나 개인적으로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대한 공포. 나는 이 곳에서 안전하지 못하다는 공포. 나 또한 영희처럼 될 수 있다는 공포. 혹은 그 외 죄책감을 이겨내지 못해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해 버둥거리는 사람들처럼 될 수 있다는 공포.
이 영화는 그 누구도 구원해주지 않은 채 마치 귀신처럼, 이 영화 속 어딘가에 서서 혹은 앉아서 사람들을 관망한다. 영희의 뒤쪽 어딘가에 앉아서, 죽은 경민의 엄마의 차 뒷좌석에 앉아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가 한 아이를 공격할 때 저 멀리서. 카메라는 마치 다른 이들은 볼 수 없는 귀신 혹은 투명 인간이 되어 그저 지켜본다. 결국 마지막 영희의 죽음으로 향하는 발걸음까지. 그저 따라가면서 지켜보기만 한다. 어쩌면 그 표정에선 비웃음이 지어지고 있었을지도...... 섬찟하다. 내가 영희와 같은 일을 당해도 이 세상은 나를 그저 그렇게 바라만 보고 있을 것 같다.
경민이라는 학생이 죽었다.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영희가 모든 이들의 희생량이 된다. 자신들이 가진 모든 죄책감을 뒤집어쓸 희생량. 경민의 엄마는 물론이고 선생님, 경민이에게 일말의 미안함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같은 반 아이들, 형사, 영희와 가장 친했던 친구 한솔이까지. 자신들이 감당하지 못할 죄책감을 영희의 머리 위에 퍼붓는다. 영희도 경민의 죽음에 대해 100% 떳떳한 것은 아니었지만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인 것으로 결론지어진 상황에 대해 괴로움에 몸부림친다. 스스로 느끼는 죄책감에 다른 이들의 죄책감까지 모두 떠안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그 누구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죽은 경민의 혼을 달래는 무당 만이 '엄마 미안해'라고 말하며 울부짖는다. 실제 살아 있는 사람 중에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자신의 탓이라고 책임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경민의 죽음이 정말 영희 한 사람의 '말' 때문일까? 자신을 좋아한다는 고백에 죽음으로 증명해보라고 던진 그 말 한마디 때문에 경민이 죽은 걸까? 경민을 죽인 건 그들 모두이다. 경민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
일하느라 아이에게 무관심했을, 아이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을 엄마의 잘못, 아이에 대한 모든 것을 엄마의 몫으로 떠넘겼던 아빠의 잘못, 자신들과 조금 다르다고 소외시키고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혔을 같은 반 아이들의 잘못, 용기 냈을 경민의 마음을 무시했던 영희의 잘못, 질투 때문에 경민의 죽음을 부추겼던 한솔의 잘못, 학생들을 그저 시스템으로만 대하는 선생님, 학교의 잘못, 영희의 상황을 알지 못한 영희 아빠의 잘못 등등 어른들의 잘못.
그런데 다들 문제는 하나였다고, 잘못은 한 사람이 했다고 말한다. 혹시 아이가 우울증 때문에 그런 것 아니었겠냐고, 친구들에게 소외당해서 그런 것 아니었겠냐고, 친구가 나쁜 말을 해서 그런 것 아니었겠냐고. 그렇게 생각해버리면 편하니까. 마음이 편하니까. 쉽게 해결되니까. 그렇게 사건은 잊히고 쌍둥이처럼 쏙 빼닮은 사건이 줄지어 이어진다.
너무나도 나약해빠진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마주할 때 본능적으로 피한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나머지 기억을 지워버리기도 한다.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진실. 두렵고 고통스럽지만 마주 보지 않는다면 결코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모두가 편해지고자, 고통을 덜고자 한 사람을 희생시켰지만 그 누구도 편해지지 않았다. 그 누구도 그 지옥의 밖으로 걸어 나오지 못했다. 그들은 곧 또 똑같은 상황을 맞딱뜨리게 될 운명에 놓여 있었다.
영화는 그 운명을 영화의 구조를 통해 명확하게 보여준다. 영화의 초반부와 후반부를 출발점과 도착점처럼 이어놓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영희는 모든 사건이 끝난 후 차분하게 정리된 모습으로 학교로 돌아온 듯 보였고 교탁 앞으로 가 친구들에게 수화로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수화를 모르게 때문에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저 평범한 인사겠거니 한다. 그렇게 출발을 하여 돌고 돌아 다시 그 장면으로 돌아온다. 그땐 자막을 통해 영희가 하는 수화의 내용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그때 아차! 하는 것이다. 갑자기 온몸이 싸늘해지는 것은 극장의 빵빵한 에어컨 탓만은 아니었다. 영화의 끝으로 돌아왔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다시 시작될 거라는 무시무시한 예고편을 본 것이다. 다시 제자리. 아무것도 모르고 영희의 수화가 끝난 후 박수를 치는 학생들과 선생님.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알고 있다. 지옥을 벗어나는 방법을.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지옥에서 살아가기를 선택한다. 지옥을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고통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평생 고통받기를 원한다. 참 아이러니하다. 참 어리석다.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