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클레어의 카메라>를 보고
촌스러움과 예술의 차이, 졸작과 걸작의 차이는 무엇일까. 예술 분야도 느끼는 것이 전부가 아닌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아는 것이 많아야 느끼는 것도 풍부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난 아직 풍부하게 느끼지를 못하는 것 같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클레어의 카메라>를 보았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예전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부담 없이 보고 있다. 초기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고 있자면 왠지 주위부터 둘러보아야했다. 누가 없나. 사람들이 내가 야한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그만큼 그의 영화는 늘 배드신으로 화제가 되곤 했다. 그래서 선뜻 그 영화를 보지도 보았다고 말하지도 못한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그의 영화는 조금씩 자주 변화를 겪어 지금은 꽤 다른 홍상수 감독의 영화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배드신 때문에 부담스러워할 일도, 온통 여자와 잘 생각만 하는 찌질한 남자 캐릭터를 보며 얼굴 붉힐 일도 없어졌다. 어느덧 잠시 화면을 멈춰 놓고 바라보게 되었다. 아름다운 장면들이 영화 보기를 잠시 멈추게 했다.
대부분 김민희 배우가 걸려 있는 신이 그랬다. 카메라는 바다를 배경으로, 환한 창문을 배경으로 그녀를 아름답게 담았다. 흔한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카메라에 담게 되면서 그렇게 된 걸까 하는 생각도 했다. 전에 이효리가 방송에서 남편 이상순이 찍어주는 자신의 사진이 가장 예쁘게 나온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든 생각이었다. 그리고 정말 다른 이들이 등장하는 신과 확연한 차이가 있다.
그 부분 이외의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가끔 촌스럽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만듦새가 헐겁다고 해야할까. 음향도 음악도 카메라도, 효과도. 화면에 쓰인 그의 손글씨도. 내가 스마트폰으로 조금 멀리 있는 내 고양이를 찍기 위해 줌을 하듯 인물을 서서히 클로즈업 하는데 영화를 보다가 그런 장면에서 갑자기 확 몰입이 깨진다. 아, 찍고 있구나 하고 정신을 차리게 된달까. 인물이 사라진 후 그 배경 안에 있는 무언가를 줌 할 때도 그렇다. 우리 엄마가 여행 가셔서 예쁜 열매가 달린 나무를 촬영한 것 같은 느낌.
배우들의 목소리도 또렷하게 들려오지는 않는다. 음악은 대부분 없다가 익숙한 클래식이 갑자기 끼어든다. 정말 갑자기 투박하게. 세련됨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클레어의 카메라>는 엔딩도 느닷없이 갑작스럽게 이상한 화면으로 마무리된다. 영화 보는 중간에 볼일이 있어 스페이스 바를 누르고 나가 그대로 멈춰 있는 것 같은 화면으로 끝이 난다. 이게 뭐지.
그렇게 나는 영화 곳곳에서 촌스러움을 느꼈는데 대부분의 평론가들 즉 영화 전문가들은 이 영화를, 홍상수 감독의 대부분의 작품을 높게 평가한다. 그 차이가 뭘까. 물론 나도 그의 영화에 늘 매력을 느꼈다. 그만의 세계에 이끌리고, 촌스럽다고도 느끼지만 그 안에서 이상한 향수도 느낀다. 자유로움도 느끼고 종종 아름다움도 느낀다. 하지만 내가 보지 못한 그 이상의 것이 궁금하다. 내가 느끼지 못한, 보지 못한 부분들이 어떤 것인지, 촌스러움과 예술적인 것의 차이.
그의 인터뷰들을 열심히 찾아 읽어보아도 대부분 “그냥, 좋아서, 우연히, ~인 것 같다”와 같은 표현을 뿐이니 시원하게 해결되는 것은 없다. 그것이 그의 영화를 이루는 뼈와 살들이지만.
무조건 평론가들의 의견을 따를 필요는 없다. 나만이 느끼는, 개인적인 감상들도 중요하다. 하지만 난 그것 이외에 더 다양하고 풍부한 감상을 느끼고 싶다. 분명 내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것들을 알아가고 싶다. 그것이 내가 영화를 더욱 많이 오래 좋아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