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Inside Wisdom

한 사람의 이야기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을 읽고

by Ann





굶주리는 어린이 한 명의 입장은

쉽게 상상이 되지만
수백 만 명이 굶주리고 있는 지역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가끔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더 큰 영역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어 주기도 한다.




“으, 좀 징그럽다.” 지인의 지인이 게이였다는 사실을 얘기하며 한 말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그녀의 옆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익숙한 얼굴, 낯선 말.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여태껏 숨기고 살았을 그 마음을 상상해 본 나와는 완전히 다른 반응이었다. 왜 나와 그녀는 이렇게 상반된 반응을 보이게 된 걸까. 차에서 내려 걸어가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왜일까. 왜 그녀와 나는 그렇게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되었을까.


책과 영화는 늘 나를 새로운 세계로 데리고 다녔다. 나에겐 그게 여행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재밌는 여행. 그 여행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 줬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수많은 일들이 펼쳐졌다. 그중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의 사랑 이야기도 당연히 있었다.


영화 <문라이트>를 통해 <캐롤>을 통해 <아가씨>를 통해, 소설 <쇼코의 미소>를 통해. 그 밖의 많은 작품들을 통해 그들의 평범한 때론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들여다보았다. 그들의 사랑이 물러설 때 같이 안타까워했고, 그들의 사랑이 결실을 맺을 때 함께 기뻐했다. 내가 연애할 때 느꼈던 것들과 크게 다를 것 없는 감정들을 공유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을, 감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전체를 이해하게 해줬다. 받아들이게 해줬다. 나 역시 그런 과정들이 없었다면 아마 상상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가벼운 동정의 대상으로만 그들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지인의 상황이 되어본 적이 없다. 동성을 사랑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그 심정을. 아직도 말하지 못하고 있는 그 심정을. 그가 게이라는 사실을 직접 얘기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아직 숨기고 있는 것이다. 많은 질문들, 의심들을 그냥 꼬옥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모른다.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까운 누군가가 차마 말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아직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징그럽다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고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단지 지식을 쌓고 재미를 추구하기 위해 하는 행위가 아니다. 더 큰 영역으로 들어가기 위한 행위이다. 그렇게 이해하고 공감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행위이다.








리베카 솔닛의 책은 처음 읽었다. 그녀는 개인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전체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단지 그것을 위해 읽고 쓰고 본 것은 아니었겠지만 어느새 그녀는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책은 결국 사람을 그곳으로 이끈다. 나도 책이 데려다준 입구를 통해 다양한 영역들을 탐험했다. 그렇게 알게 되었고 알고 나니 이해하게 되었다.


이번 그녀의 책은 쉽지 만은 않은 여행이었지만 다 끝내고 나니 그녀와 함께 아주 조금 성장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을 성장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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