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그와 나의 공통점

문유석 <쾌락독서>를 읽고

by Ann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그들의 경험이 자꾸 나의 경험을 떠올리게 하고 그 경험들이 긍정적이었다는 확신을 그들에게서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이번 책도 나에게 그런 확신을 선물해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담처럼 ‘하필 책을 좋아해서!’라는 말을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난 후 책을 좋아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유석 판사의 글은 사실 처음 읽었다. SNS에 돌아다니는 글도 읽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이 책, <쾌락독서>를 접하게 되었다. <개인주의자 선언>은 장바구니에 오랜 시간 머물러 있는 책이었다. 글쎄. 하도 유명하니까, 베스트셀러니까 손이 안 가던 책이었달까. 그런데 그의 책에 대한 책은 궁금했다.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고 인기도 많은 지식인의 독서 인생은 어땠을까. 어떨까.



무엇보다 이 책은 그에 대한 나의 선입견을, 판사라는 직업에 대한 선입견을 벗겨주었다. 글이 무척 유쾌하고 유머러스했다. 판사를 직업으로 가진 사람을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던 지라 그저 그런 사람의 말과 글은 조금 지루할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바다 표면의 물결처럼 가볍게 찰랑찰랑거렸고 가끔 아주 가끔 깊게 들어갔다가 나올 뿐이었다. 이해하지 못한 단어와 문장은 하나도 없었다. 술술 아주 잘 읽혔다.



그의 지금까지의 독서 인생을 가볍게 들어보면서 나의 짧은 독서 인생을 떠올렸다. 어릴 때부터 그처럼 독서광은 아니었지만 독서에 빠지게 되면서 했던 행동들, 생각들이 무척 공감이 되었다.




꼭 책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 걸까?




나에게 늘 숙제 같은 질문. 분명 걸작이라고 했는데 죽기 전에 꼭 읽어봐야 할 고전이라고 했는데 도무지 읽히지 않는 책들이 있다. 이 책을 읽은 다른 이들의 감상평을 보면 왜 나는 그런 것들을 느끼지 못했을까, 나는 왜 그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까 하고 나에게 실망을 하곤 했다. 그리고 그 책을 중간에 덮지 못하고 끙끙거리며 끝내 마지막 장까지 넘기고 만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며 허무해하면서.



이런 일들을 꽤 겪으면서 아직 부족한 독서력을 파악했고 아직은 이 정도면 된다고 나 스스로를 격려해나갔다. 이것 때문에 독서가 싫어지면 안 되니까.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 위해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게 그저 나 스스로가 편해지기 위한 합리화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어려운 책이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 책이더라도 이해하려 노력하고 완독하려 노력하면 독서력이 향상되지 않을까.



그런 고민들에 대한 문유석 판사의 생각은 이랬다.




텍스트는 창작자를 떠난 후에는 어차피 수용자의 것이다. <리어왕>을 딸들한테 효도를 강요하닥 개고생하는 늙은 왕 얘기로 이해했든 어떻든 최소한 그 책들을 읽는 동안에는 나와 다른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이야기라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그 맛을 알기에는 충분했다.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큰 욕심이다. 나에게는. 단 한 문장이라도 와닿았다면, 읽는 동안 그 이야기에 빠져 즐거웠다면 그걸로 된 거다. 그게 나의 상태이고 그걸 인정하고 그 즐거움을 유지하며 더 많이 읽어나가는 것이 중요한 거다. 그렇게 많이 읽고 또 읽다 보면 책이 주는 것들을 더 많이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에도 크게 공감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벌써 책도 두 권이나 출간했고 그 책들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게다가 드라마 대본까지 썼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글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글 쓰는 걸 스스로가 좋아한다고 얘기한다. 그 누구보다 멋진 글을 써내지는 못하지만 자신이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스스로가 에이스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내가 감히 이렇게 책도 쓰고, 신문에 소설도 쓰고, 심지어 대본까지 쓰고 할 수 있었던 힘은 저 두 마디에서 나온 것 같다. 나도 내가 김영하도 김연수도 황정은도 김은숙도 노희경도 아닌 걸 잘 알지만, 뭐 어때? 어설프면 어설픈 대로, 나는 나만의 ‘풋내기 슛’을 즐겁게 던질 거다. 어깨에 힘 빼고, 왼손은 거들 뿐.

아니 이 분도 스스로가 에이스가 아니라며 마음 편하게 글을 쓰는데 나는 뭐라고 그렇게 각 잡고 힘줬을까. 머쓱해진다. 뒤통수를 긁적긁적. 나만의 ‘풋내기 슛’을 즐겁게 던지면 될 것을. 나란 사람은 왜 대부분의 일을 심각하게 만들고 마는 것인지. 앗, 지금도!



자주 생각하고 다짐했던 일이긴 하지만 또 찾아온 이런 기회에 조금 더 내려놓는다. 다 즐겁자고 하는 일 아니겠는가.



결국엔 즐기는 자들이 이길 것이다




나에겐 독서가 일이자 놀 거리이다. 그렇다면 열심히는 하되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관리해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행위라고 해도 무조건 매일 영원히 즐거운 건 아니니까. 사랑하는 사람 곁에 오래 머무르기 위해서는 좋은 관계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듯 말이다. 책과도 글과도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해나갈 수 있도록 힘을 빼고 거리를 두고 성실하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히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삶은 아니지만, 이렇게 나이들 수 있기를 소망한다. 습관이 행복한 사람, 인내할 줄 아는 사람, 마지막 순간까지 책과 함께하는 사람.




대부분의 것들이 다른 그와 나이지만 책을 좋아하는 것에 관해서는 장래희망에 관해서는 거의 같다. 내가 꿈꾸는 장래희망은 스펙이 필요 없다. 그에게만 주어진 재능 같은 것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나같은 사람도 노력만 하면 충분히 될 수 있다. 습관이 행복한 사람, 인내할 줄 아는 사람. 나도 되어보려 한다. 그의 뒤를 따라서 조용히 성실하게 책을 읽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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